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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한숨’의 한국 대통령, 정우성만이 할 수 있는 공감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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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 감독이 자신의 웹툰(스틸레인)을 토대로 '강철비'에 이어 만든 '강철비2: 정상회담'. 가상의 남북한 관계를 펼친 내용으로, 1편의 주연 정우성, 곽도원이 2편에선 서로 남북한 입장을 뒤바꾼 새로운 캐릭터, 스토리로 다시 뭉쳤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양우석 감독이 자신의 웹툰(스틸레인)을 토대로 '강철비'에 이어 만든 '강철비2: 정상회담'. 가상의 남북한 관계를 펼친 내용으로, 1편의 주연 정우성, 곽도원이 2편에선 서로 남북한 입장을 뒤바꾼 새로운 캐릭터, 스토리로 다시 뭉쳤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평화협정 여정에서 (당사자이지만 서명 권한이 없는) 대한민국 지도자는 참 외롭겠구나 싶었다. 첫 촬영이 북한 원산 배경의 남북미 삼자회담이었는데 너무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이 땅에 사는 당사자인데도 소리를 못 내고 참아야 하는. 외롭고 고뇌가 많은 직업이다 싶더라.”

오는 29일 개봉하는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2-정상회담’에서 한경재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의 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관계를 비집고 북·미 수교협상을 중재하며 북한 핵잠수함 위기를 해결하는 ‘중재자’ 역할이다. 비록 가상의 근미래를 설정했다지만 4·27 남북 정상회담을 필두로 수차례 북·미 정상의 만남까지 지난 2년여의 엎치락뒤치락 회담 과정이 영화 전반부에 지문처럼 찍혀있다. 특히 북측 지도자 조선사(유연석)나 미국 대통령 스무트(앵거스 맥페이든)에 비해 자국 현직 대통령을 스크린에서 연기한 정우성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29일 개봉하는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2-정상회담’에서 북미 협상을 중재하고 북한 핵잠수함 위기를 해결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를 소화한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29일 개봉하는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2-정상회담’에서 북미 협상을 중재하고 북한 핵잠수함 위기를 해결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를 소화한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한반도가 주인공인 똑똑한 시리즈”

2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성은 그런 부담을 감추지 않았다. 나아가 그간 국제구호단체 친선대사를 하면서 국내외 난민 문제 등에 정치·사회적 발언을 아끼지 않은 게 관객들에게 편향된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내비쳤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를 선택한 건 “한반도 현실에 대해 각자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그 감정이 어디서 초래하는지, 영화 보고 스스로 말해달라”고도 했다.

29일 개봉 양우석 감독 신작 '정상회담' #'강철비' 북측 요원에서 180도 연기변신 #"당사자인데 인내 해야하는 외로운 직업 # 국민 모두 내 일로 돌아보는 영화 되길"

‘강철비’ 1편(2017)에 이어 다시 출연하게 된 까닭은.

“똑똑한 기획이라서다. 이런 프랜차이즈물은 히어로물이나 코미디가 많은데. 전혀 다른 장르에서 심지어 캐릭터나 스토리의 연속성이 없는데도 하나로 연결된다. ‘정상회담’도, 전편인 ‘강철비’도 한반도가 주인공이다. 이번 시나리오 역시 굉장히 직설적이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싶었다. 국제정세 안에 놓인 한반도 이야기란 게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데 제3의 입장과 시선이 개입되니까.”

양우석 감독이 자신의 웹툰(스틸레인)을 토대로 '강철비'에 이어 만든 '강철비2: 정상회담'. 가상의 남북한 관계를 펼친 내용으로, 1편의 주연 정우성, 곽도원이 2편에선 서로 남북한 입장을 뒤바꾼 새로운 캐릭터, 스토리로 다시 뭉쳤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양우석 감독이 자신의 웹툰(스틸레인)을 토대로 '강철비'에 이어 만든 '강철비2: 정상회담'. 가상의 남북한 관계를 펼친 내용으로, 1편의 주연 정우성, 곽도원이 2편에선 서로 남북한 입장을 뒤바꾼 새로운 캐릭터, 스토리로 다시 뭉쳤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양우석 감독이 스토리작가로서 2011년부터 연재한 웹툰 ‘스틸레인’ 시리즈에 기반하고 있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벌어져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가 부상당한 1호를 남한으로 데려온다는 판타지 설정의 ‘강철비’는 2017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돼 445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번엔 남과 북 연기자가 바뀌어 정우성이 남측 정상을, 곽도원은 핵무기 포기와 평화체제 수립에 반발하는 북 호위총국장 박진우를 맡았다. 갖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원산에서 처음 열리게 된 남북미 정상회담에서 삼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북한의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한치 앞을 모르게 흘러간다.

