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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우리들의 ‘천박한’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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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서울, 특히 강남을 주 테마로 삼은 이는 시인 겸 영화감독 유하다. 1990년대 말 시집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거대 담론의 80년대가 저물고 욕망·개인·소비·문화의 시대가 열리는 전환기, ‘압구정동’에 프리즘을 댔다. 이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강남 개발 붐이 일던 70년대 말 서울 양재동 남자 고등학교를 무대로, 학교에 내재화된 폭력적 군사문화를 그렸다. ‘강남 1970’은 본격적으로 강남 개발기를 다룬 영화다. 복부인, 조폭, 정치권력이 뒤엉킨 ‘탐욕의 지옥도’를 펼쳐 보였다.

천박한 도시라는 여당 대표의 발언 #특정 지역 편갈라 낙인찍기 부적절 #욕망 단죄보다 잘 읽어야 정책 효과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강에서 괴물이 출현했다. 해외 관객들에게는 바다처럼 넓은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풍경부터가 인상적이었을 영화다. 이 영화엔 서울 잠실 출신인 봉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숨어 있다. 고교 시절 아파트에서 잠실대교를 내다보다 괴이한 생명체가 기어오르는 장면을 목격한 게 아이디어의 출발이다.

최근 서울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등장했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미드 ‘센스8’, 마블 영화 ‘어벤져스2’다. ‘어벤져스2’는 강남 테헤란로, 상암동을 누비며 도심 액션신을 찍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외국 영화의 서울 로케이션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앞서 70~80년대 군사정권 때는 ‘서울찬가’류의 ‘관제 건전가요’들이 있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에 대해 “천박한 도시”라는 발언으로 ‘실언’ 리스트를 추가했다. 세종시청의 토크 콘서트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언급하면서 “(프랑스) 센강에는 노트르담 성당 등 역사 유적이 쭉 있어 그게 관광 유람이고, 프랑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안다. 우리는 한강변에 아파트만 들어서 단가 얼마얼마라고 하는데,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이 파리보다 문화도시의 품격이 떨어져 안타깝다는 뜻이겠으나, 다른 누구 아닌 집권 여당 대표의 발언이라 부적절하다. 어느 도시에든 역사성과 배경이 있고,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초고층 빌딩숲 옆 전통시장’처럼 이질적 요소가 공존하는 불균질성·역동성을 큰 매력으로 꼽는데, 이 대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서울이 과밀의 메가시티로 성장하면서도, 연일 얼굴을 바꾸며 근사해져 간다고 느끼는 서울 시민의 자부심도 구겼다.

사실 이 대표가 정말 천박하다고 여긴 것은 단지 한강변 아파트 풍경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곳을 지배하는 어떤 욕망, 그 욕망에 사로잡힌 어떤 사람들을 겨냥한 것 아닐까. 예술가가 강남의 탐욕을 질타하거나 성냥갑 아파트의 천박한 미감을 조소할 수는 있지만, 정치인의 언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중(국민)의 욕망을 함부로 단죄하며, 특정 지역(민)을 편 갈라 낙인찍는 정치 프레임일 뿐이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는 “여행자에게는 파리가 문화와 낭만의 센 강변이겠지만 힘겨운 도시 노동자에게는 천박한 도시일 수 있듯이 서울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부동산이든 수도 이전 정책이든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탐구가 빠진 정책이 도시를 천박하게 만든다”고 썼다. 미국 오바마 정부 때 정책의 심리적 작동에 대한 과학적 평가와 제안을 담당하는 ‘사회 및 행동 과학 부서(SBST)’를 신설해 조세·보험·복지·에너지 부문에서 성과를 냈던 사례도 소개했다.

한강의 멋진 야경을 선사하는 것이 고층 아파트의 불빛이지만 그 역시 서울의 모습이고 역사며 스토리다. 이 대표는 “한강을 배 타고 지나가다 보면 ‘무슨 아파트는 한 평에 얼마’라는 설명을 쭉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런 문화적 빈곤이 더 문제다. ‘괴물’을 찍은 원효대교, 강남 개발기에 형성된 신사동 유흥가의 ‘원 나잇 스탠드’를 그린 추억의 가요 ‘제3한강교’(당시 ‘퇴폐적’ 가사가 심의에 걸려 수정됐다), 2010년대 도시 서민의 애환을 노래한 ‘양화대교’ 등 한강 다리가 품은 얘기만도 여럿이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