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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꿔다 놓은 보릿자루?…네 박자춤 차차차부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33)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중국 봉제 공장을 바이어 자격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공장 한 바퀴를 둘러 보고 점심을 먹는데 술이 겸해 나왔다. 얼큰하게 취했다. 그다음 순서는 공장 별도의 방에 마련된 노래방에서 노는 것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춤 출 줄을 몰랐다. 그들은 차차차라도 추라며 성화를 부렸다. 우리나라 사람은 외국에 나가면 춤추는 자리에서 늘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춤을 못 춘다거나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댄다. 그러면 주관하는 측에서는 몹시 불편하다. 우리를 위해 마련한 자리인데 같이 어울리지 않으니 곤혹스러운 거다. 더구나 몸이 불편해서 못 춘다고 하면 더 걱정한다. 그들은 우리가 설마 전혀 춤출 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춤을 못 출 수 있느냐는 것이다. 춤을 못 추고 어색하게 앉아서 구경만 해야 하는 우리도 고역이다. 춤을 청하는데도 응하지 않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춤이란 것이 알고 보니 별것도 아니다. 3박자 춤과 4박자 춤의 기본만 알면 된다.[사진 Wikimedia Commons]

춤이란 것이 알고 보니 별것도 아니다. 3박자 춤과 4박자 춤의 기본만 알면 된다.[사진 Wikimedia Commons]

유럽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같이 어울리면 늘 춤을 추지만 우리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권유에 못 이겨 나가서 막춤을 추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그들이 요구하는 춤이란 것이 알고 보니 별것도 아니다. 3박자 춤과 4박자 춤의 기본만 알면 된다. 3박자 춤은 슬로 왈츠와 빠른 왈츠인 비에니즈 왈츠가 있다. 3박자마다 발을 모으는 것이 특징이다. 장소가 그리 넓지 않으므로 그 스텝으로 오른쪽으로 돌면서 추면 된다. 4박자 춤은 가장 쉬운 춤이 차차차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차차차라도 추라고 한 것이다. 차차차 기본 스텝만 할 줄 알면 출 수 있는 춤이다. 빠른 4박자라면 차차차를 추면 되고 느린 4박자라면 차차차와 스텝이 거의 비슷한 룸바를 추면 된다. 자이브까지 알면 더 금상첨화다.

춤은 박자만 탈 줄 알면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한 기술이다. 4분의 4박자 춤이 기본이다. 우리나라 블루스가 4박자 춤으로 절반은 왼쪽, 나머지 절반은 오른쪽으로 체중을 옮기면서 추는 좋은 춤이다. 블루스가 아니더라도 4박자 춤이라면 응용이 쉽다. 한번은 기본, 한번은 응용동작으로 해도 된다. 반으로 나눠 두 박자는 기본 스텝을 하고 나머지 두 박자는 그 박자 동안 내가 움직이든지 여성을 밀어 돌리든지 여성의 팔을 들어 올려 한 바퀴 돌리는 등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한 것이다. 박자 탈 줄만 알면 다른 춤도 금방 눈으로 보면서 쉽게 배운다. 그러므로 박자를 탈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아예 안 한 것이 문제가 된다. 학창시절에 몇 번만이라도 배웠더라면 평생 춤 못 춘다는 수모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자는 대개 기본 박자조차 둔감하다. 국민 체조를 해봐도 리듬은 물론 박자를 못 맞추는 사람이 많다.[중앙포토]

남자는 대개 기본 박자조차 둔감하다. 국민 체조를 해봐도 리듬은 물론 박자를 못 맞추는 사람이 많다.[중앙포토]

춤은 밖에 나가면 필수 교양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예 처음부터 춤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배울 생각조차 안 한 것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다. 남자는 대개 기본 박자조차 둔감하다. 그 쉬운 국민 체조를 해봐도 리듬은 물론 박자를 못 맞추는 사람이 많다. 춤을 얼마간이라도 일찍 배웠더라면 다른 방면에도 도움을 줬을 것이다.

