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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문자 껐더니 폭우문자 0건 "산사태·손씻기가 동급이냐"

중앙일보

입력

2일 충북 충주시 앙성면 한 축사가 산사태로 파손돼 있다. 축사에 딸린 주택에서는 산사태로 가스가 폭발하면서 집 주인 A씨(56·여)가 매몰돼 숨졌다. 뉴스1

2일 충북 충주시 앙성면 한 축사가 산사태로 파손돼 있다. 축사에 딸린 주택에서는 산사태로 가스가 폭발하면서 집 주인 A씨(56·여)가 매몰돼 숨졌다. 뉴스1

#1. 2020/08/02 09:32:59

09시 충주시 산사태 경보 발령. 시민 여러분께서는 대피명령이 있을 시 즉시 안전지대로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 2020/06/14 10:01:03

주말 외식할 때 지킬 에티켓 ①마스크/손위생은 기본 ②개인 접시에 덜어 먹기 ③술잔 돌리지 않기 ④식사 중 대화 자제 등 실천 바랍니다.

퀴즈. 최근 정부·지방자치단체가 국민에게 보낸 재난 문자 메시지 내용이다. 둘 중 ‘긴급 재난 문자’와 ‘안전 안내 문자’는 각각 어떤 것일까.

정답. 둘 다 안전 안내 문자다. 중요한 건 긴급 재난 문자냐, 안전 안내 문자냐에 따라 국민 안전에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산사태 경보는 ‘안전 안내’

11일 발송된 안전 안내 문자 메시지. 이가람 기자

11일 발송된 안전 안내 문자 메시지. 이가람 기자

지난 1일부터 전국 각지에 물 폭탄이 쏟아져 10일까지 3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재민도 7000여명에 달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가 각종 예·경보와 대피명령을 포함해 열흘간 발송한 재난문자 2155건은 모두 ‘안전 안내 문자’였다.

재난문자는 강도에 따라 ▶위급재난 ▶긴급재난 ▶안전안내 문자로 나뉜다. 행정안전부·지자체는 재난 정도에 따라 이를 구분해 발송한다. 위급재난 문자는 유일하게 수신 거부를 할 수 없다. 긴급 재난 문자는 40데시벨(㏈) 이상의 알림 소리와 함께 상황을 전파한다. 마지막으로 안전 안내 문자는 일반 문자 메시지 수신 환경과 같다. 올해 다수의 사망자를 낸 집중호우 관련 상황을 ‘긴급재난’이 아닌 ‘안전안내’로 분류한 셈이다.

“코로나 문자 차단했는데…”

이번 폭우 상황을 안전 안내 문자로 발송하자 '안전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안전 안내 문자가 쏟아지자 메시지를 차단한 경우가 많아서다. 1월 134건이던 안전 안내 문자 발송 건수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2월 들어 2577건으로 급증했다. 5월까지 4개월간 발송된 문자만 총 1만1616건이다. 그러나 ‘손 씻기 생활화’, ‘마스크 판매시간 안내’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일상적인 내용의 문자가 수시로 발송되자 '스팸'으로 여기는 경우가 늘었다.

급기야 재난문자를 차단하는 방법까지 공유됐다. 온라인상에는 ‘재난문자 안 받는 법’ ‘안전 안내 문자 차단하기’ 내용이 담긴 글들이 올라왔다. 안전 안내 문자는 휴대폰 설정에서 수신을 거부할 수 있다. 직장인 방모(31)씨는 “코로나 관련 문자가 밤늦게까지 스팸처럼 오길래 차단했다”며 “지진이나 홍수 소식은 중요할 것 같아 혹시 몰라 긴급 재난 문자만 오도록 설정해놨다”고 말했다.

안전 안내 문자를 수신 거부한 시민은 이번 집중호우 때 각종 예·경보와 대피명령과 관련된 재난문자를 받지 못했다. 천안에 사는 정모(27)씨는 “호우 특보와 산사태 경보는 긴급 재난 문자로 오는 줄 알고 있었다”며 “손 씻기 생활화와 외식 에티켓 관련 문자가 자연재해와 똑같은 방식으로 전송된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행안부 “규정 따랐다”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 [행정안전부 예규]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 [행정안전부 예규]

정부는 “규정에 따라 재난문자를 발송했다”는 입장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산사태나 홍수, 대설 등의 재난경보와 주의보는 모두 안전 안내 문자에 해당한다”며 “정부 당국과 지자체는 관련 예규에 따라 문자를 송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안부 예규에 따르면 위급재난은 공습경보·화생방경보 상황에 해당한다. 긴급재난은 테러 및 방사성물질 누출 예상 상황에만 적용된다. 이를 제외한 재난경보 및 주의보는 모두 안전안내 문자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재난문자 발송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폭우나 산사태 등은 사람의 생사가 달린 아주 긴박한 상황인데 생활 안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다루는 매뉴얼은 문제가 있다”며 “전쟁이나 테러뿐만 아니라 사망자 발생 우려가 있는 재난 상황도 긴급 재난 상황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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