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침묵하는 다수가 지켜보고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0.07.2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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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호 31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강호에 글 잘 쓰는 고수가 많다. 특히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의 글쓰기가 일상화되면서 특정 분야 전문가뿐 아니라 직장인과 주부 등 평범한 시민들도 숨은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웬만한 프로 못지않게 깊이 있고 균형 잡힌 시각을 선보이는 수준 높은 글도 적잖다. 현안마다 누구나 실시간으로 글을 올릴 수 있고 여기에 댓글 등을 통해 즉각 다른 의견들이 덧붙여지면서 짧은 시간에 네티즌들의 집단 지성이 하나의 중론으로 수렴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SNS의 위력이 갈수록 커지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독설로 여론 호도, 이젠 안 통해
‘비자상유과자’ 경고 깊이 새겨야

이들이 경계하는 대상은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는 교묘한 독설가들이다. 깊이는 없으면서 얄팍한 기교와 화려한 수사를 구사하고 자극적인 단어로 갈등을 조장하며 여론을 호도하는 자들이다. 시대의 흐름은 전혀 쫓아가지 못하면서 과거 꼰대의 잣대로 현재를 재단하고 철 지난 계몽주의만 내세우며 여론을 좌지우지하려는 자들이다. 그뿐인가. 정치는 기본이고 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 행세를 한다. 도대체 진짜 전공이 뭔지 헷갈릴 정도로 안 끼는 곳이 없다. 자신의 시각이 무조건 옳고 절대 선이라는 이 같은 착각은 온·오프라인과 정치권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꼭 그렇게 뾰족한 말과 글로 상대방을 찔러야 속이 시원한가. 그래야 존재 이유가 찾아지는가. 그래야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유지되는가. 그래야 인정 욕망에 대한 원초적 갈증이 충족되는가. 서로 보듬고 가는 게, 서로 배려하며 사는 게 그렇게 어렵나. 우리 모두 같은 공동체에 살고 있지 않나. 유발 하라리도 “가짜 뉴스의 범람으로 사회적 신뢰가 무너져 버린 지금, 코로나 공습에 맞서 인간이 둘 수 있는 최악의 수는 서로 분열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 않나.

문제는 이런 자들일수록 대중이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정작 본인만 모르고 있기 십상이란 점이다. 일부 묻지마 지지층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그게 세상 여론의 전부인 양 착각하기 때문이다. 오호통재라. 이들에겐 코로나19 시대 일상화된 마스크 착용에 더해 “마스크 속 그 입 다물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못지않게 이들과도 거리두기를 해야 할 판이다.

지금까진 독한 말과 글이 통했을지 몰라도 시대가 바뀌었다. 예전엔 소수의 ‘여론 주도층’이 담론 형성의 주체였지만 이젠 웬만해선 무작정 끌려가지 않는 게 민심이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 왔다. 정치인들도 여론조사에는 잘 잡히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함을 잊지 말고, 구독자 수나 좋아요 클릭 수의 착시 효과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겸손함을 유지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말 한마디도 진중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홀로 목놓아 외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말하는가’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척도다. 훗날 코로나 시대의 인류가 고통받은 건 바이러스 탓만이 아니라 그 와중에도 바이러스보다 못한 자들의 극심한 분열 선동에 파멸을 자초했기 때문이라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그 징비록에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오르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옷깃을 여미고 자중해야 할 것이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에 비자상유과자(飛者上有跨者)라.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는 그 위에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 누가 어떻게 말하고 쓰는지, 말없이 그러면서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강호의 이름 없는 고수들이.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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