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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현옥의 시시각각

혼날 때는 11%, 혼낼 때는 5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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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아웃라이어(outlier).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는 탓에 다른 대상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표본을 일컫는 말이다. 산술평균(전체 총합/전체 개수)을 따질 때 오류를 만들 수 있는 요인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브라이언 커니핸 교수가 쓴 책 『숫자가 만만해지는 책』에 따르면 이해가 쉽다.

문 정부 3년, 22번 부동산 대책 속 #‘내로남불’ 골라먹기식 집값 상승률 #결국 정부가 국민 약올리는 셈

“지난 40년간 하버드대에서 중퇴한 사람의 평균 순자산은 무사히 졸업한 사람의 평균 순자산보다 적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두드러진 두 명의 예외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다. 이들로 인해 (평균) 수치는 급증할 수 있다.” 게이츠와 저커버그가 아웃라이어인 셈이다.

아웃라이어로 인한 산술평균의 오류를 막으려고 활용하는 것이 중앙값이다. 작은 수부터 큰 수까지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값이다. 커니핸 교수의 설명대로면 수백 명의 억만장자나 한 무리의 극빈자를 추가해도 중앙값은 꿈쩍하지 않는다.

이 설명이 무색하게 중앙값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가 등장했다. 서울의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곳은 국토교통부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을 놓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공방을 벌이며 중간값이 ‘과잉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달 23일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2017년 5월~2020년 5월)간 서울의 아파트 중위값이 52%(3억1400만원)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튿날 국토부는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값은 14.2%(서울 전체 주택은 11.5%) 올랐다고 반박했다.

국토부의 설명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이렇다.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저가 노후 아파트 멸실이나 신축 고가 아파트의 신규 공급 등에 따라 상승하는 측면이 있다. 시계열로 단순 비교하면 실제보다 과도하게 집값이 많이 오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최근 고가 아파트 거래 비중이 늘면서 거래된 아파트 값을 활용한 중위 가격은 시장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국토부의 변(辯)을 문맥대로 이해하면 거래되지 않은 주택 가격을 감안하면 집값은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손 바뀜이 이뤄진 일부 집값이 오르고 싼 아파트가 사라져 ‘많이’ 오른 듯 보인다는 의미로 읽힌다.

52% 대 11%의 아득한 간극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52% 상승을 주장하는 경실련은 ‘KB주택가격동향’을 활용했다. 실거래가에 호가를 취합한 뒤 현장 추가 조사 등을 반영한다. 주택 매매에 나서는 실수요자나 시장 관계자가 참고하는 가격이다.

국토부의 11%는 한국감정원 자료다. 실거래 가격과 유사거래 가격을 반영해 매긴다. 경실련의 요구에도 정확한 산정 방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현미 장관은 지난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 수치를 인용해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집값은 11% 올랐다”고 답변했다.

김 장관의 주장이 맞는다면 3년간 14.2% 오른 서울 아파트 값을 잡으려고 22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정부는 과잉 대응한 셈이다. 이것도 모자라 때아닌 천도(遷都) 논의까지 들고나온 건 그야말로 지나친 오버다. 공시가격 현실화와 공정시장가액 및 세율 인상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어쨌든 최근의 ‘재산세 폭탄’은 정부의 주장을 넘는 수준으로 집값이 올라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 의아한 건 KB시세를 인용한 경실련의 주장이 맞지 않는다는 정부가 부동산 과열을 잡기 위한 대출 규제에는 감정원과 KB시세 중 더 비싼 가격을 적용하는 것이다. 기준은 KB시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 당국과의 엇박자라 해도 골탕은 국민만 먹는다.

집값에 대해 알 수 없는 정부의 속내는 결국 ‘혼날 때’(11%)와 ‘혼내고 싶을 때’(52%)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내로남불’식 집값 취사선택에도 통계 조작이 아니라는 걸로 그나마 위로 삼아야 할까.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