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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의 함정'에 연 180조 재원 어떻게…"기본소득 시기상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본소득 도입이 오히려 빈곤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현금 복지만 늘리면 실업률은 높아지고 성장률은 낮아진다.”(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남덕우 기념사업회 6차 토론회가 ‘기본소득, 가능한 선택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공동 발제자로 나선 두 교수의 주장은 기본소득은 효과 면에서, 재정 면에서 도입하기에 아직 위험이 크다는 쪽으로 모였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기본소득제와 주거·부동산 정책세미나'에서 주제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기본소득제와 주거·부동산 정책세미나'에서 주제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옥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18~65세 근로 연령대 인구가 수령하는 현금 급여(사회보험 제외)는 빈곤층에 집중되지 않고 있다”며 “그리스, 이탈리아 등 OECD 회원국의 절반 정도에서 각종 복지급여를 저소득층보다 부유한 가계가 더 많이 누리고 있다는 점이 통계로 드러난다”고 밝혔다.

일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세금 제외)보다 현금 지원 액수가 커서 실직ㆍ빈곤 상태를 이어 가려 하는 ‘실업의 함정’ ‘빈곤의 함정’도 도사리고 있다고 옥 교수는 분석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정한 액수의 돈을 주기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오히려 빈곤율과 실업률을 끌어올리고 경제성장률은 낮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사회적 성과로서 부의 재분배 효과를 봐도 현금 지원보다는 독일ㆍ스웨덴 사례처럼 사회서비스에 많이 쓴 나라 성과가 좋았고, 정치적 성과도 마찬가지”라며 “현금 복지 전략보다는 사회서비스를 늘리는 게 나은 전략”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안 교수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계기로 기본소득 제도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필요한 돈을 누가, 얼마만큼 낼 것이냐는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도 중요한 쟁점이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 국민 약 5000만 명에게 월 3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연 180조원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10조원은 기존 복지사업 폐지로 충당 가능하다. 나머지 170조원 대부분 재원은 세금은 늘려야(증세) 마련할 수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토론자로 나선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연 180조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전 국민 보편 담세 의식이 우선돼야 한다”며 “무상복지보다 더 거대한 담론으로 ‘내가 아닌 부유한 소수가 몇% 보유세를 더 부담한다’는 식으로는 풀어갈 수 없으며, 현 단계에서 도입을 얘기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반론도 있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원재 LAB2050 대표는 “급속한 기술 발전으로 인해 한국은 독일ㆍ스웨덴 복지 모델을 경험하지 못한 채 일자리가 급격히 줄고 있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전체 인구 가운데 임금 근로자는 약 40%(2100만 명)에 불과하며 이들 가운데 비정규직, 연 소득 100만~400만원 수준의 불완전 고용 상태인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급격한 생산성 향상, 이로 인한 일자리 감소, 독일ㆍ스웨덴식 사회적 타협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면 기본소득 도입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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