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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출신 유튜버 도전이 10만 2030에게 통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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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바른 사무실에서 만난 박일환 전 대법관. 채혜선 기자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바른 사무실에서 만난 박일환 전 대법관. 채혜선 기자

'대법관 출신 1호 유튜버'.

박일환(69) 법무법인 바른 고문변호사 얘기다. 그는 2006~2012년 대법관을 지냈다. 2018년 12월부터 유튜브 채널 ‘차산선생법률상식’을 운영해왔다. 구독자 10만 명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3일 인터뷰에 앞서 받아든 그의 명함에는 ‘변호사’ 자격보다 유튜브 채널 이름이 두 배 더 크게 쓰여 있었다.

5분 분량 "주제만 1주일 고민" 

박일환 전 대법관의 유튜브 채널. 뒤에 있는 '차산선생법률상식' 팻말은 구글에서 제공했다. [유튜브 캡처]

박일환 전 대법관의 유튜브 채널. 뒤에 있는 '차산선생법률상식' 팻말은 구글에서 제공했다. [유튜브 캡처]

박 전 대법관이 올리는 영상은 대부분 5분 내외다. 긴 영상을 지루해할 시청자를 고려한 배려다. 부모의 빚을 자식들이 책임져야 하는지, 부동산 매매계약을 해지할 때 알아둬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 알아두면 좋을 법률 상식이 주로 올라온다. ‘법관의 일상’ ‘법관에게 주 52시간 근무제란?’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판사 관련 정보를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최신 판례를 계속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길게는 일주일 가까이 주제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주제 선정에 가장 큰 공을 들인다는 뜻이다.

생활밀착형 법률 상식을 풀어 설명하는 덕분인지 젊은 시청자가 주로 그를 찾는다. 1997년 영장실질심사제도의 도입 과정 등 법 제도의 역사도 설명한다. 34년 법관 인생이 녹아 있는 주제인 셈이다. 법원의 민사사건 처리 동향, 사실심에서의 소수의견 등 심층적인 부분도 다룬다. 젊은 법조인이나 로스쿨생도 많이 구독한다. 박 전 대법관은 “전문성이 있으니 많이 찾아주는 것 같다”며 “최근엔 ‘유튜브에서 봤다’며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6년간 대법관 시절 매일 고시 공부하는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주어진 양을 주어진 시간에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주로 주말마다 찍는다는 유튜브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걸 하니 스트레스는 없다”면서도 “주제를 찾는 과정은 힘들지만, 그다음은 쉽다”고 말했다. 딸이 편집을 돕고 촬영은 박 전 대법관이 혼자 한다. 준비물은 스마트폰 한 대와 삼각대. 구색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장소나 배경을 계속 바꿔가며 촬영한다. 지루함을 느낄 시청자를 위해서다. 가끔 어린 손녀가 등장해 시청자를 반기는 것도 그 이유다. 박 전 대법관은 “손녀딸이 유튜브 세대다 보니 본인 나오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귀엽다' 댓글 괜찮다" 

비아그라와 팔팔정 사례로 특허와 상표를 설명하는 박일환 전 대법관. [유튜브 캡처]

비아그라와 팔팔정 사례로 특허와 상표를 설명하는 박일환 전 대법관. [유튜브 캡처]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한 것도 구독자 급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장관급 예우를 받았던 전직 대법관에게 “귀엽다”는 댓글이 달리는 풍경도 빚어진다. 법조인이다 보니 함부로 댓글을 달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일단 잘못했습니다” “댓글이 너무 깨끗해서 가재가 산다는 댓글 청정구역인가요” 등 재치 넘치는 댓글도 많다. 박 전 대법관은 “댓글은 다 살펴보고 있다”며 “여태껏 악플이 달린 적은 없지만 달린다고 해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이니 괜찮다”고 말했다.

26일 오후 기준 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9만9600여명. 하지만 광고 수익은 내지 않고 있다. 유튜브 댓글 창엔 “이런 고급 정보를 공짜로 얻을 순 없으니 제발 광고를 넣어달라”는 장난 섞인 애원도 있다. 박 전 대법관은 “구독자 10만 명을 넘으면 생각해보겠다”며 웃었다.

야외에서 보석 제도를 설명하는 박일환 전 대법관. [유튜브 캡처]

야외에서 보석 제도를 설명하는 박일환 전 대법관. [유튜브 캡처]

박 전 대법관은 가장 가슴에 두는 헌법 조항으로 제10조('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를 꼽았다.

“세월이 흐른 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인간성을 존중한다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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