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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갈탄·우라늄 광산이 ‘꽃피는 경관’으로 상전벽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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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호 27면

한스 자이델 재단과 함께하는 독일 통일 30돌 〈11〉

독일 통일 이후 오랜 노력으로 환경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 동독 론네부르크의 우라늄 광산이 있던 지역. [사진 안드레 카르바트]

독일 통일 이후 오랜 노력으로 환경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 동독 론네부르크의 우라늄 광산이 있던 지역. [사진 안드레 카르바트]

1990년 상반기 독일의 통일 과정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자유와 민주주의, 경제 활성화 등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환경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사실 환경 문제는 80년대 동독에서 반정권 세력이 출현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환경보호주의자들은 89년 민주화운동에서도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동독 시절의 노천 갈탄 광산 끔찍 #85년엔 전 세계 생산량 30% 차지 #서독 TV 보며 환경오염 인식도 #통일 직전 동독, 국립공원 청사진 #전체 면적의 4.5%가 보호구역 돼 #갈탄 광산은 수상 스포츠 명소로 #우라늄 광산은 연방 정원 축제장

서독에서는 2차 대전 종전 이후 오랫동안 경제 호황을 경험한 후인 70년대 말이 되면서 환경 오염에 관한 논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동독에서는 비록 불법이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이 서독 TV를 보게 되면서 환경 오염에 관한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기 오염이나 산성비로 인한 산림 고사, 핵 문제 등 서독 사람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사안들이 역설적으로 동독에서 훨씬 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동독 작센-안할트 ‘화학 삼각 단지’ 악명

동독 시절 환경 재앙의 대표적 사례였던 론네부르크 우라늄 광산. [사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 시절 환경 재앙의 대표적 사례였던 론네부르크 우라늄 광산. [사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에서 비용이 저렴하고 특히 오염도가 높은 갈탄발전소를 가동하고, 2기통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운행함으로써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면서 서베를린은 계속해서 스모그 경보를 발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동독의 갈탄발전소와 화학공장의 배출가스에 관한 논의가 서독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인 86년 에리히 호네커는 서독의 시사 주간신문인 디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동독에는 산림 고사나 산성비와 같은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동독 주민들은 매일같이 심각한 환경 파괴의 결과를 목도할 수 있었고 자주 그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튀링겐 지역에 있었던 소련이 운영했던 우라늄 광산 회사 비스무트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오염 사례들로 인해 식수를 포함한 수질 오염이 만연했으며 동독 모든 도시에서 갈탄 냄새가 진동했다. 갈탄은 대기 오염의 주범이었을 뿐만 아니라 탄광 및 인근 지역을 심하게 오염시켰다. 73년의 석유 가격 급등으로 인해 동독은 갈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게 됐다. 85년 당시 전 세계 갈탄 생산량의 30%가 동독산이었다. 특히 라우지츠와 동독 중부에 위치한 라이프치히 그리고  비터펠트 인근의 노천 갈탄 광산에서 대부분의 채굴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인근의 모든 마을은 사라졌으며 해당 부지의 재생을 위한 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거대한 황폐지가 생겨났다.

이러한 배경에서 80년대 동독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최초의 환경운동 그룹들이 결성되기 시작했으며 베를린 시온교회의 환경도서관도 이때 생겨났다. 당시에 환경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활동가들의 수는 1000명을 넘지 않았지만 이들은 60개의 상이한 단체에 속한 채 동독 전역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통일당(SED) 정권에 반대하는 중요한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동독은 중공업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사회주의경제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작센-안할트의 ‘화학 삼각 단지’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에는 노후한 대규모 화학공장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핵 발전소 증축도 동독 산업 정책의 주요 목표였으며 그라이프스발트가 해당 지역이었다.

82년 이후 동독에서는 통상적으로 환경 관련 데이터들은 내각의 결정에 따라 비공개 내용들로 분류돼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동독 내 반정권 세력들은 89년이 되자 노천 갈탄 광산으로 인한 오염 지역의 정비 또는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동독 핵 발전소의 폐쇄 그리고 계획 중인 새로운 핵 발전소의 운영 금지 등과 같은 환경 문제의 공개를 요구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3개월 후인 1990년 2월 동독 시위대가 그라이프스발트 핵 발전소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3개월 후인 1990년 2월 동독 시위대가 그라이프스발트 핵 발전소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 SED 수뇌였던 에리히 호네커와 짧은 기간 그 후임자였던 에곤 크렌츠가 자리에서 물러나자 환경 주제를 최고위층에서 다룰 분위기가 조성됐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서독과 동독은 내독 간 환경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 첫 번째 회의가 90년 2월 23일 서독의 수도 본에 있는 서독 연방 환경부에서 개최됐다. 이 위원회는 90년 4월 로타 드 메지에르 총리가 이끄는 새로운 동독 정부가 구성된 이후에도 계속 활동했다.

