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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아버지 대신 5·18 사죄, 됐다할 때까지 무릎 꿇을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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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호 10면

세 차례 광주 찾은 노태우 장남

노태우(88)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55)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은 최근 9개월 사이에 세 차례 광주광역시를 찾았다. 지난해 8월 23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노 원장은 지난해 12월 6일에는 광주 오월어머니집을 연락 없이 방문했다.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한다. 아버지께서 직접 광주의 비극에 대해 유감을 표현해야 하는데 병석에 계셔서 여의치 않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로부터 다섯 달여 뒤인 올해 5월 29일 노 원장은 다시 광주로 내려가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그는 아버지 이름으로 된 조화를 헌화한 뒤 분향했다.

대학 생활 내내 혼란·번민에 싸여 #36년 지난 지금까지 그 무게 느껴 #아버지가 유감 표명해야 하는데 #병석에 누워계셔서 여의치 않아 #첫 방문 때 죄송함·감사함 교차 #정치 참여할 가능성 1%도 없어 #한·중·일 문화 교류 사업에 매진

제13대 대통령으로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재임한 노 전 대통령은 신군부의 주역으로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과 학살 책임의 당사자로 꼽혀 왔다. 5월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 과정에서 자위권 발동 결정과 헬기 지원 등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법원은 12·12 쿠데타와 5·18 진압을 군사 반란과 내란 행위로 판단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 노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형 등 핵심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중앙SUNDAY는 수차례 설득 끝에 노 원장을 만나 그의 5·18 민주묘지 참배에 얽힌 사연 등을 들어봤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가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가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올해 5·18 40주년인데 얼마 전 5·18 민주묘지에 다녀왔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배했는지.
“5·18의 실상을 처음 접한 건 대학교에 들어간 1984년입니다. 그 전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아버지가 포함된 이른바 ‘신군부’와 관련돼 있다는 정도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죠. 대학에 다니며 5·18에 관한 수많은 대자보와 사진 등을 접하면서 엄청난 충격과 함께 가치관에 큰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그 혼란과 번민이 대학 생활 내내 제 어깨를 짓눌렀고, 그 무게는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5·18 이후 정치적·사회적 변화가 일면서 잘 몰랐던 부분도 하나둘 알게 됐습니다. 민주화운동으로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짐을 벗기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일인데 아들이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많은 분이 제 아버지가 5·18 특별법이 제정돼 처벌받은 사실은 기억합니다. 일각에선 회고록에서 광주를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까지 한 사람의 아들이 사죄한다고 하니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소 5·18에 대해 너무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6·29 선언의 씨앗은 5·18이라는 확고한 소신도 갖고 계셨고요. 또 5·18 보상 관련 법률이 제정되는 데 아버지의 건의나 소신이 받아들여진 측면도 있다고 저희 가족은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제게 ‘노 전 대통령 사후에 국립묘지에 모시려고 저러는 것 아니냐’고도 하던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립묘지를 영예롭게 생각하겠지만 저희 가족은 국립묘지를 고집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버지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고요.”

