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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경고 "코로나 위기, 조선인 학살처럼 움직일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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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8년 와세다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지통신]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8년 와세다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지통신]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ㆍ71)가 간토(關東) 대지진 후 벌어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거론하며 배타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무라카미는 12일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러한 위기적 상황에서는 간토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처럼 사람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며 “그런 것을 진정시켜 가는 것이 미디어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위기감이 커진 가운데 자국 중심주의가 강해진 것을 두고 ‘위기적 상황’이라 진단한 것이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고 #“자국 중심주의 강해져 위기적 상황 #트럼프처럼 발신 중심 소통법 위험”

1923년 9월 1일 진도 7.9 규모의 지진이 일본 간토 지방을 강타한 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하고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조선인 배후에 사회주의자가 있다” 등 유언비어가 확산하면서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당시 일본인 자경단과 경찰, 군인이 재일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를 조직적으로 살해하면서 희생자만 최소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와 언론이 앞장서서 선동하고 방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터뷰에 앞서 이뤄진 라디오 방송 녹음에서 독일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선전에 관한 말을 인용한 그는 “나는 1960~70년대 학원 분쟁 시대에 말이 혼자 걸어가고 강한 말이 점점 거칠게 나가는 시대에 살았다. 강한 말이 혼자 걸어가는 상황이 싫고 무섭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시대가 지나면 그런 말이 전부 사라지고 만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그런 것을 봤기 때문에 말에 대한 경보를 발신하고 싶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이라고 덧붙였다.

트위터를 이용해 일방적 메시지를 던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무라카미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하는 것처럼 제한된 문자로 말하고 싶은 것만 전달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점차 발신 중심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문장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발신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다른 방식의 소통 방법으로는 소설과 음악을 예로 들었다. 코로나19 긴급사태 발령 당시 라디오를 진행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 그는 “나는 성명 같은 것은 별로 신용하지 않는다. 길게, 강하게 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음악은 논리를 뛰어넘어 공감시키는 능력이 크다.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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