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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모기가 얼마나 싫었으면…정약용이 남긴 시 ‘증문’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58)

눈이 마주쳤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상 모기란 녀석은 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작으니 하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맨 처음 마주한 게 하필 모기라니! 잠이 확 달아났다.

촘촘히 엮인 모기장 바깥 면에 작은 몸을 밀착하고 있는 걸 보니 밤새 나를, 아니 내 피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정말 얄밉다. 하지만 내게는 최강 무적 모기장이 있다는 걸 모르는 모기다. 단 3초 만에 나만의 안전 기지를 만들어주는 원터치 모기장을 말이다.

70년대, 커다란 모기장은 온 가족의 여름 필수품이었다. 갤럭시탭S6. [사진 홍미옥]

70년대, 커다란 모기장은 온 가족의 여름 필수품이었다. 갤럭시탭S6. [사진 홍미옥]

정약용도 피카소도 모기는 싫어!

역사상 최고의 실학자이자 사상가인 다산 정약용이 모기를 두고 지은 시조는 유명하다. 물론 권력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작은 것에만 분노하는 소시민적인 인간을 다그치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그 표현만큼은 공감 그 자체다. 오죽하면 제목마저 모기를 증오한다는 뜻의 증문(憎蚊)일까!

증문(憎蚊) - 정약용(1762~1836)

맹호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나는 코 골며 잠잘 수 있고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 있어도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모기 한 마리 왱 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구나.
모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화자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
이불을 덮어쓰고 이마만 내놓으면
어느새 울퉁불퉁 혹이 돋아 부처님 머리처럼 돼버리고
제 뺨을 제가 쳐도 헛치기 일쑤이며
넓적다리 급히 만져도 그는 이미 가고 없어
싸워봐야 소용없고 잠만 공연히 못 자기에
여름밤이 지루하기 일 년과 맞먹는다네

몸통도 그리 작고 종자도 천한 네가
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

밤으로 다니는 것 도둑질 배우는 일이요
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을 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그 옛날 대유사에서 교서(敎書)할 때는
집 앞에 창송(蒼松)과 백학(白鶴)이 줄 서 있고
유월에도 파리마저 꼼짝을 못했기에
대자리에서 편히 쉬며 매미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 깔고 사는 신세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 로다

이럴 때 흔히 쓰는 말, 무릎을 탁! 관절이 고장 나기 시작한 나이지만 백번이라도 탁! 치고 싶었다. 어쩜 몇백 년이 흐른 지금도 하나도 틀린 말이 없는지, 과연 명불허전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한편으론,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학자도 작디작은 모기 앞에서는 나와 같은 심정이었다니…. 하마터면 신날 뻔했다. 위인과 같은 생각을 가져서.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인류와 맞장을 뜨고, 치명적인 전염병까지 퍼뜨리는 걸 보면 역시 모기란 녀석은 만만한 상대가 아닌 건 분명하다. 작은 고추가 맵다지만 작은 모기는 무섭다.

파블로 피카소 〈Bed with mosquito nets〉 1906년,종이에 채색, 개인소장.

파블로 피카소 〈Bed with mosquito nets〉 1906년,종이에 채색, 개인소장.

미술계의 거장 피카소도 모기를 어지간히 싫어했다고 알려졌다. 지중해의 쏟아지는 햇살을 품은 기후는 그의 캔버스 위에서 화려한 예술로 피어났지만, 현실은 바닷가에서 일광욕이라도 할 모양이면 달려드는 모기를 피할 수 없었나 보다. 하물며 밤에도 마냥 편하게 잠들진 못했을 게 틀림없다. 이런 그림을 그린 거 보면.

그의 작품 ‘모기장이 있는 침대’, 천하의 피카소도 ‘그 녀석’을 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게다. 평범한 우리에겐 다소 난해(?)한 작품으로 다가왔던 피카소가 친근한 모기장 그림을 보여주니 모기 녀석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얄미운 상대다. 모기란 녀석은.

날마다 나만의 안전 기지를 짓고 부수고 

모기를 피하는 최선은 모기장, 간편하게 펼 수 있는 작은 모기장이 인기다. [사진 월마트]

모기를 피하는 최선은 모기장, 간편하게 펼 수 있는 작은 모기장이 인기다. [사진 월마트]

나의 여름은 모기와의 전쟁으로 시작됐다. 방충망을 살펴봐도 배수구를 점검해도 들어올 구멍은 없었다. 그런데도 꼭 한두 마리씩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어디 그뿐이랴. 가뜩이나 예전과 달리 피부 회복력도 신통찮은데 모기에 물린 자리는 꽤 오랫동안 날 괴롭혔다.

신제품이라며 떠들어대는 모기약도 곤충유인 등도 별 효과가 없었다. 해서 생각해 낸 모기장, 그래 이거다. 어린 시절엔 시커멓고 커다란 모기장(아마도 군용모기장이었지 싶다)을 사방에 매달고 잠이 들곤 했다. 왠지 모르게 방 속에 작은 방이 생긴 듯해 소풍을 온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선지 자꾸만 들락날락하다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편안한 여름잠을 선물해준 모기장이었다. 내친김에 인터넷으로 1인용 모기장을 주문했다. 만사가 귀찮고 편리한 게 최고니, 단 3초 만에 설치 가능 어쩌고 하는 문구에 이끌렸다. 그날부터 시작된 우리 집 풍경은 참 재밌다.

마치 스카우트 단원이라도 된 마냥 기지(모기장)를 설치하고 그 안엔 충전기, 휴대폰, 리모컨, 약간의 간식을 챙긴다. 그리고 네 귀퉁이를 고정할 요량으로 두툼한 책들이 동원됐다. 혹시라도 틈새로 들어올지 모르니 가성비 최고인 전자 모기 채도 발밑에 놓아둔다. 이쯤이면 완벽한 안전지대다.

원래는 모기에 물리지 않겠다는 목적으로 사들인 모기장이었다. 하지만 며칠 만에 각자의 모기장은 나만의 방, 안전기지로 탈바꿈했다. 비록 몇장을 읽다 잠들지라도 모기장 고정용으로 선택된 책을 읽기 시작했고, 평소엔 이부자리를 잘 개키지 않던 우리 집 남자들이 자신의 기지(?)는 잽싸게 치우는 거다. 오늘 밤의 편안한 숙면을 위해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기, 그래! 함께 사는 수밖에 없다. 다산 정약용은 글로 피카소는 그림으로 그 녀석을 표현했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럴 재주도 없으니 방어가 최선이다. 대신 무려 3채나 되는 그물 집으로 이 여름을 보낼 예정이다. 그러고 보니 의도치 않게 1가구 3주택이 되어버린 셈인가? 오늘 밤도 숙면 예약이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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