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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에 패션쇼를 담았습니다…방구석 패션쇼를 열다

중앙일보

입력

‘디지털 파리 패션위크’가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밀라노 디지털 패션위크’가 14일부터 17일까지 열렸다. 코로나 19로 업종불문 ‘비대면’ 트렌드가 확산하고 있다. 패션계도 마찬가지다. 수백 명 관중 앞에서 펼쳐졌던 오프라인 패션쇼 대신 디지털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비대면 패션쇼가 ‘뉴노멀’이 됐다.

[코로나 시대의 패션쇼③ 참여형]

패션을 디지털로 경험하는 게 전혀 새로운 경험은 아니다. 기존에도 오프라인 패션쇼를 열고, 이를 직관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 형식으로 패션쇼 현장을 중계하기도 했다. 지금은 오프라인 패션쇼 없이, 온라인으로만 공개한다는 점이 다르다.

디지털 패션쇼가 새로운 표준이 되면서 기존의 라이브 스트리밍 형식의 온라인 중계가 아닌, 전혀 새로운 형식의 디지털 패션쇼가 등장하고 있다.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입고 무대를 걷는 모델의 모습 대신, 디자이너가 직접 영상에 등장해 자신의 컬렉션을 소개하기도 하고, 예술성 높은 영상물로 패션쇼를 대체하기도 한다.

시간과 장소, 방식에 제약이 없는 디지털 세상에서 패션 디자이너들은 저마다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디지털 패션위크에서 공개된 패션쇼를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해 소개한다. 세 번째는 디지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참여형 콘텐츠를 만든 디자이너들을 소개한다.

박스가 도착했습니다

스페인의 명품 가죽 브랜드 ‘로에베’는 이번 디지털 패션위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도로 주목받았다. 실제 패션쇼를 여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은 패션쇼를 박스에 넣어 보냈다. 2021년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을 공개하면서 박스 하나를 전 세계 바이어 및 패션 관계자들에게 보낸 것. ‘쇼 인 박스(SHOW IN BOX)’라는 이름의 박스는 컬렉션의 주제와 내용을 응축시킨 아카이브 상자다.

상자 속 패션쇼를 선보인 '로에베'. 집에서 나만의 작은 패션쇼를 열 수 있도록 컬렉션에 대한 다양한 콘텐트는 물론 음악까지 담았다. 사진 로에베

상자 속 패션쇼를 선보인 '로에베'. 집에서 나만의 작은 패션쇼를 열 수 있도록 컬렉션에 대한 다양한 콘텐트는 물론 음악까지 담았다. 사진 로에베

상자를 열면 조나단 앤더스의 편지가 함께 열린다. 편지 뒤에는 그의 디자인 영감이 담긴 작은 책자가 나타난다. 주요 룩과 가방들은 360도로 관람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상자 형태로 제공되며, 전체 룩북은 종이 블록으로 인쇄돼 있다. 컬렉션의 주요 색조와 소재를 카드로 만들고, 집에서도 옷을 제작할 수 있도록 패턴도 제공됐다. 이 패턴은 온라인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휴대용 마분지로 만든 레코드 플레이어도 제공됐는데, 로에베 공장의 소리를 담은 사운드트랙을 재생할 수 있다. 음악을 켜고 주요 룩과 가방들을 꺼내보면서 집에서 나만의 작은 패션쇼를 열 수 있는 상자인 셈이다.

상자가 도착한 후, 12일부터(한국 시간)는 24시간 라이브로 재시간 다른 주제의 디지털 콘텐트가 로에베 공식 인스타그램과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로에베의 히트 상품인 벌룬백 장인과의 미팅, 패턴을 다운 받아 집에서 옷을 만드는 방법 등 다양한 콘텐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24시간 이어졌던 '로에베'의 라이브 콘텐트에 참여한 가수 지코. 사진 로에베

24시간 이어졌던 '로에베'의 라이브 콘텐트에 참여한 가수 지코. 사진 로에베

상자를 보내고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24시간 내내 온라인 축제를 연 것. 전 세계에서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채널을 통해 패션쇼보다 훨씬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새롭기도, 의미 있기도 한 시도였다.

어떤 각도로 보고 싶나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언더커버’는 2021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을 조금 더 특별한 디지털 방식으로 공개했다. 바로 웹사이트에서 모델의 모습을 3D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 단순히 앞과 뒤는 물론, 옆과 위, 아래에서 위, 위에서 아래 등 다양한 각도로 움직이며 의상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3D로 모델과 의상을 모두 렌더링해서 마치 눈앞에서 의상을 만져보듯 실감 나는 룩북을 만든 것.

패턴을 마음껏 확대해 볼 수도, 원하는 각도로 옷의 세부를 관찰할 수도 있는 3D 패션쇼. 사진 언더커버 홈페이지

패턴을 마음껏 확대해 볼 수도, 원하는 각도로 옷의 세부를 관찰할 수도 있는 3D 패션쇼. 사진 언더커버 홈페이지

디지털 패션쇼의 경우 실제 옷을 볼 수 없는 데다, 옷보다는 디자이너의 기획 의도나 컬렉션의 전체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는 영상물 제작에 공을 들이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는 의견이 있다. 언더커버의 3D 패션쇼는 옷을 자세히 관찰하고 감상한다는 패션쇼의 본질에 더 다가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기술을 통해 전 세계 누구나 집에서 마우스를 클릭해가며 간단하게 옷의 실제와 가까운 모습을 체험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디지털 패션쇼의 의미를 가장 적확하게 구현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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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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