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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사기' 누명 썼던 호창성·문지원 “그래도 세상은 기업이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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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원(왼쪽)ㆍ호창성 더벤처스 공동대표가 8일 서울 서초구 더벤처스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장진영 기자

문지원(왼쪽)ㆍ호창성 더벤처스 공동대표가 8일 서울 서초구 더벤처스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장진영 기자

한국 벤처계에 ‘상징적인’ 부부가 돌아왔다. 창업해서 2300억 원 규모의 매각에 성공하고, 스타트업 투자하다 검찰에 사기 혐의로 구속당해, 법정 싸움 끝에 대법원서 무죄 확정. 이런 일을 겪고도 “그래도 세상은 산업이, 기업이 바꾼다”며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들고나온 호창성(46)·문지원(45) 더벤처스 공동대표다.

두 사람을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더벤처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투자에 집단지성을 접목해,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스타트업 100팀을 키운다”며 다음 달 시작하는 ‘임팩트 컬렉티브’를 소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집단지성 투자는 뭔가. 
“스타트업 심사는 투자사(VC) 직원만 해 왔다. 그런데 사회적 가치를 VC만 알까? 오히려 그 문제를 매일 맞닥뜨리거나 연구해 온 일반인들이 더 잘 평가할 수도 있다. 그래서 VC와 일반 시민으로 100명의 심사위원단을 꾸려 온라인으로 심사하기로 했다.”
뭘 어떻게 평가하나?
“스타트업의 발전 가능성, 수익 모델, 사회에 미칠 영향, 팀워크 등을 심사한다. 팀워크는 전문 VC들이 팀을 실제로 만나며 평가하고, 다른 분야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심사해 투표한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스타트업 버전인가.
(프로듀스101은) 투표 부정이 있지 않았나. 임팩트 컬렉티브는 캔(CAN)이라는 커뮤니티용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투명한 투표를 설계했다. 심사위원은 한정된 개수의 토큰을 받아 스타트업에 투표하는데, 왜 그 업체를 택했고 그 업체에 토큰을 몇 개나 줬는지 그 이유와 기록이 공개된다. 
집단지성 스타트업 투자 프로그램 '임팩트 콜렉티브'. 사진 더 벤처스

집단지성 스타트업 투자 프로그램 '임팩트 콜렉티브'. 사진 더 벤처스

투자자, 겸손히 다양성 존중해야 

심사위원은 일반 시민이지만 ‘아무나’는 아니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이나 경험이 있어야 한다. 현재 등록한 심사위원 20명 중에는 수학자·의사·작가·정책연구자 등이 있다.

왜 이런 걸 구상했나?
“투자 심사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 2008년 미국 유학 중 동영상 자막 서비스 ‘비키(Viki)’를 창업했을 때 느꼈다. 한국ㆍ아시아 콘텐트를 즐기는 사용자가 폭증해 비키 서버가 날마다 터질 정도인데, 초기 투자가 안 들어왔다. 스탠포드ㆍ하버드 출신 백인 남자가 95%인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비키를 두고) ‘아시아 껄 누가 보냐’고 했다. 그 후 강남스타일, BTS 등이 나왔다. 이렇듯, 투자자는 정말 겸손해야 한다. 현재 투자자인 우리도, 시장에서 놓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키는 링크드인 창업자인 리드 호프만의 투자를 받았다. 호·문 대표는 비키를 2013년 일본 라쿠텐에 2억 달러(약 2300억원)에 매각했다. 한국 창업가로서 드문, 성공적 엑싯(투자금 회수)이었다.

‘리스크 감수하는 공무원’ 있어야

부부는 한국에 돌아와 벤처투자사 더벤처스를 세웠고, 2014년부터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투자 프로그램 '팁스(TIPS)' 운영사로 참여했다. 2016년 ‘투자한 스타트업에게 과도한 지분을 받아갔다’며 검찰에 기소됐다. 해당 업체들이 ‘우린 피해 입은 게 없다’고 했지만, 검찰은 호 대표를 구속했다. 1·2심과 대법원이 모두 무죄 선고해 확정됐다. 호 대표는 110일간 구치소에 있었고 송사가 마무리되는 데 총 2년이 소요됐다. 문 대표는 “(정부 일에) 왜 다들 안 나서고 조용히 사는지 알게 됐다”며 쓰게 웃었다.

최근 스타트업계에는 정부 돈이 대규모로 들어올 태세다. ‘코로나 이후 경제’ 대책으로 지난 6일 국회가 통과시킨 3차 추경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 뉴딜' 사업에 8139억원, 중소벤처기업부의 온라인 육성 및 창업 지원에 6119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이들에겐 아픈 기억의 재생이지만 ‘정부의 창업 지원이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 무엇일지’ 물었다. 호 대표가 답했다.

“창업자는 ‘세상을 바꾸는 건 비즈니스, 즉 산업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정부 지원이 시민의 일상을 바꾸는 스타트업에 닿으려면, 이 과정에 민간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민간 투자와 정부 지원을 연계하는 중기부의 팁스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런 걸 늘리려면 이제까지 없던 제도를 만드는 걸 귀찮아하지 않고 리스크를 감당할 줄 아는 공무원이 있어야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구조에서는 관성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의미만 좋은' 사회적 기업 안 돼 

호·문 대표가 다음달 시작할 임팩트 컬렉티브에는 한국·태국·싱가포르·베트남의 스타트업이 지원할 수 있다. 참가 업체는 총 500만 달러(약 60억원) 투자 유치 기회를 얻는다. 더벤처스 외에도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 등 국제 비영리기구들이 운영에 참여한다. 사회적 가치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이어서다.

 임팩트 컬렉티브에 참여하는 국내외 파트너들. 국제 비영리기구들도 참여했다. 사진 더벤처스

임팩트 컬렉티브에 참여하는 국내외 파트너들. 국제 비영리기구들도 참여했다. 사진 더벤처스

사회적 기업은 돈을 못 번다는 인식도 있는데.
“사업 가능성을 철저히 심사할 거다. 좋은 비즈니스가 좋은 돈을 만나게 하고 싶다. 우리 개개인은 이기적인 동시에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는 본능도 있다. 같은 값이면 착한 기업 것을 사니까, 사업적으로도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비키 때부터 줄곧 ‘커뮤니티’에 천착했다.
“아무나 들어와 트래픽만 높이게 하고 방치하는 건 커뮤니티가 아니다. 목표를 공유하는 사람을 모으고, 물 관리도 해야 한다. 임팩트 컬렉티브에서는 스타트업과 심사위원이 상호 평가하며, 심사뿐 아니라 해당 분야의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이 후에 투자를 받으면 성과 일부를 심사위원에게 배분하는 것도 설계하고 있다.”

'왜 굳이 투자?' 묻는다면 

궁금하던 점을, 인터뷰 말미에 물었다. 구속과 법정 싸움이라는 곤란을 겪고도 스타트업 투자를 계속하는 이유는 뭔지, 일찍 거둔 성공을 누리기만 해도 괜찮을텐데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잠시 문 대표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가다듬고 답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 경제적·정신적 피해가 컸다. 스타트업 투자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그것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그만둔다면 그게 더 억울하다.”

부부가 창업·투자를 쭉 함께했다. 주로 일을 벌이는 건 누군가?
(문) “서로가 서로를 수습하다가 일이 자꾸 커지는 거 같다.”
(호) “이건 한 번 탐구해 봐야 할 주제 같은데….”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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