서양인은 결혼식 피로연에서는 으레 춤을 춘다. 부부끼리도 추지만, 아빠와 딸이 추기도 하고 엄마와 아들이 같이 추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배웠고 파티할 때마다 춰 왔기 때문에 별도의 연습도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추는 것이다. 우리도 어릴 때부터 자녀들과 춤을 같이 췄다면 세대 간의 갈등도 오늘날처럼 심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춤은 그만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수단이다.

춤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너무 쉬운 스텝에는 금방 싫증을 낸다. 그리고 어려운 동작을 구사해야 잘 추는 사람으로 대우하는 풍토가 잘못됐다. 춤은 기본만으로도 잘 추는 사람이 정말 잘 추는 사람이다. 어느 누구와도 맞춰서 출 수 있는 사람이 잘 추는 것이다. 춤추는 사람, 춤 못 추는 사람 2분법으로 분류해서도 안 된다. 춤은 누구나 출 수 있는 기본 소양인 것이다.

댄스 파티에 가면 잘 추는 사람이 플로어에 나오면 다른 사람들은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들어간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런 댄스파티는 기본 스텝만으로 즐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춘다는 사람도 굳이 티를 낼 필요가 없다. 댄스파티는 춤을 즐기는 곳이지 경연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파트너에게만 신경 쓰면 된다.

크루즈 여행 때 춤을 못 추면 절반의 재미를 포기한 것과 같다고 한다. 춤출 줄 모르니 춤추는 곳은 얼씬도 못 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과 술까지 배부르도록 먹었는데 발산을 못 하면 운동 부족이 된다. 사람은 흥이 나면 노래를 부르고, 더 흥이 오르면 춤을 춘다고 한다. 춤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크루즈 여행에 가서 춤을 못 추면 절반의 재미를 포기한 것과 같다고 한다.[사진 pixabay]

크루즈 여행에 가서 춤을 못 추면 절반의 재미를 포기한 것과 같다고 한다.[사진 pixabay]

삶이 지루하면 한 번쯤 기분 전환하러 춤이나 출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교춤을 출 수 있는 곳이 카바레나 콜라텍이고, 댄스스포츠는 몇 군데 안 된다. 그리고 막춤 추는 나이트클럽밖에 없다. 내가 이탈리아 소도시에 갔을 때 밭 한가운데 자리한 한 건물이 1층은 브레이크 댄스, 2층은 막춤, 그리고 3층은 댄스스포츠를 추는 건물을 방문했다. 술은 딱 한 잔만 티켓에 포함되어 있고 앉는 의자도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카바레처럼 자리를 차지하거나 그에 따라 기본 술값 매상을 올려줘야 하는 조건도 없다. 나이 든 사람은 3층에 가서 왈츠를 추고 젊은 사람들은 1, 2층에서 자기네들이 선호하는 춤을 추었다. 가족이 어울려 가도 되는 곳이다.

프랑크푸르트의 마인 강가에는 작은 폐선이 하나 있다. 춤추는 곳이다. 술도 팔고 플로어도 그리 넓지 않은데 주로 느린 음악이 나온다. 형식도 없이 흐느적거리면 되는 춤이다. 굳이 테이블에 앉아 기본 매상을 올려줘야 하는 부담도 없이 카운터에 가서 맥주 한 캔처럼 원하는 주종의 술을 주문하면 그만이다. 출렁이는 강물을 보며 술도 마시고 춤도 가볍게 출 수 있어 인상에 남는 장소다.

라인 강가의 와인촌에서 술을 마시는데 테이블이 없는 작은 플로어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손녀딸이 자이브를 환상적으로 추는 것을 보고 화장실 가다가 넋을 잃고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 댄스스포츠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 딸은 댄스라면 기겁을 하고 도망친다. 손녀는 춤을 추자고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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