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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현철의 시선

산으로 가는 검찰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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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현철 논설위원

최현철 논설위원

‘더(The) 위대한 검찰’

집권 전부터 준비한 개혁 밑그림 #정권 초 적폐수사에 취해 외면 #‘검찰=피해자’ 구도 돼 물 건너가

2011년 12월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 북 콘서트의 이름이다. 문재인 대통령(당시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낸 김인회 인하대 로스쿨 교수와 함께 쓴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해 정연주 KBS 사장, 나꼼수, PD수첩 등 진보 진영을 향한 검찰의 파상적인 수사가 휩쓸고 지나간 시점이다. 절치부심하며 쓴 이 책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검찰 개혁의 원형(元型)이 담겨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검찰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수사와 기소·수사지휘권까지 독점한 검찰은 그 권한을 남용하고 부패한다. 권한을 더 키우고 유지하기 위해 정치권력과 야합한다.(권력 비리 뭉개기와 반대파 표적 수사) 수사·소환 과정과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인사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무죄가 나오면 검사는 문책받아야 하지만 오히려 인사로 보상을 받죠. 이렇게 생기는 줄서기 풍토를 반드시 청산해야 합니다.”

어떻게 청산할까?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견제와 균형을 강조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힘의 균형을 맞추고, 공수처(당시에는 고비처)를 만들어 자기 머리 못 깎고 정치권 눈치 보는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다음 대선에서) 민주개혁정부가 수립되면 꼭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한 차례 패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집권에 성공했다. 뼈저린 문제의식과 명확한 방향, 밑그림까지 있는 데다 지지율은 압도적이니 검찰 개혁은 순풍에 돛을 단 정도가 아니라 힘 좋은 엔진을 장착한 쾌속선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배는 산으로 가고 있다. 지난달 30일 나온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안’은 코미디에 가깝다. 검찰이 공무원 범죄 수사를 하되 4급만 하라니…. 뇌물 범죄도 미리 액수가 3000만원이 넘는지 파악한 뒤 인사철을 피해서 해야 할 판이다. 왜 그랬을까? 야당의 반대나 검경의 저항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사공의 오판이 부른 참사다. 사공은 당시 콘서트 사회를 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정권 초기에 전 정권 인사들을 향해 사정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검찰의 오래된 생존 방식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들만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다 그랬다. 이번 정부에선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해 적폐수사라는 이름의 칼을 맡겼다. 너무나 잘 들었다. 이어 윤 지검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하고, 그 측근들이 법무부와 대검, 중앙지검의 특수와 공안라인을 장악하는 것을 방관했다. 문 대통령 스스로 청산대상이라고 꼽았던 ‘인사 보상’이 이뤄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직접 수사의 핵심인 특수부 인력은 오히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시기에 조국 민정수석이 총대를 메고 만든 검찰 개혁안에서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는 실종되고 만다. 직접 수사 대상을 부패와 공직자 등 6대 범죄로 한정했지만 사실상 직접·인지 수사는 그게 전부다. 대신 선택한 것이 대통령이 수장과 검사를 임명하는 공수처 신설,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주는 수사권 조정이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조 전 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의 흠결을 발견한 검찰은 칼의 방향을 돌렸다. 조국 수호와 조국 반대로 나라가 갈라졌고, 검찰 개혁의 골든 타임은 사실상 날아갔다. 뒤늦게 검찰 직접수사의 위험을 느낀 정부가 내놓은 것이 코미디 같은 ‘4급 전용 수사 방안’이다. 그나마 법이 아닌 법무부령으로 정한다고 한다. 상위법에도 위배되는 이 규정은 노련한 칼잡이들에 의해 다음 정권에서 손쉽게 뒤집어질 것이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허용한다면 최소한 공정하게 쓰는 방안이라도 모색해야 할 텐데 이 정권은 중립적인 수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우리 편을 건들면 노골적으로 보복한다. 1년 전만 해도 “우리 총장님”이라고 하더니 얼마 안 가 그 측근들을 모조리 좌천시켰다. 그래도 성에 안 차는지 총장의 최측근을 구속하려 했다. 검찰은 개혁 대상이 아니라 탄압받는 정의의 수호자가 돼버렸다. 오죽하면 검찰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한 야당마저 윤석열 사단의 무운을 빈다고 선언했겠나.

개혁 대 반개혁이 아닌 권력과 피해자 구도가 짜이는 한 검찰 개혁은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몇몇을 날리고 새 인물로 채워 개혁의 흉내를 내겠지만, 그들도 결국 검사다. 권한은 그대로 있고, 자료는 캐비넷에 쌓여있다. 정권이 바뀌면 지금과 같은 일은 반복될 것이다. 산으로 간 배는 영영 바다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

최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