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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테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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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하준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하준호 정치팀 기자

하준호 정치팀 기자

자, 지금부터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아래의 예시글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셨다면, 해당 번호에 ‘브이(V)’ 표시를 해보세요.

①“얼굴이 하도 작아서 못 알아봤어, 하하.”

얼마 전 30대 여성 동료 등과 식사를 하고 나서는데 우연히 마주친 한 4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던진 농담입니다. 둘 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서로를 알아본 뒤 건넨 덕담(?) 같은 것이었죠. 둘은 원래 아는 사이였나 봅니다. 여성은 남성에게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누구의 얼굴이 크거나 작고, 누구의 마스크가 작거나 큰지는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둘은 그렇게 어색하게, 각자 갈 길을 갔습니다.

‘국회페미’가 지난달 31일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 [사진 국회페미]

‘국회페미’가 지난달 31일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 [사진 국회페미]

②“그냥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지난해 모 의원실 보좌진이 술자리에 동석한 여성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그 보좌진은 취해있었고, 본인이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술자리 전 밥을 먹는 자리에서는 동석한 기자들의 나이를 한 명, 한 명 확인하더군요. 참고로 그날은 서로 처음 대면한 날입니다. 얼큰한 취기에 ‘난 격의가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이렇게 강조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의 희망(?)과 달리 그 여성 기자는 현재 그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③“A는 치마도 잘 어울리네.”

몇 해 전 한 공무원 A가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여성 공무원 B에게 한 인사입니다. 평소 바지를 입다가 오랜만에 치마를 입었는데, 그 치마가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건넨 겁니다. A는 ‘칭찬은 B도 춤추게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런데 ‘춤추는 B’ 대신 남성 공무원인 C가 나섰다고 합니다. “A님, 바지가 참 잘 어울려요. A님 머리에선 좋은 향기가 나요. 자, 기분이 어떠세요?”라고요. 마땅한 대답을 못 한 A는 표정을 찡그리곤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고 하네요.

당신은 ‘V’ 표시를 몇 개나 하셨나요? 많을수록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거냐고요? 아니요, ‘사람됨 감수성’이 높은 겁니다. 성(性)이 아닌 최소한의 인간 됨됨이를 갖췄다는 겁니다. 살면서, 친한 사이에 저런 말도 못 하냐고요? 글쎄요. ①얼굴 크기 대신 “마스크 때문에 못 알아봤다”고 하면 되고 ②처음 만난 사이에 존칭하는 게 더 편하고 ③외모나 외향 말고 업무 능력이나 취미활동 등 말 붙일 소재는 많습니다.

지난달 31일 국회 여성 근로자 기반 페미니스트 그룹 ‘국회페미’에 따르면 최근 국회 일부 의원실이 보좌진 채용 면접에서 “박원순·안희정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하겠냐”고 묻는, ‘사상검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박원순·안희정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할 것이며,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당신은 어떻게 피해자를 보호하겠냐”라고요.

하준호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