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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제친 ‘강철비2’ 주역 신정근 “뜰 줄 알고 큰 그림 그렸죠”

중앙일보

입력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에서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을 연기해 관객의 호평을 집중시킨 배우 신정근.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에서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을 연기해 관객의 호평을 집중시킨 배우 신정근.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대기만성이란 말도 부족하다. 1987년 극단 ‘하나’ 단원으로 연기를 시작해 97년부터 스크린과 안방에서 고루 ‘감초 조연’으로 활약한 것만 20여년. 누구라도 한번쯤 봤을 법한 이 얼굴이 최근 15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에서 잊지 못할 ‘북의 얼굴’로 떠올랐다.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을 연기한 배우 신정근(54) 얘기다. “정우성이 아니라 신정근이 진짜 주인공”이란 후기가 쏟아질 정도다.

'강철비2-정상회담'의 북한 잠수함 부함장 역 # 우직한 연기와 철저한 분석 '숨은 주역' 호평 # “언젠가 뜰 줄 알았다, 성실하게 준비했으니”

“자꾸 추켜세우니 걱정스러워요. 이제 마음대로 당구치고 산 다니던 시절은 끝났다 싶고…. 대본 받았을 때부터 멋진 배역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뜨거운 반응이) 놀랍죠.”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정근은 “진짜 히든카드” “라이징 스타”라는 세간의 호평에 쑥스러워했다. “다른 셋(정우성·유연석·앵거스 맥페이든)은 팩트(실제)에 가깝고 나는 창조적 인물이라 매력이 플러스 된 것 같다. 북한 군인이 남한 대통령까지 구하니 좋게 보이나보다”고 했다. “함께 작품 했던 이들이 응원 문자 많이 보내준다. 오늘은 이정은이 ‘인터뷰 잘하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에서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을 연기한 배우 신정근. 잠수함 전단장이라는 최고 지위에서 부함장으로 강등된 군인으로서 일촉즉발의 대결 상황을 해결하는 '숨은 주역'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에서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을 연기한 배우 신정근. 잠수함 전단장이라는 최고 지위에서 부함장으로 강등된 군인으로서 일촉즉발의 대결 상황을 해결하는 '숨은 주역'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애신(김태리) 가문의 충복 '행랑아범'을 연기했던 신정근(왼쪽). 당시 함안댁으로 호흡을 맞춘 이정은과는 지금도 절친하게 교류하는 사이다. [사진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애신(김태리) 가문의 충복 '행랑아범'을 연기했던 신정근(왼쪽). 당시 함안댁으로 호흡을 맞춘 이정은과는 지금도 절친하게 교류하는 사이다. [사진 tvN]

‘션샤인’의 행랑아범, ‘델루나’의 김선비 역

‘기생충’의 이정은과는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행랑아범과 함안댁으로 호흡을 맞춘 사이. 구한말 망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러브스토리에서 ‘애기씨’(김태리)의 충복을 연기한 두 사람은 코믹과 비애를 오가며 시청자 마음을 흔들었다. 신정근은 지난해 ‘호텔 델루나’에선 500년을 근무한 바텐더로서 꼿꼿하면서 유들유들한 ‘학대가리 선비’ 면모를 과시했다. 영화에서도 동네 건달(‘거북이 달린다’), 폭탄 제조 전문가(‘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은근한 코미디가 장기였다. 실제 코믹한 역할을 선호하는 편이었다고.

“대체로 (조연 제의는) 주인공들이 결정된 다음에 오는데, 주로 무리 속에 들어가 있는 코믹한 역할을 골랐어요. 그래서 ‘강철비2’는 소속사에서 대본 보냈을 때 ‘이걸 나보고 하라고? 영화사 가서 협박했냐?’고 되물었죠. (캐스팅 된 건) 아무래도 외모에서 북한군 냄새가 많이 나서 아닌지…(웃음).”

다소 투박한 외모가 우직한 부함장 역할에 적격이었던 건 사실. 같은 소속사인 정우성도 “분장 안 해도 될 만큼 딱이다 싶어” 그를 추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극단 시절 후배들 잘 살피는 형의 모습이 배역에 어울린다 싶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실제로도 “후배들에게 거칠게 하다가도 어깨동무 하는 스타일”이란다. 영화 속 ‘잠수함 내전’에 휘말린 상황에서 젊은 사병들을 다독이는 노련한 리더십이 그저 ‘연기’로만 된 게 아니란 얘기다.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에서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을 연기한 배우 신정근. 잠수함 전단장이라는 최고 지위에서 부함장으로 강등된 군인으로서 일촉즉발의 대결 상황을 해결하는 '숨은 주역'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에서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을 연기한 배우 신정근. 잠수함 전단장이라는 최고 지위에서 부함장으로 강등된 군인으로서 일촉즉발의 대결 상황을 해결하는 '숨은 주역'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해도 그려가며 북한 ‘포커 페이스’ 소화

양우석 감독이 그에게 주문한 건 ‘포커 페이스’였다. 실제로 칠흑 같은 바다에서 의문의 돈자루를 챙기는 첫 등장 이후 한참 동안 그의 실제 속내는 드러나지 않는다. 극의 주요 인물들 간 갈등이 한바탕 해소된 뒤에야 진짜 그의 얼굴과 연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미세한 소음의 정체까지 간파하며 심해의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전략가적 면모는 영화 전체에 긴장감과 신뢰를 더한다.

