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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여성 인권변호사 명망…국내 첫 ‘성희롱 재판’ 승소 끌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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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전직 비서가 성추행 피해를 봤다며 박 시장을 지난 8일 경찰에 고소했다. “2017년 이후 성추행이 이어졌다”는 고소인의 주장은 그간 박 시장이 보여준 ‘여성 인권변호사’ ‘페미니스트 시장’ 행보와 매우 엇갈린다.

시장 취임 뒤 성평등위원회 설치 #안희정 사건 땐 미투 운동 옹호

그는 1986년 고 조영래 변호사 등과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변호인단에 참여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이 사건은 당시 민주화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93년 이종걸·최은순 변호사와 법적으론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사건인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변호를 맡았다. 6년 뒤 서울고법의 ‘가해자가 우 조교의 정신적 피해에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끌어냈다. 성희롱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인식을 사회에 알린 상징적 사건이다. 당시 박 시장은 고소장에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로 개구리를 맞힌다. 아이들은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치명적 피해를 본다’고 썼다.

박 시장은 이 사건으로 받은 ‘올해의 여성운동상’ 상금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기부했다. 2002년엔 우근민 제주도지사 성추행 사건 민간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민간 진상조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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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 지원 활동에 참여해 2012년 3월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나비기금’을 발족했다.

시장 취임 뒤 그는 서울시에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여성친화 정책을 브랜드로 내세웠다. 2017년 1월 ‘서울시 여성 리더와 함께하는 신년회’에서는 “여성다움이 원순다움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겠다”며 여성친화형 리더가 되겠다고 공표했다. “1조원을 투입해 32만 개의 여성 일자리를 만들겠다. 여성 중심, 노동 중심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2018년 5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그는 “(성폭력은)사후에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기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원칙도 그는 강조했다. “성희롱이냐, 아니냐의 판단은 피해자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성희롱·성폭력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하면서다.

그는 ‘세계 여성의 날’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여성들을 응원하고 성폭력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2018년 3월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에 대한 ‘미투’ 폭로 등이 이어진 뒤엔 ‘미투’ 운동을 용기 있는 영웅들의 행동이라고 부르며 “하나의 영웅의 의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사회적 연대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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