이번 영화를 위해 외교전문가 등도 만나봤나.

“양 감독 본인이 전문가 수준이다(웃음). 나이를 먹다보니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이 가서 (평소에) 찾아보고 읽었다. 전부 다 만나서 얘기할 필요까진 없지 않나. 대한민국 지도자가 이런 이슈를 놓고 참 외롭겠구나 싶었다.”

양우석 감독이 자신의 웹툰(스틸레인)을 토대로 '강철비'에 이어 만든 '강철비2: 정상회담'. 가상의 남북한 관계를 펼친 내용으로, 1편의 주연 정우성, 곽도원이 2편에선 서로 남북한 입장을 뒤바꾼 새로운 캐릭터, 스토리로 다시 뭉쳤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양우석 감독이 자신의 웹툰(스틸레인)을 토대로 '강철비'에 이어 만든 '강철비2: 정상회담'. 가상의 남북한 관계를 펼친 내용으로, 1편의 주연 정우성, 곽도원이 2편에선 서로 남북한 입장을 뒤바꾼 새로운 캐릭터, 스토리로 다시 뭉쳤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내 이미지가 영화에 부담될까 고민도 

정우성은 출연하기까지 고민도 털어놨다. “시나리오 볼 때부터 나란 배우가 어느 순간 갖게 된 이미지가 이 영화에 얹히면 장애가 되지 않을지 고민스러워 ‘그래도 괜찮겠냐’고 감독님께 물었다.”

정치 이미지에 대한 부담 말하나.

“그런 이미지로 부각시키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우리 민족의 통일만 넣으려고 해도 편향적인 (시선으로 보고)…. 나 역시 한경재의 고민과 같았다. 일종의 무기력이다. 어쩔 수 없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우려에 대해, 감독님이 충분히 알고 계시냐, 감당하실 거냐고 물은 거다.”

- 그런데도 캐스팅됐다.
“아마도 ‘강철비’를 하면서 내가 말 없을 때의 표정과 눈빛 연기를 눈여겨보신 듯하다. 한경재가 침묵하고 인내해야 하는 표정 이미지가 많으니 말이다.”

납치된 세 정상은 북한 핵잠수함에 인질로 갇히고 좁은 함장실에서 어쩔 수없이 무릎을 맞댄 채 ‘민낯 토론’이 이어진다. 정우성 스스로 가장 캐릭터를 대변하는 대사로 ‘깊은 한숨’을 꼽을 정도로 인내가 반복된다. “한숨을 따로 연습하진 않았다. 상황에서 절로 나왔다”며 웃었다.

29일 개봉하는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2-정상회담’에서 북미 협상을 중재하고 북한 핵잠수함 위기를 해결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를 소화한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29일 개봉하는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2-정상회담’에서 북미 협상을 중재하고 북한 핵잠수함 위기를 해결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를 소화한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실제 정상회담 속 대통령의 모습을 참고했나

“어떤 캐릭터이든 그 모습 자체를 카피(복제)할 순 없다. 한경재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두 정상의 만남이 파행으로 치닫지 않도록 뒤에서 쫓아가면서도 물러설 수 없는…. (세 정상의 군 사열 장면처럼) 간절한 바람으로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이라고 봤다. 정상회담에 임할 때나 잠수함 속에 갇혔을 때 그가 지키려고 하는 목표, 지향점, 철학, 이런 걸 강화시키는 게 최선이었다.”

“한숨 따로 연습 안해…절로 나왔다”

영화 속 한경재의 선택엔 공감이 가나.

“분명히 어떤 직업군, 특히 정치인은 공심(公心)에 입각해야 한다. 한경재는 끊임없이 공심이 뭔지, 그걸 지키려고 하는 캐릭터라고 봤다. 사실 우리의 당면과제는 수십년이 걸릴 수 있고 정치적 결단이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우리 모두의 숙제인데, 이걸 얼마나 당사자 입장에서 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영화라고 본다. 국민 모두가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어떤 무장보다 가장 중요한 무기 아닐까.”