구체적인 형태를 확정 짓기 위해서 서독은 90년 6월에 있었던 환경위원회 회의에서 환경기본법률의 제정을 의제로 제안했다. 이는 환경기본법이 동서독 간 환경법 통합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며 화폐, 경제, 사회 통합법과 함께 90년 7월 1일에 발효됐다. 이러한 조치는 동독 지역의 환경 개선에 커다란 도움이 됐다. 이에 따라 실제로 통일 이후에 모든 환경 지표들이 눈에 띄게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역설적으로 하루아침에 서독의 환경 기준에 맞춰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동독 공장에는 50년대와 60년대에 설치했던 낡은 설비들이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런 장비들로는 새로운 환경기준을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비터펠트 소재 ‘화학 삼각 단지’에서 90년 12월 기준으로 가동 중이던 156개 사업장 중 8년이 지난 시점에는 불과 23%에 불과한 36개 사업장만이 살아남았다. 이러한 사업장 합리화 과정은 기후 온난화와 관련된 야심 찬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독일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오래된 동독 생산 설비들을 폐기하지 않고 환경 오염원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통일 직전 동독에서는 자연보호를 위한 격렬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90년 9월 12일 동독은 국립공원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14개의 광역보전지역이 지정됐다. 5개의 국립공원과 6개의 생물권 보전지역 그리고 3개의 자연공원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로써 전체 동독 면적의 4.5%에 달하는 지역이 보호구역에 속하게 됐다. 당시 서독의 클라우스 퇴퍼 연방 환경부 장관은 미하엘 주코브 동독 환경부 차관이 이끌었던 연구 그룹의 기획으로 결실을 보았던 국립공원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으며 해당 지역들을 ‘독일 통일의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선 사라진 자연, 북한서 발견할 수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통일 이후에 여기에다 몇 개 지역이 더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그뤼네스 반트’다. 분단 시절에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했던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넘었던 동서독 간의 경계였던 이른바 ‘죽음의 선’이었다. 거의 1400㎞에 달하는 지대가 보호지역으로 지정됨으로써 이곳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큰 바이오톱으로 탈바꿈했다.

동독 정권이 무너지면서 환경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것은 노천 갈탄 광산 또는 화학 산업 단지 그리고 소련이 채굴하다 90년에 중단한 우라늄 광산 등으로 인한 재앙에 가까운 드넓은 환경오염지역들을 복원하는 사업이었다. 튀링겐주 비스무트 우라늄 광산 지역 복원에만 40억 유로의 비용이 들었으며 노천 갈탄 광산 복원에는 60억 유로 이상의 비용이 소요됐다. ‘화학 삼각 지역’의 토양 오염을 제거하는 데에도 수억 유로의 비용이 투입됐다. 이 밖에도 소련군 등 거의 50만 명에 가까운 병력이 주둔해 있던 수백 개에 달하는 병영 또는 군 훈련장들 또한 많은 경우에 토양이 오염됐으며 심지어 부분적으로는 현재까지도 위험성이 존재하는 잔여 폭약이 발견되는 사례가 존재한다.

복원 작업은 당초 계획보다 훨씬 오래 걸려서 수십 년간 진행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계획보다 예산도 훨씬 더 많이 들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예전 노천 갈탄 광산이 있던 곳에는 자연적으로 호수가 생겨나서 매력적인 수상 스포츠 및 자연보호 입지로 바뀌었다. 유럽에서 가장 넓은 환경 재앙 지역이었던 이전 우라늄 광산이 있던 곳에서는 2007년 ‘론네부르크의 새로운 풍광’이라는 이름으로 연방 정원 축제가 개최됐다. 동독에 ‘꽃피는 경관’을 만들겠다는 헬무트 콜 총리의 이야기가 실현된 셈이다.

북한 환경 복원에도 틀림없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사라진 자연을 북한에서 발견하고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한편으로 매력적인 일일 것이다.

※번역: 김영수 한스 자이델 재단 사무국장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
독일 킬대학 경제학 석·박사, 파리1대학 경제학 석사, 1998~2002년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학대학원 전임강사, 2004~200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2007년부터 독일 비텐-헤르데케대학 객원교수. 2002년부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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