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80만 돌파 '반도' 연상호 감독 "'염력' 실패 후 '극장' 고민한 첫 결과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좀비재난영화 '부산행' 후속작 '반도'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을 영화 개봉 하루 전인 지난 14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NEW]

좀비재난영화 '부산행' 후속작 '반도'로 돌아온 연상호 감독을 영화 개봉 하루 전인 지난 14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NEW]

좀비영화 ‘부산행’(2016)의 후속작‘반도’가 개봉 닷새 만에 18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극장가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2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반도’는 지난 주말 이틀(18∼19일) 동안 95만9723명을 동원했다. 누적 관객 수는 180만4053명. 총제작비 190억원대 대작임에도 190개국에 선판매된 덕에 한껏 낮춘 손익분기점(250만 관객) 도달도 거뜬해 보인다.

좀비영화 ‘부산행’ 후속 ‘반도’ #개봉 닷새만에 180만 관객 동원

개봉 전날인 지난 14일 본지와 만난 연상호(42) 감독은  ‘반도’의 정체성을 “두근거림”에서 찾았다.

“어릴적엔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흔한 경험이 아니었기 때문에 설렘이 있었어요. ‘쥬라기공원’ ‘스타워즈-에피소드3’ ‘터미네이터2’ 가슴 두근거리면서 보러갔거든요. 블록버스터란 게 그런 두근거림이었죠. ‘반도’는 그런 관점에서 만들었습니다.”

좀비 불모지였던 한국이 ‘좀비 맛집’이 된 건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인 그의 실사 연출 데뷔작이자, 국내 최초 좀비 재난 블록버스터 ‘부산행’부터였다. ‘반도’는 그로부터 4년 후, 폐허가 된 채 고립된 서울을 무대로 한국형 포스트 아포칼립스(멸망 후 세계관을 다룬 작품) 액션물을 표방했다. 좀비는 거들 뿐, 짐승처럼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악전고투가 주축이다.

'부산행' 4년 후를 그린 좀비 재난영화 '반도'에서 주연 강동원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탈출했지만, 피치 못할 제안을 받고 폐허가 된 반도에 다시 돌아온 생존자 정석 역을 맡았다. [사진 NEW]

'부산행' 4년 후를 그린 좀비 재난영화 '반도'에서 주연 강동원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탈출했지만, 피치 못할 제안을 받고 폐허가 된 반도에 다시 돌아온 생존자 정석 역을 맡았다. [사진 NEW]

"초등생도 볼 수 있는 '가족 좀비영화'"

“‘부산행’ 개봉하고 추석쯤 가게에 갔는데 아이들이 팔을 꺾으며 좀비흉내를 내더군요. 한 친구도 전화가 와서 초등학생 아들이 ‘부산행’ 보러가자고 조른다는 거예요. 15세 관람가라 부모 동반해야 하는데 안 보면 친구들과 말이 안 통한다고. 애니메이션 땐 겪어보지 못한 충격적인 경험이었죠. 좀비영화다보니 애들한테 보여줘도 되냐, 사람 뜯어먹는 센 장면 안 나오냔 문의도 받았는데 ‘반도’는 그런 걱정 없이 가족단위로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죠.”

 19일 오후 서울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반도'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반도'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형 소시민 슈퍼 히어로에 철거민 문제를 접목한 실사영화 ‘염력’(2018)으론 참패의 쓴맛도 봤던 그다. “‘염력’이 대중적으로 실패하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무엇일까 고민했고, 플랫폼의 성향을 알고 작업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반도’가 그 첫 번째 결과물”이라 소개했다. 시나리오부터 20분여 대규모 자동차 추격전 등 시원시원한 ‘그림’을 먼저 구상하고 캐릭터의 감정선은 나중에 채워나갔다는 설명이다.

'염력' 흥행 실패…달라진 '극장 관객' 고민 

달라진 관객 성향도 반영했다고.

“예전엔 관객들이 혼자서도 극장 관람을 즐겼다면 지금은 대부분 극장 나온 김에 친구 만나고 밥 먹고 쇼핑하는 나들이 개념이 강해졌다. 또 캐릭터 감정선,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여주기엔 드라마가 훨씬 용이하다. 극장의 강점(스펙터클)을 중심에 가져가야한다는 게 컸다.”

볼거리 위주로 전개되다보니 캐릭터나 드라마는 밋밋하단 평가도 있는데.  

“전혀 약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약점이라고 생각하신 분들은 변화를 못 받아들이시는 게 아닌가.”

"'반도'는 좀비물로서 '부산행'보다 진화"  

주인공은 4년만에 서울에 돌아온 전직 군인 정석(강동원)이지만, 그간 ‘좀비 지옥’에서 살아남은 민정(이정현)‧준이(이레) 모녀 등 여성들의 자동차 액션이 도로를 주름잡는 것도 신선하다.