영화는 잠수함 속 세 정상의 대화가 실제 정상회담 상황의 은유로 보일 수 있게끔 설계됐다. 정우성은 “통역 장면에서도 비치지만, 정치 세계에선 같은 말을 써도 혼선이 있고 못 알아듣는 척한다. 좁은 데 있으면서 격식을 버린 코미디인데, 대사 말미에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끼워넣은 것은 (감독의) 똑똑한 선택인 것 같다”고 말했다.

1편에 비해 개인적으로 액션 신이 부족하지 않았나?

“뭐, 대통령이 ‘(잠수함더러) 부상하라!’ 할 수도 없지 않나(웃음). 대신 잠수함 해전이라는 완성도 높은 액션이 (다른 배우들 덕에) 나왔고 그걸 관객에게 드리는 만족감이 훨씬 크다. 시즌1 때와 달리 양 감독이 2편 때 더 초조해 하는 느낌이었다. 완성도와 구현에 대한 갈구가 느껴졌다.”

양우석 감독이 자신의 웹툰(스틸레인)을 토대로 '강철비'에 이어 만든 '강철비2: 정상회담'. 가상의 남북한 관계를 펼친 내용으로, 1편의 주연 정우성, 곽도원이 2편에선 서로 남북한 입장을 뒤바꾼 새로운 캐릭터, 스토리로 다시 뭉쳤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양우석 감독이 자신의 웹툰(스틸레인)을 토대로 '강철비'에 이어 만든 '강철비2: 정상회담'. 가상의 남북한 관계를 펼친 내용으로, 1편의 주연 정우성, 곽도원이 2편에선 서로 남북한 입장을 뒤바꾼 새로운 캐릭터, 스토리로 다시 뭉쳤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후반부의 압도적인 잠수함 신에선 북측 부함장 역할의 신정근 배우의 열연이 돋보인다. 정우성은 “형이 대학로에서 연극하면서 후배들 보살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부함장이 승조원들에게 한마디 툭툭할 때 느낌이 딱 맞아서 추천했다. 영화 속 한경재가 인간적 교감을 억누르고 있다가 그와 만나 (교감이) 살아나는 대상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북한 지도자를 연기한 유연석에 대해선 “조선사라는 인물이 가져야 할, 결정권자이면서 묘하게 흔들리는 면모를 딱 맞게 소화했다. 배우로서 그가 어떻게 접근하고 고뇌하는지를 보니까. 마음에 와닿고 예쁜 후배”라고 말했다.

26년 연기 원동력? 매번 새 작품

양우석 감독은 ‘강철비’ 후에 정우성에게 “코미디를 하면 잘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스스로는 “왜 그런 얘길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배우 정우성에겐 코미디와 서글픔을 묘하게 오가는 페이소스가 있다. 사당동 판자촌 등을 전전했던 곤궁한 유년기부터 돋보인 외모 덕에 데뷔작부터 주연을 맡았지만(1994년 ‘구미호’) 오랫동안 ‘연기자’보다는 ‘스타’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26년간 쌓인 필모그래피의 단단함만큼이나 이젠 연기의 여유가 풍긴다. 아내(염정아)로부터 등짝을 맞고 딸에게 절절 매는 생활인 한경재에 대해선 “웃기기 위해서 캐릭터의 성격을 다 바꿀 필요는 없다. ‘피식’할 정도로 캐릭터의 인간적 모습을 드러내면 된다”고 해설했다.

29일 개봉하는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2-정상회담’에서 북미 협상을 중재하고 북한 핵잠수함 위기를 해결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를 소화한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29일 개봉하는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2-정상회담’에서 북미 협상을 중재하고 북한 핵잠수함 위기를 해결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를 소화한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시리즈 계속 될까? 다음 편도 출연할 건가?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해야 하지 않겠나. 같이 하자고 해놓고 3편 시나리오에 내가 들어갈 여지가 없으면…. 배우로서 매 작품이 원동력이다. 매번 다른 환경에서 다른 감정을 고민하는 것. 선택의 폭에 제한을 두려고 하진 않는데, 아무래도 새로운 관점의 시도에 끌린다. (이번 영화에서 총국장 역할 같은 건?) 아니, 그건 곽도원이 더 잘해요. 하하.”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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