2011년 출간된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5·18의 원인은 유언비어’라는 대목을 둘러싸고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노 원장은 “(아버지가 직접 쓴 게 아니기 때문에) 회고록을 마지막으로 정리할 때 아버지의 진심이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다시 출판하게 될 기회가 있다면 개정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5·18 민주묘지에 첫발을 들여놨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처음 묘지에 들어섰을 때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사들의 묘지를 참배하면서 ‘이런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발전과 함께 민주화를 이룰 수 있게 됐구나’라는 감사함도 느끼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민주묘지를 방문할 때 죄송함과 감사함이 교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죄 방문은 언제까지 하실 생각인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사과는 피해자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해야 한다’고 했듯이 저 역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이제 됐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을 겁니다.”
노 전 대통령은 평소 5·18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나요.
“5·18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는 게 아버지의 확고한 생각입니다. 상처는 치유돼야 하고 5·18 정신은 민주화운동의 정신으로 계승돼야 한다고도 강조하셨습니다. 또 본인이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고 역할을 할 부분은 역할을 하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
“12·12부터 6·29까지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6·29 이후부터는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저는 이제부터 새로운 길을 가겠으니 국민 뜻대로 써주십시오’라고 밝힌 게 6·29 선언 아닙니까. 노태우라는 사람은 6·29 이전과 이후 두 명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6·29에 5·18이 담겨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6·29를 통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했다고 봅니다. 전 전 대통령은 6·29 전까지였지만 노 전 대통령은 6·29 이후 시간이 있었으니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부친 건강은 어떠신지요.
“말씀과 거동을 못하신 지 꽤 오래됐습니다. 아버지 거동과 언어 표현이 자유롭다면 제가 지금처럼 할 필요는 없겠죠. 그럴 수 없으니까 100%는 아닐지라도 제가 사죄의 뜻을 전하는 겁니다.”
신군부와 그 직계비속 중 민주묘지 참배는 노 원장이 처음인가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저희 가족 중에는 어머니(김옥숙 여사)가 가장 먼저 다녀오셨죠. 저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추징금 완납도 저희가 할 도리를 한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재직 당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1997년 추징금 2628억96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2013년 이를 완납했다.

모친은 1988년 민주묘지를 참배했죠.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됐죠(1992년 월간중앙 10월호 첫 보도). 돌아보면 6·29 선언 이후 아버지는 김대중씨 사면 복권을 언급했는데 그건 5·18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고 봅니다. 6공화국 출범 당일 어머니의 광주 방문, 그리고 국회 5·18 청문회 개최 등도 5·18 문제 해결을 위한 아버지의 노력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 원장은 “88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당일에 수행원 몇 명만 데리고 어머니가 참배하신 데는 아버지 뜻이 담겨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그날 이미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광주에 다녀오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모친 건강도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연세(85세)가 있으신 데다 아버지 병간호를 하시는 과정에서 본인 건강까지 나빠지셨어요.”
누나(노소영)와는 자주 소통하시는지.
“물론입니다. 언젠가 5·18 민주묘지에 누나와 함께 참배하러 갈 생각입니다. 곧 그럴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4·15 총선 과정에서 노 원장의 출마설과 특정 정당 입당설이 들렸습니다.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대한민국 현실 정치에 참여할 생각이나 가능성은 1%도 없다는 겁니다. 다만 저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던 사람인 만큼 대한민국과 우리 사회를 위해 어떻게든 기여해야겠다는 마음은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중·일 문화 교류 사업과 미래 세대를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광주 방문 관련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노재헌씨가 지난 5월 29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재헌씨가 지난 5월 29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에게 인터뷰를 처음 요청한 건 지난 2월 초. 당시는 4·15 총선 두 달여 전으로 노 원장의 더불어민주당 입당설과 출마설이 나돌던 때였다. 당시 노 원장은 비보도를 전제로 “정치에 참여할 확률, 총선에 나갈 확률은 1%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광주 방문과 5·18 민주묘지 참배와 관련해서도 “지금 말하면 괜한 오해를 부를 수 있으니 다음 기회를 보자”며 정중하게 인터뷰를 사양했다.

노 원장에게 다시 인터뷰를 요청한 건 그로부터 4개월 뒤인 지난 6월 초. 노 원장의 세 번째 광주 방문 보도가 나간 직후였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노 원장은 “광주 방문과 관련해 언론 인터뷰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다시 한 번 고사했다. 이어 지난 6월 하순 노 원장에게 또다시 인터뷰를 요청했다. 훗날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한 번쯤 노 원장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설득을 곁들였다.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던 노 원장은 며칠 뒤 인터뷰를 수락했고, 그가 이끌고 있는 사단법인 뷰티플마인드(장애인 음악가 지원 공익재단)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속내를 털어놓았다. 노 원장은 “광주 방문과 관련한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17일 발간된 월간중앙 8월호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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