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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이시바의 지방 혁명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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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일본의 유력 정치인 중 이시바 시게루(63) 전 자민당 간사장만큼 지방에 천착하는 이는 드물다. 3년 전 낸 저서 『일본열도창생론』의 부제가 ‘지방은 국가의 희망’이다. 책은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정책 공약서 『일본열도개조론』을 연상시킨다. 개조론은 고도 성장기의 생활 인프라 구축, 지방 개발 청사진이다. 토건(土建)국가형이었다. 창생론은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 지방 소멸의 축소 시기 타개책이다. 설계도가 단순하지 않다. 거대 담론은 이시바의 야망을 웅변한다.

“코로나로 과밀 도시 위험 커져 #지방에서 풍요로운 일본 창생할 것” #지역 분산·내수 주도 국가상 제시

책의 총론은 지방으로부터의 혁명이다. ①일본은 유사시다. 인구 감소는 리스크가 아니라 확실히 오는 위기다. 현재대로라면 일본은 지속할 수 없다 ②지방만 소멸하고 도시권이 태평할 수 없다. 인재·식료·에너지 생산의 장(場)만 쇠퇴하고 소비의 장만 번영할 수 없다. 도쿄도 소멸로 향한다 ③도쿄 일극(一極) 집중은 도쿄에도 불리하다. 지방창생(創生)은 도쿄의 업그레이드이다 ④국가 주도 금융 정책, 재정 투입만으로 지방이 되살아나지 않는다. 지방에서 혁명을 일으켜야 일본이 바뀐다. 지방 문제 해결의 선구자·도전자와 조직이 늘면 일본 열도가 거듭난다.

각론은 2014~16년 그가 초대 지방창생 담당상일 때 만든 지방창생전략과 비슷하다. 전략은 5개년 계획(1기 2015~19년)으로, 중앙·지방 정부 모두 책정했다. 전략의 큰 목표는 젊은 세대 희망 출산율(1.8명) 실현을 통한 인구 1억명 유지다. 대책은 저출산·고령화, 지방 회생, 관광 분야를 접목했다. 5년간 젊은이 지방 일자리 30만개 창출, 도쿄 인구의 지방 전입 10만명, 기업의 지방거점 기능 강화 7500건 증대, 일본판 은퇴자주거단지(CCRC)…. 대책마다 수치 목표를 내건 것은 결기의 표시다.

지난 2일 도쿄 시내에서 도쿄도의원 보궐 선거에 나온 자민당 후보 응원 연설을 하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사진 지지통신]

지난 2일 도쿄 시내에서 도쿄도의원 보궐 선거에 나온 자민당 후보 응원 연설을 하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사진 지지통신]

이시바는 2018년 지방창생을 기치로 자민당 총재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셨다. 정적 아베 신조 총리(총재)에 2012년에 이은 패배였다. 다음 총재 선거는 내년 9월이다. 이시바는 현재 포스트 아베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아사히 신문의 최근 총재 적합도 조사에서 31%로 2위(15%·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를 압도했다. 다른 총재 후보인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은 4%였다. 이시바는 월간 문예춘추 최신호에서 포스트 코로나 청사진으로 ‘지역 분산·내수 주도형’ 국가상을 제시했다. 사실상의 집권 구상이다. 그에게 세 가지를 물어봤다(서면 인터뷰).

지역 분산·내수 주도형의 비전은.
“코로나19 사태 경험을 통해 과밀한 도시부의 위험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이미 나타났던 문제가 심각화·가속화하고 있다. 지방 산업에 AI와 빅데이터, 로봇의 최첨단 기술을 도입해 지방에서부터 풍요로운 일본을 창생하고자 한다. 지방에서 다양한 가치관을 실현해 많은 국민이 다양성을 바탕으로 행복해지는 환경을 만들겠다. 중앙과 대규모 물류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에너지·식량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지방을 중심으로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 생산물의 지역 소비)를 발전시키겠다. 이를 통해 내수를 확대하고 생산성을 높여 소득을 대폭 늘리고자 한다.”
지방창생전략 1기의 성과를 든다면.
“초대 지방창생 담당상을 맡아 전국의 1718개 시정촌(市町村·기초단체) 각자가 지역의 장래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토대를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앙에 의한 획일적 정책이 아니라 각자의 실정에 바탕을 둔 효과적인 정책은 지방에서만 입안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중앙 정부는 인재·자금·정보 면에서 지원해왔다. 5년이 지나 사회적 인구 증가까지 이룬 시정촌이 있고, 지속 가능한 대응이 ‘점(點)에서 밀(密)이 됐다’고 할 수 있다.”
2기의 최우선 과제는.
“대응이 점에서 밀이 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면(面)까지는 아니다. 앞으로 지방의 독자적 대응 속도를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도쿄 일극(一極) 집중 타파에 힘을 쏟아야 한다. 보다 강력한 정책 수단을 강구해 지방으로 사람의 흐름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기시다는 파벌 영수였던 오히라 마사요시 전 총리의 ‘전원(田園)도시구상’을 불러냈다. 대도시와 지방도시의 균형 발전,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내건 이 구상을 살려 ‘디지털전원도시국가’를 내놓았다. 이시바나 기시다 구상은 시대의 조류(디지털·AI)와 탈(脫)도시화의 조합이다. 후계 경쟁 구도 속에서 아베가 내보일 설계도는 주목거리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나라 역량과 시스템을 한껏 시험했다. 포스트 코로나 대책과 비전은 또 다른 시험대다. 정치인의 구상력, 경쟁력도 견줘볼 좋은 기회다. 빅 픽처의 개화를 기다려보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