“원래 자료 조사를 많이 하고 현장에 집중하는 편이예요. 이번에도 각국 잠수함이 배치된 해도를 구해 A4용지에 그림 그려가며 대사를 암기했죠. ‘심흥택 해산으로 간다’ ‘좌현 얼마 틀어’ 이런 걸 시뮬레이션하는 거죠. (영화 자문인) 김용우 함장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직접 액션을 벌인 장면은 없지만 날렵한 군인으로 보여야 해서 좁은 잠수함 속 동선 체크를 습관적으로 했다. “축구도 오래 하고 등산도 거의 매일 가는데다 젊어서 복싱했던 게 있어서인지” 준비된 체형처럼 비친다. 그간의 감초 역할과 사뭇 다른 이번 배역은 “제가 많이 간 것도, 배역이 다가온 것도 아닌 중간쯤”이라는데 맞춤옷처럼 딱 맞는다. 남한 대통령 한경재(정우성)와 “일 없습니다”를 주고받으며 교감하는 대목은 긴 말 없이도 ‘한민족’을 되새기게 한다.

양우석 감독이 자신의 웹툰(스틸레인)을 토대로 '강철비'에 이어 만든 '강철비2: 정상회담'. 가상의 남북한 관계를 펼친 내용으로, 후반부는 한국 대통령 한경재(정우성)와 북한군 부함장 장기석(신정근)의 묵직한 콤비 플레이가 빛난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양우석 감독이 자신의 웹툰(스틸레인)을 토대로 '강철비'에 이어 만든 '강철비2: 정상회담'. 가상의 남북한 관계를 펼친 내용으로, 후반부는 한국 대통령 한경재(정우성)와 북한군 부함장 장기석(신정근)의 묵직한 콤비 플레이가 빛난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나이도 그렇고 카메라 앞에 선 경력이 잘 만나서 아닐까요. 한 살씩 먹으면서 점점 더 편안해져요. 연기를 모를 땐 내 것만 하는데 이젠 남의 대사를 듣고 반응을 하는 게 느는 거죠.”

악당, 강간범, 지나친 코믹 연기 피한 이유는

오랜 세월 무명으로 지내는 동안 술자리로 자주 어울렸던 동료들이 있다. 마동석·오정세·고창석·박혁권 등 일명 ‘신스틸러 모임’인데 요즘은 다들 바빠서 잘 모이지 못한다고. “이젠 다 잘 됐다. 저만 좀 뒤쳐져 있었는데, 이런 날 올 줄 알았다”면서 그간 배역 고를 때 철칙을 털어놨다.

“한 배역에 너무 깊이 가지 말자. 악당·강간범 같은 건 하지 말자. 너무 코믹하게도 말자…. 코믹이 이슈가 돼 바로 올라가더라도 한 배우가 얼마나 많이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성실하게 하면 언젠가는 올라갈 거니까. 하하, 큰 그림 그리길 잘했죠.”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에서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을 연기해 관객의 호평을 집중시킨 배우 신정근.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감독 양우석)에서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을 연기해 관객의 호평을 집중시킨 배우 신정근.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숱한 필모그래피에도 영화 ‘거북이 달린다’(2009)로 수상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조연상 이래 이렇다할 상복이 없다. 이번에 기대해봄직하다고 말 건네자 그는 “주신다면 잘 받겠지만, 요즘 친구들이 너무 잘해서 금방 또 지나갈 것”이라며 몸을 낮췄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앞으론 숙제가 더 많이 생겼어요. 다음 작품에 ‘이렇게밖에 분석을 못해오나’ 소리 들으면 어떨까 싶고. 더 완벽해져야 할텐데…. 배우는 계속 준비하는 수밖에 없어요. 후배들 만나서 ‘포기하지 마라’ 하는 것도 실은 그러면서 내가 나를 세뇌시키는 거예요.”

인터뷰 도중 그가 “감독님이 나한테 놀란 게 세 가지 있다는데 그걸 제대로 물어보질 못했다”고 지나가듯 말했다. 양 감독에게 따로 물어보자 이런 답이 왔다. “일단 연기를 너무 잘 해서 감사하고, 시나리오 해석과 메소드 연기 능력도 놀라웠다. 또 어르신 격인데 흐트러지지 않고 후배들을 챙겨주시는 게 보기 좋고 존경스러웠다.”
어둠 속에 나타나 엔딩 즈음 햇빛 속에 떠오른 장기석의 절치부심을 배우 신정근에게서 재확인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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