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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 호텔이 웬말"…코로나 외국인 격리시설 곳곳서 갈등

중앙일보

입력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 있는 호텔 2곳을 외국인 입국자 임시생활시설로 지정하자 호텔 앞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이 걸렸다. 채혜선 기자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 있는 호텔 2곳을 외국인 입국자 임시생활시설로 지정하자 호텔 앞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이 걸렸다. 채혜선 기자

“베트남인 3명 탈출 소식 보는데 소름이 돋았어요. 여기서도 그런 일이 안 벌어지리라곤 아무도 장담할 수 없잖아요.” 

30일 오후 2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 나란히 붙어있는 호텔 2곳 앞에서 만난 30대 여성 A씨는 이렇게 말한 뒤 북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A씨 등 전대리 주민과 인근 상인들은 주민 동의 없이 마을 한복판 호텔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외국인 임시생활시설로 지정했다며 시설 폐쇄를 요구했다. '중앙대책본부는 격리시설을 즉각 폐쇄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동네 입구와 호텔로 들어서는 다리 곳곳에 붙었다. 이날로 시위 34일째다. 초등학생 자녀 2명이 있다는 A씨는 “아이들이 호텔 근처로는 절대 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외국인 입국자 임시생활시설로 지정한 용인 전대리 호텔 앞에서 항의 시위하는 주민들. 채혜선 기자

30일 오후 외국인 입국자 임시생활시설로 지정한 용인 전대리 호텔 앞에서 항의 시위하는 주민들. 채혜선 기자

이날 시위에 동참한 주민 B씨는 “정부의 일방적인 지정 후 주변 상권이 전부 얼어붙었다”며 “도심 외곽도 아니고 주택·상가가 모여있는 한복판에 임시생활시설을 지정해 피해가 크다. 즉각 폐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텔이 모인 이 지역은 에버랜드와 가까워 찾는 관광객이 많았다. 하지만 시설로 지정한 이후 손님 발길이 끊겼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호텔 2곳은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지난달 초 시설 계약을 맺었다. 현재 외국인 220여명이 호텔에서 지낸다. 인근 식당 상인은 “호텔에서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누가 이곳을 찾겠나”라며 “매출 하락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서 갈등

부산항으로 들어오는는 외국인 선원의 코로나19 관련 임시 격리생활시설로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의 한 호텔이 지정된 데 반발하는 송도해수욕장 상인과 주민들이 15일 오전 호텔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항으로 들어오는는 외국인 선원의 코로나19 관련 임시 격리생활시설로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의 한 호텔이 지정된 데 반발하는 송도해수욕장 상인과 주민들이 15일 오전 호텔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최근 전국 곳곳에서 외국인 입국자 임시생활시설을 지정·운영하는데 따른 인근 주민과 상인의 항의 시위가 빈번하다. 이들은 “정부가 동의 없이 시설을 지정했다”고 주장한다. 최근 부산에서는 해양수산부가 서구 내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호텔을 해외 입국 외국인 선원 임시생활시설로 지정했다가 주민 반발에 부딪혀 중구의 다른 호텔로 바꿨다. 이곳에서는 주민 외에 구청장까지 직접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특히 지난 27일 경기도 김포의 임시생활시설에서 자가격리 중이던 베트남인 3명이 달아난 사건이 발생하자 임시생활시설 인근 주민의 불안감이 가중하는 분위기다. 지난달에는 인천 영종도 임시생활시설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비상구를 통해 무단으로 이탈해 편의점에서 담배를 샀다가 주민 신고를 받은 경찰에 붙잡혔다. 전대리 한 주민은 “베트남인들이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경찰이 잘 지키고 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경기 김포에 있는 해외입국자 임시생활 시설에서 자가격리 중 달아난 베트남인 3명. 연합뉴스

경기 김포에 있는 해외입국자 임시생활 시설에서 자가격리 중 달아난 베트남인 3명. 연합뉴스

지난 28일 기준 전국에서 지자체가 운영하는 임시생활시설은 64곳이다. 거센 주민 반발에 직면한 지자체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난감한 분위기다. 용인시 관계자는 “시와 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시생활시설을 지정했다”며 “계약 만료가 8월 말까지로 알고 있는데 그전까지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2만명 넘는 인원이 입소했는데도 이들로 인한 지역사회 감염은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주민을 설득하고 있다. 입소자의 임시생활시설 무단이탈과 탈주를 막기 위한 관리·감독 체계를 한층 강화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고득영 중앙사고수습본부 해외입국관리반장은 지난 29일 “현재 복도·계단 등 시설 내부를 중심으로 설치한 폐쇄회로TV(CCTV) 감시를 외부로 확대하고, 경찰의 외곽 순찰을 강화하는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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