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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따상’ 꿀맛 좀 보자…개미들 공모주에 취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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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호 14면

청약 경쟁률 1583대 1, 청약 증거금 4조6759억원. 서울 강남 아파트 청약 결과가 아니다. 9일 끝난 2차 전지 장비 제조 업체인 에이프로의 기업공개(IPO) 공개모집(공모) 주식 청약 결과다. IPO(Initial Public Offering)는 비(非)상장기업이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해 재무 내용을 공시하는 제도다. 이때 신규로 주식을 발행한 후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하는데, 에이프로 공모주를 사겠다는 사람이 1583명, 이들이 낸 청약 증거금(청약금액의 50%)이 4조6759억원인 것이다.

SK바이오팜 흥행 후광 효과 #30조 ‘뭉칫돈’ 떠돌며 청약 군침 #카카오게임즈 등 대어급 대기 #하반기 시장 규모 5조~6조 전망 #‘묻지마 투자’ 가격 추락 땐 낭패 #재무제표 등 꼼꼼한 분석 필요

공모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최근 일반 공모를 진행한 의약품 제조기업인 위더스제약은 1082대 1, 올레드(OLED) 장비를 개발하는 신도기연은 955대 1, 인공지능(AI)·빅데이터 전문 기업 솔트룩스는 953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최근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한 2차 전지 장비 업체인 티에스아이의 공모주 청약(14일) 경쟁률은 1621대 1로, 종전 최고 경쟁률(2018년 현대사료 1690대 1)을 갈아치웠다. 티에스아이 증거금은 2조9941억원이었고, 솔트룩스 증거금은 1조7879억원이었다.

#공모주 청약이 인기를 끄는 건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로 시장 가격보다 공모가(발행가격)를 낮게 책정하기 때문에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모 흥행 여부는 상장 후 주가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이를 고려해 ‘적정 가격’보다 10~30%가량 낮게 책정한다는 게 증권가의 설명이다. 최근엔 이른바 ‘따상(공모가 대비 2배로 시초가 형성 후 상한가)’이 줄줄이 나오면서 개미(개인 투자자)를 자극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공모가가 1주당 4만9000원이었는데, 지난 2일 상장 직후 12만7000원을 기록했다. 청약 당첨자가 상장 직후 곧바로 팔았다면 수익률이 약 159%에 이르는 셈이다. 에이프로도 따상을 기록했다.

시장에선 SK바이오팜의 후광효과도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4일 진행한 SK바이오팜 공모주 청약엔 증거금만 30조9889억원이 몰렸다. 이 중 30조원이 환불됐는데, 이 돈이 계속 IPO 시장에서 옮겨 다니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소중 SK증권 연구원은 “일반 투자자에게 환불된 30조원 중 일부가 다른 공모 청약에 다시 유입되면서 청약 경쟁률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초저금리로 시중 유동자금은 풍부한데, 부동산 규제 등으로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점도 IPO 시장을 들썩이게 하는 요인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실 IPO 공모시장 상황은 올 상반기에만 해도 최악이었다. 상반기 IPO 시장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증시 변동성 확대로 최근 6년 새 가장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6월 말까지 신규 상장기업은 12곳, 공모 규모는 365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기업 수는 33%, 공모 규모는 66%가량 감소했다. 그나마 유가증권시장에선 단 한 곳도 상장하지 못했다. 코스닥시장 중심의 소규모 공모만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상장을 예고했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일정을 미루거나 철회한 회사가 많았던 것도 상반기 IPO 시장의 부진을 부추겼다.

하반기엔 대어급 기업이 대거 IPO를 추진한다.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가치가 수조원대에 이르는 기업이 대기 중이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987억원으로, 국내 대표 엔터테인먼트사인 SM(404억원)과 JYP(435억원), YG(20억원)의 영업이익을 합한 것보다 많다. 이 때문에 빅히트가 상장하면 엔터테인먼트 대장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카카오게임즈는 카카오의 게임 전문 자회사로, 기업가치가 2조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는 대어급이다.

#장외시장에선 주가가 이미 5만원을 넘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하반기 IPO 시장으로 흘러들면 역대 최고치였던 2016년 하반기(5조3000억원)를 넘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IPO 시장 규모가 5조~6조원을 기록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무조건 낙관해서는 곤란하다. 공모주 청약을 결정한 투자자는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 등을 통해 IPO 예정 기업의 재무제표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상장 이후 따상은커녕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예도 더러 있다.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공모주 청약에 앞서 진행하는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공모주 청약은 특히 경쟁률에 따라 안분배정(1:1비율)하는 방식이므로 증권사 선택도 중요하다. A증권사에 배정 물량이 많다고 해도 투자자가 다른 증권사에 비해 더 몰리면 실제로 받는 주식은 더 적을 수 있다.

SK증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고 있어 투자자의 눈길은 바이오나 언택트(비대면) 기업에 쏠릴 수밖에 없다”며 “공모주에 무턱대고 투자하기보단 해당 기업에 대한 분석과 업종 현황·전망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임대용 부동산 ‘털썩’…공모 리츠 잇단 흥행 참패

풍부한 유동성 덕에 기업공개(IPO) 공모주 청약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공모 리츠(REITs·부동산 투자신탁)는 찬밥 신세다. 리츠는 일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주로 호텔·오피스 등 임대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고, 그 수익(임대료·매각 차익)을 배당 방식으로 돌려주는 상품이다. 공모 리츠는 증시에 상장해 일반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기업 IPO와 유사한 형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프랑스 파리 부동산에 투자하는 리츠인 마스턴프리미어1호는 22일 예정된 공모 청약 일정을 미루고, 하반기에 재공모하기로 했다. 상장을 그대로 진행한 리츠는 줄줄이 흥행 실패를 맛봤다. 이달 청약을 진행한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청약 경쟁률이 2.6대 1, 미래에셋맵스리츠1호는 9대 1에 그쳤다.

16일 상장한 이지스밸류리츠의 주가는 공모가(5000원)를 밑돌고 있다. 공모 리츠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초저금리 시대의 투자 대안으로 인기를 끌었다. 연 5~6%에 이르는 배당수익을 얻을 수 있고, 주가가 오르면 시세 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물 자산에 투자하는 만큼 안정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지난해 10월 공모를 한 롯데리츠는 청약 경쟁률이 63.3대 1이나 됐다. 공모 리츠 사상 최대 경쟁률로, 청약증거금으로만 4조7600억원이 몰렸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리츠의 주요 투자 자산인 사무실·상가·호텔 등 임대수익형 부동산이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객이 줄고, 기업이 쪼그라들면서 상업용 부동산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5~2019년 연평균 9%씩 오르던 상업용 부동산의 매매가격은 올 1~4월엔 평균치를 한참 밑도는 2.8%에 그쳤다. 상장 리츠의 주가도 최근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리츠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기보단 최근 일부 분야 주가가 단기 급등하면서 상대적으로 리츠에 대한 관심이 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2차 전지나 바이오 등 공모주가 단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거두자 개인 투자자가 단타 매매로 관심을 돌린 것 같다”며 “개인 투자자에겐 바이오 등 일반 공모주보다 리츠가 익숙하지 않은 면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부동산 투자 수요가 리츠로 눈을 돌릴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실물 부동산보다 수익률이 높고, 적은 금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부동산 규제에 따른 유동자금이 리츠에 관심을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리츠의 연평균 배당수익률(임대주택 제외)은 8% 정도에 이른다. 국토부가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2년 이후 연 5%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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