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 경계인 송두율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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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1996년께 남북학자가 참여한 통일포럼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말은 어눌했지만 경계인으로서, 내재적 남북접근 방법론을 강조해 온 그의 주장에는 분명 경청할 만한 대목이 있었다.

그의 내재적 접근론은,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이념을 평가의 중심축에 놓고 그것이 현재 어떤 성과로 나타나고 있나를 평가.비판하는 방법이다.

내재적 접근이 북한체제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비판을 막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내재적이란 외재적의 반대말이 아니라 선험적인 것, 예컨대 반공 이데올로기를 뜻한다고 했다('역사는 끝났는가'에서). 주체사상의 관점에서 북한을 비판하고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 남한을 분석하자는 게 그의 내재적 접근론이다.

*** 철학자와 노동당원의 차이

그가 자주 사용하는 경계인이란 무엇인가. 그는 세계화 전략의 남쪽과 주체화 전략의 북쪽이 서로 다른 시대의 논리를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고 보면서 동시대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남한과 비동시성의 민족을 주장하는 북한이 어떻게 공통의 담론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의미로 자신을 경계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그는 통독 이후 독일을 보면서 일방적 흡수.지배의 방식이 아닌 '타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통일방식을 주장한다. 철학자 송두율은 이런 점에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이며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정신적 회색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철학자가 어느날 갑자기 간첩이 돼 가고 있다. 또 그를 아꼈던 많은 지식인에게 환멸과 배신감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철학자 송두율이 내재적 접근론을 말하고 비동시성과 동시성의 경계인을 자처하며 타자의 논리를 말할 때 그는 철학자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노동당원으로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 또는 간첩 혐의자로서 드러날 때 그의 철학과 주장은 한갓 호신용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몸은 북에 두고 정신만 경계인이었다면 그의 철학은 허구다.

더구나 철학자 송두율과 만나 담론하고 그가 주선했던 통일포럼에 참가했던 우리의 숱한 사회과학자들은 지금까지 그가 숨겨왔던 전력(前歷)에 대해 괘씸한 생각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끝까지 자신은 김철수가 아니며 노동당 가입은 천부당 만부당하다고 했고 그런 증언을 했던 황장엽씨를 고발까지 했다.

또 국정원 조사에선 모든 사실을 다 시인해 놓고 밖에선 이를 부인하고 있다. 고문과 압박으로 거짓 고백을 했다면 그래도 믿겠다. 국정원의 출퇴근식 조사 끝에 나온 진술내용을 부인하기엔 국정원이 그 옛날의 안기부가 아님을 국민은 알고 있다. 그의 왔다갔다식 회색인 자세가 그를 한때 후원하고 옹호했던 지식인들을 더욱 화나게 하고 더욱 깊은 배신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가 아닌 철학자 송두율일 때 그는 살아날 수 있다. 그동안 그가 숨겨왔던 사실들을 국정원 진술내용보다 더 진실되게 소상히 밝히고 더 이상 경계인.회색인으로 살 수 없음을 참회하고 용서를 빌 때 철학자 송두율은 살아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어리숙한 듯하면서도 견고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다. 국정원이 노는 듯하면서도 송두율 관련 온갖 자료와 증언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안보능력에 믿음을 주는 계기가 됐다.

며칠 전에도 3백여명이 개천절 남북행사로 평양을 다녀왔다. 어제는 1천여명이 넘는 인파가 정주영체육관 참관을 위해 평양으로 떠났다. 이런 남북교류 홍수 속에서도 회색인으로 몸과 마음이 따로 떠도는 사람은 이 사회에 없을 것이다.

*** 조국을 기만해선 안 되는 까닭

철학자 송두율은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다. 작가 황석영이 충고했듯 사즉 생의 각오로 진실을 털어놓고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영부영하다 강제 추방됐을 경우 또하나의 조작된 간첩사건이라고 국외에서 떠들어 댈 수도 있다.

그래선 안된다. 또 한번 조국을 기만하고 스스로를 미망(迷妄)에 빠뜨리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암울했던 시절 북에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던 한 지식인의 고뇌와 고단한 삶을 우리가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지금 세상이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그의 절절한 참회와 반성만 있다면 너그럽게 끌어안는 게 관용과 포용의 우리 사회다. 스스로 내재적 비판을 통해 김철수를 버리고 철학자 송두율로 거듭날 때 경계인으로서 떠도는 몸과 영혼이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권영빈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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