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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최선희 저격 다음날…美 "北 불량국가" "CVID" 꺼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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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발언하고있다. [뉴스1]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발언하고있다. [뉴스1]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방한 기간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으면서 북ㆍ미 간 실무협상 재개 마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8일 비건 대표는 이례적으로 최 부상의 실명을 거론하며 “옛 사고방식에 갇혀 있고, 부정적인 것과 불가능한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직설화법으로 비판했다. 앞서 최 부상이 4일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한 데 대한 답변 성격이었다.

그간 비건 부장관은 방한할 때마다 판문점 나 홀로 방문, 대북 인도적 지원 발표, 공개 대화 제안 등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왔다. 그랬던 비건 부장관이 이번엔 작심하고 최 부상을 향해 날을 세운 것이다.

앞서 북한은 최 부상 담화를 통해 “미국사람들과 마주 앉을 일은 없다”고 선언했는데 비건 부장관마저 “북한에 만남을 요청하지도 않았고, 협상할 권한이 있는 카운터파트가 나와야 한다”고 말하면서 북ㆍ미 모두 현재 상태로는 실무 협상을 원치 않는다고 발표한 것이 됐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연합뉴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연합뉴스]

미국의 강경한 대북 입장은 다른 곳에서도 나왔다. 비건 부장관의 방한 기간 워싱턴에선 7일(현지시간) 북한에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되돌릴 수 없도록 해체(CVID)해야 한다”는 성명이 발표됐다.

미 국방부는 이날 호주ㆍ일본 국방장관과의 3국 화상 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북한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지역의 안정성을 약화시키는 행동들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국제적인 의무를 준수하는 동시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도록 해체하기 위한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극도로 반발하는 ‘CVID’ 개념이 미 정부 차원의 성명에서 재등장한 것은 2018년 6월 첫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2년여 만이다. 이후 국무부는 북한의 반발을 고려해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용어를 써왔다.

같은 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국가국방전략(NDS) 목표를 설명하기 위해 군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북한을 이란과 함께 “불량 국가(rogue states)”이라고 불렀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고위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고위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공교롭게도 북한이 협상 중에도 계속 핵 활동을 이어갔다는 징후도 추가로 공개됐다. CNN은 8일(현지시간) 미들베리 국제문제연구소가 분석한 민간 위성업체의 한반도 위성사진 등을 근거로 북한이 핵탄두를 제조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시설의 활동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미들베리 연구소는 “이전에는 공개된 적이 없는 평양 인근 원로리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비건 부장관도 방한에 앞서 “북한은 핵물질, 폭탄 제조 물질과 각종 무기를 계속 공급하고 있으며, 외교적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이런 활동을 멈추지 않는 것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처럼 비건 부장관 방한을 계기로 비핵화 협상 재개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올 하반기 또다시 2017년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맞대응이라는 '강대강' 대결 국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북한은 이도 저도 아니라고 판단하면 결국 도발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게 되면 상황이 더욱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한·미는 최대한 이를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도움이 된다면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기회가 완전히 닫힌 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이유정ㆍ백희연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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