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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 고향도 물에 잠겼다…김용택 "수공 물관리 미흡"

중앙일보

입력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 [중앙포토]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 [중앙포토]

지난 8일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살고 있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지난 8일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살고 있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섬진강 시인'이 사는 마을도 최근 집중호우로 물바다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용택(72)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진메마을 이야기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도 수해 #'섬진강 시인' 김용택 고향으로 유명 #논·밭 침수 피해…마을회관 물에 잠겨 #김 "수백년 느티나무에 쓰레기 걸려" #"댐 관리 철저했다면 피해 없었을 것"

 김 시인은 '섬진강' '섬진강을 따라가 보라' 등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시와 산문을 많이 써 '섬진강 시인'으로 불린다. "자연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해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논과 밭 등이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사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논과 밭 등이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사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논과 밭 등이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사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김 시인은 지금도 섬진강이 코앞에 보이는 고향 마을에 산다. 그런데 지난 8일 400㎜ 가까운 폭우가 쏟아져 그가 시를 쓴 배경이 된 섬진강이 범람해 마을 전체를 덮쳤다.

 김 시인의 집은 직접적인 수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23가구가 모여 사는 시인의 마을 논과 밭 대부분이 물에 잠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고 한다. 김 시인은 1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홍수 피해가 커진 이유에 대해 "(한국수자원공사의) 물 관리가 미흡했다"고 했다.

다음은 김 시인과의 일문일답.

-어떤 피해를 봤나.  
"(지난 8일) 비가 많이 오고 (섬진강댐에서) 방류할 때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 저희 집은 직접적인 피해는 안 봤다. 집 앞 3~5m에서 물이 물러갔다. 그래도 (집 앞까지 들이닥친) 물과 (집 내부) 서재가 가깝다. 모든 자료가 그 속에 싹 들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게 (훼손될까) 가장 겁났다. 다른 사람들은 논밭이 유실됐는데 '무슨 책이냐'고 그럴 것 같아 말을 못할 뿐이다."

-폭우가 쏟아질 때 어디에 있었나.
"집에 있었다. 물이 벅차오르는 걸 봤다. 물이 집 가까이 오니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마을)회관까지 물이 들어왔다. 논과 밭은 사라졌다. 삭막하고, 정신이 아득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말만 나오고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논과 밭 등이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사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논과 밭 등이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사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논과 밭 등이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사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마을이 섬진강과 가깝나.
"우리 마을이 섬진강에서 제일 가깝다. 강에서 40~50m 떨어져 있다. 지금까지 500년 동안 한 번도 물이 (마을 안까지) 들어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수해가 나면 사람들이 '옛날에는, 옛날에는' 그러잖나."

-어떤 마을인가.  
"동네가 작다. 23가구가 산다. 노인들만 산다. 이장만 빼고 일흔이 다 넘었다. 나도 (한국 나이로) 일흔셋이다. 남원 등 다른 데가 너무 (홍수) 피해가 커서 거기다 대면 여기는 말하기 그렇다. 하지만 동네로만 놓고 보면 수해가 크다. 마을 앞 전체 논과 밭이 유실됐다. 큰 땅은 아니지만, 물살이 지나간 뒤 논밭 형체가 없어졌다. 집도 한 채가 수몰됐다. 방 안까지 가득 찼다. 집들이 높고 낮기 때문에 일부는 (침수) 피해를 봤다. 길은 완전히 없어져 고립됐다."

-논밭엔 뭐가 있었나.
"벼와 나무 등을 심었다. 특히 고추 농사를 망친 집이 몇 곳 된다. 콩·깨 등 곡식들이 흔적도 없이 가버렸다."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논과 밭 등이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사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논과 밭 등이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사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논과 밭 등이 물에 잠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2) 시인의 고향이자 현재 그가 사는 곳이다. [사진 김용택 시인]

-살면서 마을에 이 정도로 물난리가 났던 적은.  
"7년 전에도 한 번 있었다. 그때도 댐 관리를 잘못해서 수몰됐다. 근데 그때는 물이 들어왔다가 금방 빠져나갔다. 지금처럼 수마가 할퀸 적은 없다. 더구나 그때는 내가 전주에 있을 때 당했기 때문에 직접 물은 안 봤다."

-주민들은 어떻게 대피했나.
"옷가지와 돈 등을 가방에 집어넣고 짐을 쌌다. 동네에서 이장 집이 높은 곳에 있다. 그 집은 물이 안 들어가서 할머니들이 조그만 가방을 짊어지고 거기로 올라갔다. '망연자실'이란 말이 거기서 나온 것 같다. 물이 마을로 금방금방 들어오는데 사람들이 새하얗게 질렸다.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고향 마을은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인데.     
"농사 짓고, 제가 놀던 데다. 강변도 뒤집어져 버드나무가 끊기고 껍질까지 벗겨졌다."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이 뭔가.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을 앞에 있다. 200~300년 됐다. 느티나무는 마을마다 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름 내내 느티나무 밑에서 씨름도 하고, 돌 던지기도 하고, 장기도 뒀다. 단옷날 그네도 탔다. (이번 폭우로) 마을의 상징인 느티나무가 물에 잠겼다. 어마어마한 느티나무가 물 가운데에 있었다. 어른 키보다 높아 손이 안 닿는 데까지 (물이 차) 느티나무 가지에 쓰레기가 걸려 있었다."

-현재 마을 상황은 어떤가.
"본격적인 복구는 시작 안 됐다. 아침에 포클레인 몇 대가 동네에 왔다. (임실)군에서 중장비를 동원해 길은 치우고, 강변에 쓰러진 나무는 뽑아내고, 논밭은 보토(補土, 흙을 채워 메움)를 해야 한다."

-이번에 왜 홍수 피해가 컸다고 보나.
"많은 사람들이 '비도 많이 왔지만 (섬진강댐) 방류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물을 빼긴 했지만, (미리) 더 많이 뺐어야 하는데 (갑작스러운) 방류 때문에 일(수해)이 일어났다. 수공(한국수자원공사)에선 '자연재해'라고 한다. 마을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물이 불어나는 걸 봤을 때 물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평소에 수공이 물을 관리할 때 긴급 재난이 닥치기 전에 일기예보라든지, 여름이니 장마도 있을 것이고, 이런 것에 충분히 대비했는지 의심이 간다. 일방적으로 방류 때문에 수해가 났다고 주장할 수 없지만, 댐 물 관리가 미흡했다고 본다. 댐 관리를 철저히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남원, 구례 등 (홍수 피해가) 커다란 데는 보도가 됐다. 국민이 알고 있다. (피해가) 커다란 데 말고 작은 곳도 수마가 할퀴어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임실=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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