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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靑·부처 통째 세종 이전” 김태년이 꺼내든 盧·文의 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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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국회, 청와대, 정부 부처가 모두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국회, 청와대, 정부 부처가 모두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행정수도를 제대로 완성하려면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에 내려가야 한다. 아울러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한다.”

[뉴스분석]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21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세종시 행정수도’ 카드를 꺼냈다. 명분은 국토 균형 발전과 부동산 시장 안정화였다. 김 원내대표는 수도권 과밀화가 ‘지방 소멸’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를 표하며 “행정수도를 통해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숙원 사업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민주당이 21대 국회 시작과 동시에 국회 세종의사당 논의에 착수한 이유다. 홍성국(세종갑)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0일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동시에 이해찬 대표가 이끄는 세종의사당특별추진위원회를 통해 중점 추진 과제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2019년 9월 당시 이해찬(왼쪽 둘째) 대표와 이인영(오른쪽 둘째) 원내대표가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를 위한 심포지엄'에 참석해 세종의사당 설치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연합뉴스]

2019년 9월 당시 이해찬(왼쪽 둘째) 대표와 이인영(오른쪽 둘째) 원내대표가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를 위한 심포지엄'에 참석해 세종의사당 설치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김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밝힌 구상은 “지금까지 당 차원에서 누적된 논의와는 다소 결이 다른 개인적 견해”(민주당 당직자)라는 평이 많다. 정부 18개 부처 중 서울에 남아있는 외교·통일·국방·여성가족부 등을 포함해 국회·청와대까지 모두 세종으로 내려보내는 ‘일괄 이전’은 국회의 일부 기능을 이전하는 기존안보다 한층 급진적이기 때문이다. 세종의사당특별추진위 소속 한 의원도 “기존에 논의되던 ‘국회 세종분원’ 방안과 다른 김태년 원내대표 안은 충분한 숙의 기간이 필요하다”며 “교섭단체 대표연설 전 당 내 논의나 추진위와의 교감은 없었다”고 말했다.

균형발전·부동산 '일거양득' 

세종시는 '정부세종청사'가 운영되고 있음에도 일부 정부 부처가 서울에 남아있는데다 국회 및 청와대가 서울에 남아 있어 '반쪽 행정도시'로 운영되고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서울에 남아있는 부처와 국회, 청와대를 모두 세종으로 이전시키자고 제안했다. [중앙포토]

세종시는 '정부세종청사'가 운영되고 있음에도 일부 정부 부처가 서울에 남아있는데다 국회 및 청와대가 서울에 남아 있어 '반쪽 행정도시'로 운영되고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서울에 남아있는 부처와 국회, 청와대를 모두 세종으로 이전시키자고 제안했다. [중앙포토]

김 원내대표가 ‘행정수도 일괄 이전’ 카드를 꺼낸 것은 표면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목표인 '균형 발전'에 부합한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수도권 집값 상승을 안정화하기 위한 근본적 화두를 꺼낸 것”(재선 의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문 대통령의 '그린벨트 해제 불가' 입장으로 주택 공급을 위한 부지 마련이 난망한 상황에서 세종시 행정수도를 통해 서울에 집중된 부동산 수요를 분산하려는 의도가 읽혀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 역시 “행정수도 이전은 서울시내 수요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가장 선명하고도 확실한 부동산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내대표의 급진적 구상이 집값 안정을 염두에 둔 사실상의 '부동산 정책'일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지난 15일 당·정 협의를 통해 ‘부동산 공급 활성화’를 선언한 지 일주일도 안 돼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낸 것이 공급정책에서 마땅한 해법을 찾지못해 나온 궁여지책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장기적으로 수도권 부동산 수요를 조절하자는 입장으로 해석돼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공급 대책'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간 금기시해온 재개발·재건축 카드를 이제와 꺼낼 수 없으니 수요 조절이라는 우회로를 택한 것"이라며 "서울 집값 잡겠다고 세종에 모든 기능을 집중시키면 풍선효과로 세종의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이 과거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배치된다는 점도 논란 거리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그건 지난 번 헌재 판결문에 의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이미 결정이 됐다”면서“이제 와서 헌재 판결을 뒤집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실상의 '수도 이전'…'개헌 족쇄' 돌파하나

2004년 10월 2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이후 시·도지사의 간담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중앙포토]

2004년 10월 2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이후 시·도지사의 간담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충청권으로 행정 수도를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헌법재판소의 벽에 가로막혔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다. 당시 헌재는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헌법적 관습에 해당한다"고 봤다. 행정수도를 이전하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결국 김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밝힌 ‘행정수도 일괄 이전’ 구상은 개헌을 해야 가능한 사안이다. 민주당이 기존에 ‘국회 세종분원’을 중심으로 논의해온 것 역시 이같은 맥락을 파악하고 있어서다.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이와 관련 “수도 이전의 경우 개헌이 필요한 사안이라 일단은 일부 기능을 이전하는 방향으로 세종의사당 논의가 진행됐다”며 “국회 본회의 등 핵심 기능을 제외하고 일부 상임위를 세종의사당으로 옮기는 것은 기능 분산에 해당해 개헌 없이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 헌법개정안을 의결하기 위해서는 재적인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00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103석의 통합당의 협조 없이는 개헌이 불가능하단 의미다. 하지만 급작스런 ‘수도 일괄 이전’ 주장에 대한 통합당의 반응은 싸늘하다. 배현진 통합당 원내대변인은 “온 나라 부동산이 쑥대밭인 이 시점에 이번에는 세종시 국회 이전이라는 국가 개발의 거대 담론을 던졌다”며 “역시 투기 조장 일등 정부와 집권 여당답다”고 비판했다. 개헌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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