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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안무가' 전영이 비교했다, 반도 vs 킹덤 vs 부산행 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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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브레이킹 댄스팀 '센터피즈'로 활동해온 '부산행' 좀비' '킹덤' 안무가 전영. [사진 NEW]

본브레이킹 댄스팀 '센터피즈'로 활동해온 '부산행' 좀비' '킹덤' 안무가 전영. [사진 NEW]

“‘부산행’은 바이러스에 기초한 감염자들이고 ‘킹덤’은 죽어있던 시체를 어떠한 요소로 살려낸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에요. ‘반도’는 지금껏 제안받은 그 어떤 좀비물 시나리오보다 아포칼립스(종말) 느낌을 잘 표현해 흥미진진했죠.”

‘부산행’ ‘킹덤’ ‘반도’에 잇따라 참여하며 ‘좀비 전문 안무가’로 이름난 ‘본브레이킹’ 댄서 전영(31)씨가 본지에 e메일로 전한 얘기다. 연상호 감독의 총제작비 190억원대 좀비 액션 ‘반도’가 개봉 14일째인 28일 300만 관객을 돌파한 바다. 올들어 300만 이상 동원한 영화는 ‘남산의 부장들’(475만)에 이어 ‘반도’가 유일하다. 190개국에 선판매돼 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몽골 등 7개국에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북미‧유럽‧뉴질랜드 등도 곧 개봉한다.

'부산행' '반도' 킹덤'까지 #K좀비 몸짓 책임진 안무가 #본브레이킹 댄스 동작 기반 #게임·일본애니 다양한 영감

4년 전 연 감독의 좀비 재난 영화 ‘부산행’이 천만 흥행을 거둔 후 넷플릭스 조선 좀비 드라마 ‘킹덤’ 시즌 1‧2, 이어 ‘부산행’ 후속작 ‘반도’까지, 서구 B급 장르의 전유물로 치부됐던 좀비는 어느덧 중국의 ‘살아 움직이는 시체’ 강시의 아성을 뛰어넘어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높은 괴수가 됐다.

'부산행'은 광견병, '킹덤'은 몽유병 좀비 

연상호 감독 '반도'에서 좀비떼가 차량을 에워싼 장면. 세계관을 공유하는 전작 '부산행'보다 더 강하고, 빨라진 좀비의 모습이다. [사진 NEW]

연상호 감독 '반도'에서 좀비떼가 차량을 에워싼 장면. 세계관을 공유하는 전작 '부산행'보다 더 강하고, 빨라진 좀비의 모습이다. [사진 NEW]

이런 성공 비결로 꼽히는 게 한국 좀비만의 차별화 전략이다. 한국 최초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이 첫 단추를 뀄다. 이 영화는 같은 해 개봉한 ‘곡성’과 더불어 리듬체조 코치 출신 박재인 안무가가 좀비 몸동작을 도맡아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안무감독)’란 이름으로 엔딩크레디트에 올랐다. 본브레이킹 댄스팀 ‘센터피즈’로 활동해온 전영 안무가는 그와 인연으로 ‘부산행’에 ‘바디 트레이너’로 합류했고, 연 감독이 작가로 참여한 드라마 ‘방법’과 이번 ‘반도’까지 함께했다.

'반도'는 한반도가 좀비 바이러스로 뒤덮혔던 '부산행' 이후 4년, 폐허에 남겨진 생존자들의 사투를 그렸다. [사진 NEW]

'반도'는 한반도가 좀비 바이러스로 뒤덮혔던 '부산행' 이후 4년, 폐허에 남겨진 생존자들의 사투를 그렸다. [사진 NEW]

‘부산행’ 때 좀비 동작 차별화를 위해 참고한 것으로 그는 “광견병 증세”를 들었다. ‘부산행’의 좀비는 속도가 빠른 것뿐 아니라 고개를 기괴하게 흔들면서 달리는 게 특징이다. “좀비들이 몸에 타격을 받아도 시선은 계속 먹잇감을 향하거나, 어둠 속에 가만히 있을 때도 위압감을 주는 몸동작은 당시 빠져있던 ‘다크소울’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게임 이미지에 더해 ‘공각기동대’ 등 연 감독이 추천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 안무가는 설명했다.

'부산행' 심은경 계승한 '반도' 좀비는 

뼈를 부수듯이 격렬한 본브레이킹 동작도 가미됐다. 팔이 뒤로 꺾인 채 달려오는 군인 좀비, 부산행 KTX 열차에 올라탄 최초의 좀비(배우 심은경이 깜짝 출연했다)가 사지를 꺾듯이 경련을 일으키는 몸놀림이 대표적이다. 후속작 ‘반도’에선 이를 계승한 장면도 나온다. 영화 초반 탈출선에서 한 남자가 감염증세를 보이며 허리를 튕기듯 일어나 공중제비를 도는 고난도 몸동작이다. “‘부산행’ 심은경 배우의 등장신 효과가 굉장했기에, 그 이상을 보여주기 위해 연 감독이 난이도와 신선함을 잘 버무린 동작을 택했다. 현실적으로 피난선에 운동선수나 댄서가 탔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만들었다”고 전 안무가는 설명했다.

