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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전셋값 역대 최고 수준 찍었는데…文 "주택시장 안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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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임대차3법 등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임대차3법 등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10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천막시위가 열렸다. 8·4 부동산 대책에서 발표한 6000여 가구의 공공주택 공급 계획에 반발하는 마포구민이 모였다. 유동균 마포구청장도 청사 앞에 천막을 쳤고, 노인도 아이도 빗속에서 ‘기반시설 고려 없는 졸속행정 철폐’ ‘선정근거 제시하고 회의록 공개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목에 걸고 섰다.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또 부동산 낙관론 펼친 문 대통령 #공급ㆍ세제ㆍ임대차 관련 팩트체크

4시간 뒤인 오후 2시,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부동산 관련 규제 및 공급책을 나열하며 “종합대책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고, 과열 현상을 빚던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오후 3시30분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50분간 부동산 정책의 의미와 효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부동산 시장 관련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번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서울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시위가 이를 방증한다. 문 대통령의 주요 발언을 팩트 체크했다.

①"집값 상승세 진정"(X)…서울 아파트값 여전히 상승 

문 대통령은 이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 분위기는 다르다. 지난 4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7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8억4684만원으로 사상 최고액을 경신했다. 서울 아파트 절반 이상이 이 금액보다 비싸다는 의미다. 6월(8억3542만원) 대비 1142만원(1.4%) 올랐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95㎡는 지난달 35억7000만원에 거래되면 3.3㎡당 가격이 1억 원을 넘어섰다.

전세 시장 분위기는 더 심상치 않다. 지난 7월 전국 전셋값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전국 주택 전세가격 지수는 7월 100.898(기준 100=2019년 1월 가격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86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②"획기적인 공급대책"(X)…7만 가구 공급은 추정치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에 재건축 갈등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뉴스1]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에 재건축 갈등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뉴스1]

주택 공급대책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실수요자를 위한 획기적인 공급대책을 마련했다”며 “신규택지 발굴과 공공참여형 고밀도 재건축 등으로 무주택자, 신혼부부와 청년 등 실수요자들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대폭 늘렸다”고 말했다.

13만2000가구의 공급 계획을 밝힌 8ㆍ4대책을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이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공재건축(5만 가구)과 공공재개발(2만 가구) 물량이 그야말로 추정치다. 특히 공공재건축의 경우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전 상태인 26만 가구의 재건축 물량의 20%가 참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대치동 은마 등 대다수 재건축 조합은 공공재건축 사업에 불참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를 준다지만, “기대수익률을 기준으로 90% 이상을 환수하겠다”(홍남기 부총리)고 하니 선뜻 나서는 재건축 단지가 없다.

임대 주택 위주의 공급 정책은 여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조차 반발하고 있다. 임대와 분양, 청년과 비청년 등 계층과 세대 간의 갈등도 날로 심화하고 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확한 시장 진단을 바탕으로 한 정책이 아니라, 나쁜 수요, 좋은 수요로 가르고 (정부 판단 상) 좋은 수요만 독려하는 비민주적인 주택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③"외국보다 보유세 낮다"(△)…인상 속도 빠르고 1주택자 부담 증가

문 대통령은 세제 강화 위주의 정책에 낙관적인 전망을 펼쳤다. “세제를 강화하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세계의 일반적 현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만 콕 짚어 “부담을 높였지만 다른 나라보다 낮다”고 강조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부동산 세제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보유세 비중은 0.9%로, OECD 평균인 1.1%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취득세를 포함한 거래세 비중은 1.5%로, OECD 평균(0.4%)보다 4배가량 높다.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7ㆍ10대책엔 부동산 관련 세금을 한꺼번에 끌어올렸다. 취득세 최고세율은 4%에 12%로, 종부세는 3.2%에서 6%로, 양도소득세는 40%에서 70%로 상향하는 방안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주택에 관련한 세제는 취득ㆍ보유ㆍ양도 3단계의 총합으로 봐야 한다”며 “정부가 이 세 가지를 유례없이 모두 올리면서 1주택자라도 조세 부담이 상당히 커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보유세 인상이 세계적인 추세지만 한국처럼 보유세는 물론 취득세와 양도세를 한꺼번에 올리는 곳은 없다”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지나치게 규제 중심”이라고 말했다.

④"선진국 무제한 계약갱신 청구권"(△)…부작용에 골머리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전셋값 폭등 및 전세 품귀 현상으로 비어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전셋값 폭등 및 전세 품귀 현상으로 비어있다. [연합뉴스]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ㆍ전월세상한제ㆍ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전쟁터가 된 임대차 시장 관련해서도 해외 기준을 들었다. 문 대통령은 “주요 선진국들은 일정한 예외 사유가 없는 경우 무제한 계약갱신 청구권을 적용하고 있고, 주요 도시에서 표준 임대료 등으로 상승 폭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독일 등 선진국은 강력하고 적극적인 세입자 보호에 나섰다가 임대료 폭등과 임대 주택 품질 저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입자 천국’으로 불리는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에서는 세입자가 임대인 실거주 등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기한 제약 없이 거주할 수 있다.

베를린 등 대도시는 2013년부터 3년간 임대료 상한선을 기존 20%에서 15%로 낮췄다. 하지만 세입자 보호법이 강화될수록 임대료는 올랐다. 독일 부동산컨설팅업체 불빈게사(BulwienGesa)에 따르면 베를린을 비롯해 뮌헨, 쾰른, 프랑크푸르트 등 7개 대도시의 평균 임대료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평균 57% 올랐다. 집주인이 리모델링 등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활용해 일제히 임대료를 올렸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1991년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했지만, 임대주택의 질이 떨어지고, 공급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영국은 과거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상한제를 운용했다가 대부분 폐지했다. 영국 민간 임대주택의 80%가 임대 기간 6개월~1년의 단기임대차 계약(2018년 기준)이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해외에서는 세입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 정책으로 임대시장의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며 “한국처럼 임대인만 규제하는 대책은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임대차 보호를 제도로 만드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하면서 시장의 원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염지현ㆍ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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