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더불어] 외국수녀의 아름다운 인술 46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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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행려병자.알콜중독자…. 여기를 찾는 모두가 저의 형제자매들이죠. "

26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역 앞 허름한 골목의 요셉병원 2층 진료실. 감색 수녀복에 흰 가운을 걸친 백발의 앤다(78.서울 방배동) 수녀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환자는 그로부터 3년째 진료받아온 하인수(河仁銖.68.서울 영등포동) 씨. 1979년 교통사고로 왼쪽다리 분쇄골절상을 입고 후유증으로 폐결핵을 앓고 있는 홀로 사는 노인이다.

河씨의 가슴에서 청진기를 뗀 앤다 수녀는 "이제 많이 좋아졌다" 며 따뜻한 미소를 건넸다. 십자가가 걸린 바깥 대기실엔 10여명의 나이 든 영세민 환자들이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앤다 수녀가 한국에 온 건 6.25 종전 뒤인 55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수녀가 돼 50년 아일랜드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을 거쳐 내과 전문의가 된 그에게 아일랜드 골롬방수녀회가 "한국에 가 의료봉사를 하라" 고 했다.

폐허가 된 목포에서 5백여명의 나환자들을 돌보며 시작한 인술봉사가 올해로 46년. 22년 동안 제주도에서 가난한 환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의술을 펼치기도 했다.

99년 8월부터는 이 병원에서 매주 월.화.목.금요일 오후 진료를 한다.

"예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가난한 사람들, 병이 나도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가장 큰 기쁨이지요. "

앤다 수녀가 있는 요셉병원은 87년 세워졌다. 의사 네명이 상주하고, 80여명의 마음 맞는 의사들이 번갈아 자원봉사를 한다.

일반인들의 후원금만으로 의지할 데 없는 환자들을 무료 치료한다.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은 다른 병원에 입원시켜 수술을 받도록 돕고 비용도 모두 부담해준다. 96년부터는 알콜중독자 재활센터인 '목동의 집' 도 운영 중이다.

오후 3시30분 병원 식구들이 모여 잠시 다과를 드는 시간에도 앤다 수녀는 다과실과 진료실을 분주히 오갔다. 환자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에겐 '사랑' 을 전하는 일이다.

그는 "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한국이 내게는 고향이에요" 라며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돌보면서 생을 마치고 싶다" 고 했다. 요셉병원 02-2634-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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