'부산행'에서 KTX 열차에서 좀비에 물린 승무원이 몸을 꺾으며 감염 증세를 보이는 장면. 이런 열차 내 감염의 최초 전파자가 심은경이 연기한 캐릭터였다. [사진 NEW]

'부산행'에서 KTX 열차에서 좀비에 물린 승무원이 몸을 꺾으며 감염 증세를 보이는 장면. 이런 열차 내 감염의 최초 전파자가 심은경이 연기한 캐릭터였다. [사진 NEW]

‘반도’의 좀비는 ‘부산행’보다 더 굶주리고 강력해진 좀비 떼로 표현했다. 네 발로 달려드는 4족 보행 좀비는 ‘부산행’ 때 아쉽게 빠졌던 동작을 가져온 것. 그는 “불에 타 몸이 엉겨 붙은 좀비 떼 장면은 가장 오랜 작업 공정이 걸렸다”면서 “특수분장업체 셀(Cell)이 전체 틀을 만들어 안무팀과 선별된 배우들이 직접 몸을 엮은 채로 움직이도록 연습해 촬영했다”고 했다.

학학학 VS 하-악, 숨 길이도 달라

반면, 조선 배경의 사극 ‘킹덤’의 ‘생사역 좀비’는 한국 고유의 전통 귀신이 연상되도록 만들었다. 모티브로 삼은 것은 몽유병 증세란다. ‘부산행’ ‘반도’의 좀비가 광기로 날뛴다면 ‘킹덤’은 정적이다. 숨소리도 ‘부산행’ 시리즈는 ‘학학학’ 밭고, ‘킹덤’은 ‘하악’ 길게 끌었다. 산 인간 냄새를 맡은 좀비들이 고개를 쭉 빼고 서 있을 땐 몽달귀신이 연상된다.

넷플릭스 사극 드라마 '킹덤'의 조선 좀비들은 달리지 않을 땐 정적으로 보이는 몸동작이 특징이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사극 드라마 '킹덤'의 조선 좀비들은 달리지 않을 땐 정적으로 보이는 몸동작이 특징이다. [사진 넷플릭스]

한국 좀비물만의 생생함은 컴퓨터그래픽(CG) 위주인 해외 좀비물과 달리, 배우가 직접 연기해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전영 안무가 자신도 곳곳에서 활약했다. ‘부산행’에선 은색 양복 감염자, 마지막 열차에 매달린 좀비 떼 위를 기어올라 공유를 공격하는 좀비, ‘킹덤’은 대청마루 밑 좀비, ‘반도’에선 ‘숨바꼭질’ 경기장 좀비, 탈출선 변이 좀비, 4족 보행 좀비, 차량돌진 좀비 등. 살벌한 분장 탓에 숨은그림찾기가 따로 없다.

작품마다 뭉치는 40여명 '좀비 가족'  

'반도'에서 좀비 명장면 중 하나. 좀비로 뒤덮인 서울로 잠입한 주인공 정석(강동원)이 유리벽으로 가로막힌 층계참에 빛을 비춘 순간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다. [사진 NEW]

'반도'에서 좀비 명장면 중 하나. 좀비로 뒤덮인 서울로 잠입한 주인공 정석(강동원)이 유리벽으로 가로막힌 층계참에 빛을 비춘 순간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다. [사진 NEW]

좀비물이 주목받다 보니, 단골 캐스팅되는 40여명 ‘좀비 가족’도 생겼다. 전 안무가는 “‘부산행’ 초창기부터 함께해온 한성수‧박종범 배우와 더불어, 저희끼리 ‘좀비 가족’이라 부르는 배우분들과 ‘킹덤’ 시리즈도 함께했다”면서 “이번 ‘반도’에선 그간 쌓은 노련함도 빛났다”고 돌이켰다. “(좀비 눈빛 표현을 위해 시야가 다소 가려지는) 백색 렌즈를 낀 상태로 지하차로에서 RC카를 추격할 장면에선 이제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도 잘 움직이시는구나, 감탄했죠.”

최근 좀비영화 ‘#살아있다’에 현대 무용가 예효승이, ‘부산행’ ‘킹덤’ 좀비 배우 한성수가 넷플릭스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안무가로 참여하는 등 ‘부산행’ 이후 한국 좀비물에 전문 안무가가 활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에 전 안무가는 “‘부산행’ 이전의 영화 속 안무가들은 댄스가 필요하거나 몸선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곳에 참여했다면, 이젠 기괴한 움직임이 필요한 장르가 탄생함에 따라 특별한 움직임을 할 수 있는 안무가의 영역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극장판 ‘방법: 재차의’에도 참여하는 그는 요즘 주술로 움직이는 좀비 닮은꼴 한국 요괴 ‘재차의’의 움직임을 구상 중이다.

“앞으론 정치얘기‧인간갈등 속에 녹여낸 좀비뿐 아니라 가볍게 볼 수 있는 B급 정서 혹은 좀비 자체가 주역이 되는 작품도 좋을 것 같아요. 한국 좀비의 인기와 생명은 계속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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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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