처음부터 ‘작은 소녀가 큰 차를 몰면서 좀비를 쓸어버리는 이미지’에서 영화가 출발했다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한국화하면서 느끼하지 않은 이미지가 뭘까. 너무 이런 데 어울릴 만한 건장한 남성이 폼잡는 것보다 자기하고 안 어울리는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소녀의 이미지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을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도'에서 탁월한 운전 실력으로 좀비와 맞서는 소녀 준이를 연기한 이레. '부산행'의 마동석처럼 "최강 전투력"이라는 연상호 감독의 설명이다. 미성년자인 이레는 무술감독과 함께 힘 있는 운전 동작을 연습해 촬영에 임했다. [사진 NEW]

'반도'에서 탁월한 운전 실력으로 좀비와 맞서는 소녀 준이를 연기한 이레. '부산행'의 마동석처럼 "최강 전투력"이라는 연상호 감독의 설명이다. 미성년자인 이레는 무술감독과 함께 힘 있는 운전 동작을 연습해 촬영에 임했다. [사진 NEW]

이레가 연기한 준이는 민정이 피란 중에 거둔 딸이란 설정이다. ‘부산행’의 석우(공유) 딸 수안(김수안)의 성장버전처럼 느껴지는데.  

“준이는 준이고, 수안은 수안이다. 다만 ‘부산행’ 마지막에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잖나. ‘반도’는 그렇게 형성된 가족의 이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반도’의 중심이 공동체 스토리다. 대표적으로 631부대는 절망을 베이스로 (인간성을 상실하고) 자극만을 좇는 ‘변종 좀비’ 같은 집단 안타고니스트다. 견고한 성 같지만 곧 부서지기 직전의 불안한 공동체로 보이길 바랐다. 반면 민정의 공동체는 연대를 강조해, 정석이 그 사이에서 뭔가를 느끼길 바랐다.”

‘반도’의 좀비와 ‘부산행’ 좀비의 차이라면.  

“좀비는 드라큐라처럼 개체 하나의 힘보단 ‘풍경’ 같은 존재다. ‘부산행’은 좀비영화가 처음이니까 개체에 대한 재미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 마동석 선배한테도 지는 존재지 않나. 좀비물이 좀비 개체가 아닌 좀비화된 세계의 영화란 점에선, 좀비에 의해 포스트 아포칼립스화된 배경을 그린 ‘반도’가 더 진화한 셈이다.”

'반도' 속편 만든다면 이 장르 접목 

'반도'에는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의 전직 군인들은 총기를 권력삼아 인간 생존자와 좀비를 싸움 붙이는 '숨바꼭질'이란 잔혹한 게임도 즐긴다. [사진 NEW]

'반도'에는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의 전직 군인들은 총기를 권력삼아 인간 생존자와 좀비를 싸움 붙이는 '숨바꼭질'이란 잔혹한 게임도 즐긴다. [사진 NEW]

4년 전 ‘부산행’이 칸 심야상영 부문을 달군 데 이어 ‘반도’는 올해 개최가 무산된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에 호명됐다. 할리우드 대작이 코로나19로 대거 개봉을 미룬 가운데 한국과 동시에 개봉한 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에서도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다음 좀비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색깔일까.  

“‘반도’의 속편이 나온다면 다른 방식으로 가고 싶다. 지금 관심 가는 건 호러다. 어떻게 보면 좀비와 제일 가까운데 요즘엔 좀비호러를 잘 안 하더라.”

영화판 '방법'엔 좀비 닮은 한국 요괴 

‘부산행’ 전까진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돼지의 왕’(2012), OCN 드라마 ‘구해줘2’ 원작이 된 ‘사이비’ 등 다소 어두운 세계관의 사회 풍자적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그다. 차기작도 다채롭다. 올초 종영한 tvN 오컬트 드라마 ‘방법’의 영화판에선 드라마에 이어 연 감독이 각본만 맡아 한국판 좀비 ‘재차의’를 다룰 예정이다. “한국 전통 요괴로서 주술에 의해 움직이는 시체를 ‘재차의’라 하는데 부두교에서 주술사가 움직이는 좀비와 비슷하죠.”

영화 '반도'가 한국과 같은 주 개봉한 대만과 말레이시아 사전 시사회 현장 모습. [사진 NEW]

영화 '반도'가 한국과 같은 주 개봉한 대만과 말레이시아 사전 시사회 현장 모습. [사진 NEW]

그가 글을, 최규석 작가가 작화를 맡은 웹툰 ‘지옥’은 이번 달 단행본 1권이 나온 데 더해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로 연 감독이 직접 연출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지옥 고지를 받고 저승사자들에게 쫓기게 되는 하드코어한 작품이다.

호러 팬을 자처하는 그는 소재 발굴도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에도 마이너하지만 호러 작가들이 많아요. 텀블벅(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해 책도 사고 북콘서트 가서 얘기도 듣곤 하죠. 할리우드 진출은 딱 맞는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으로선 한국에서 잘 만들어도 충분히 글로벌한 관심 끌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관련기사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