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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원가 공개" 영업기밀 푸는 SH공사…"시장가 왜곡" 우려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향후 준공하는 공공분양 아파트의 건설원가를 국내 최초로 공개키로 했다. 기존 분양가상한제에 따른 분양원가 공개가 실제 건설원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보완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영업기밀' 건설원가…61개 항목 첫 공개

지난 20일 김세용 SH공사 사장이 서울 영등포역 대회의실에서 영등포 쪽방촌 주거환경개선 및 도시 정비를 위한 공공주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0일 김세용 SH공사 사장이 서울 영등포역 대회의실에서 영등포 쪽방촌 주거환경개선 및 도시 정비를 위한 공공주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SH공사는 28일 “향후 SH공사가 짓는 공공분양 아파트의 건설원가 61개 항목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국내 주택건설사업자 가운데 분양아파트에 대한 건설원가를 공개키로 한 것은 SH공사가 처음이다. 공개항목은 도급공사비 47개, 지급자재비 6개, 기타 직접공사비 6개, 그 밖의 비용 2개 항목 등이다.

 이에 따라 SH공사는 서울시 구로구에 지어진 항동 하버라인 4단지의 '준공건설원가 내역서'를 29일 시범적으로 공개한다. 이후 오는 12월 준공 예정인 강동구 고덕강일 공공분양 아파트를 시작으로 건설원가가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건설원가 공개에는 SH공사가 입주자 모집 공고를 하고, 건설공사·지급 자재를 발주·계약·관리·감독하는 분양아파트가 모두 포함된다.

건설원가 투명화…고분양가 잡는다

오는 12월 SH공사가 준공하는 고덕강일지구의 건설원가도 공개대상이 된다. 사진은 조감도. 연합뉴스.

오는 12월 SH공사가 준공하는 고덕강일지구의 건설원가도 공개대상이 된다. 사진은 조감도. 연합뉴스.

 건설원가 공개는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이 "분양가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안이다. 앞서 경실련은 지난해 7월 SH공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 등에 대해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내 주택건설업체들은 현행 분양가상한제에 따라 공공택지 내 공동주택의 경우 총 62개 항목에 대해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있었다. 민간택지에 아파트를 지을 때도 택지비와 직·간접공사비, 설계비, 감리비, 부대비, 가산비 등 7개 항목을 공개해야 한다.

 이에 대해 SH공사 관계자는 “기존 분양원가는 정부에서 고시하는 가이드라인 격인 ‘기본형 건축비’와 금융비용 등까지 포함해 실제 건설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며 “건설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할 경우 건설사가 과도하게 건축비를 책정하는 등 기존의 고분양가 문제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분양가상한제가 있는데…"민간업체 압박" 논란

 이번 SH공사의 결정을 놓고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건설업계 사이에서 사실상 ‘영업비밀’로 간주해온 건설원가를 공개할 경우 저가의 자재사용이나 시장가격 왜곡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향후 LH공사를 비롯해 민간건설사에도 건설원가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가능성도 크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시장의 신용도를 높이기 위해 분양원가를 투명하게 하겠다는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이미 분양가상한제로 심의위원회가 시공업체의 분양 요청가 등을 들여다보는 상황에서 민간 업체에는 마진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 “민간업체가 마진에 압박을 받을 경우 저급자재 사용 등 부작용이 나올 가능성이 있고, 시장경제 차원에서는 자율적인 가격 형성이 왜곡될 수 있다”며 “무엇보다 건설사가 스스로 공개하는 건설원가가 얼마나 믿을 만 한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분양가 원가 공개'로 아파트 가격을 낮추겠다고 했지만, 2004년 "분양가는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등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이후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반발로 건설원가를 공개하는 대신 '분양가상한제'가 채택돼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김세용 SH공사 사장은 “이번 건설원가 공개를 통해 공기업인 주택건설공사의 투명성을 높이고, 최근 급등한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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