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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최악 구례 되살린 장병·봉사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3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 물기를 잔뜩 머금어 치울 엄두조차 못 냈던 묵직한 소파가 특전사 장병들의 손에 들려 상점 밖으로 빠져나왔다. 인근 상인들은 “물은 다 빠졌어도 가게 안엔 기계도 못 들이는 형편이라 손을 놨던 물건들이 가득하다”며 “군인들이 없었으면 얼마를 더 썩혀뒀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상인들 고령자…수해현장마다 인력난

 전남 구례군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특전사 황금박쥐 부대 장병 700여 명이 구례군과 곡성군, 담양군 등 수해현장 복구작업에 투입됐다. 수마가 전남 곳곳을 할퀴고 간 뒤 무너진 상가 패널부터 진흙투성이가 된 채 며칠째 방치됐던 대형 가구와 기계 등이 장병들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수중도시됐던 전남 구례군…집중호우로 침수 #상인들 대부분 고령자…물건 치울 엄두 못내 #특전사·31사단·자원봉사자 찾아가 복구작업

13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 수해복구 작업에 투입된 특전사 소속 장병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3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 수해복구 작업에 투입된 특전사 소속 장병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구례 5일시장 상인들은 “장병들의 손길이 반갑기만 하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들 대부분이 고령자인 탓에 가벼운 잡화들은 꺼내서 물에 씻어 냈지만, 무거운 물건은 옮길 엄두조차 나지 않아 물기가 가득한 가게 내부에 방치하다시피 내버려 둔 상태였다.

“어떤 곳보다 구례군 상황 심각”

 구례 5일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전청일(79)씨는 “아직도 가게 내부는 물이 가득 찬 상태”라며 “지난 50년간 가게를 하는 동안에 물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특전사 장병들이 13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에서 침수피해로 물기를 먹어 무거워진 가구를 치우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특전사 장병들이 13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에서 침수피해로 물기를 먹어 무거워진 가구를 치우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수차례 각종 재해현장에 투입됐던 베테랑도 구례의 호우 피해에는 혀를 내둘렀다. 이날 구례 5일시장에 투입된 특전사 소속 이제용 소령은 “지난 몇 년 동안 경험해 온 수해현장 중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며 “침수 이후부터 악조건에서 버텨온 주민들이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31사단 장병 1900명도 투입

 광주·전남 향토사단인 31사단 소속 장병 1900여 명도 며칠째 전남 수해현장의 복구작업에 투입됐다. 폭우로 무너진 서시천 제방 바로 옆에 위치한 탓에 쑥대밭이 돼버린 구례군 양정마을이 대표적이다. 수마가 할퀴고 간 이곳에는 장병들의 손길이 닿으면서 진흙투성이가 됐던 주택과 비닐하우스, 축사가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찾고 있다.

13일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31사단 장병들이 침수피해로 인한 잔해를 치우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3일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31사단 장병들이 침수피해로 인한 잔해를 치우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31사단 방공중대 김태호 대위는 “지난 12일부터 근무자를 제외한 중대 전원이 양정마을 복구작업에 매달리고 있다”며 “집부터 가재도구 하나하나까지 모두 물에 잠긴 탓에 주민들이 편히 쉬지 못하고 있는데 빨리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 과수원이 침수돼 재해휴가를 받았음에도 휴가 대신 대민지원에 나선 장병도 있다. 31사단 93연대 박근창 일병은 “이번 집중호우 동안 부모님이 일구신 5500평 과수원이 침수됐다”면서도 “가족이 수해를 입어 가슴 아프지만, 지역 주민들의 일이 남 일 같지 않아 휴가 대신 대민지원에 나섰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7000명도 구례에서 구슬땀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들도 복구작업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 10일 799명의 자원봉사자가 구례군을 찾은 데 이어 ▶️11일 2035명 ▶️12일 2425명 ▶️13일 1913명이 주민들의 일손을 도왔다. 자원봉사자뿐만 아니라 생수와 식료품 등 구호 물품도 전국 각지에서 구례로 전해지고 있다.

13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이 침수된 상점 내부를 치우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3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이 침수된 상점 내부를 치우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구례군 관계자는 “군 장병이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장기적인 침수피해로 주민들의 안전문제는 물론, 지역경제까지 마비됐을 수도 있다”며 “구례군 또한 군 장병과 자원봉사자들이 복구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구례=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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