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트럼프도 김정은도 대적 통치

중앙일보

입력 2020.07.08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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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디렉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 에디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 에디터

9·11테러를 경험했던 미국에서 ‘테러리스트’는 함부로 쓸 단어는 아니다. 테러 연루자 의혹을 받는 순간 인생이 힘들어진다. 이런 미국에서 대통령이 인종차별에 분노한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지칭했다. 시위 과정에서 폭력과 약탈, 방화가 벌어졌던 게 사실이지만 현직 대통령이라면 명목상 ‘하나 된 미국’을 얘기할 법도 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백인 지지층 표를 의식해 노골적으로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치고 있다.

나라 갈려도 지지층 올인 트럼프
‘하노이 빈손’에 한국 때린 김정은
우린 처벌 대상 찾는 콜로세움 정치

피아(彼我)로 나눠 피를 공격하고 아를 똘똘 뭉치게 하는 이런 선거전략은 쪼개진 나라에서 더욱 유효하다. 그간 세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전통적인 사회과학의 지표가 교육·소득과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Social Economic Status)였다. 그런데 현재 미국에선 지지정당(Party Identification)이 가장 강력한 지표다. 미국인들은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데 지지 정당에 따라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지난 5월 이코노미스트·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 미국 실업률을 물어보니 민주당 지지자들은 ‘15% 초과’(40%)를 가장 많이 답했고 그다음이 ‘12∼15%’(27%)였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에게선 ‘12∼15%’(31%)가 가장 많았고 이어 ‘15% 초과’(27%)의 순이었다. 현실은 동일한 데 민주당 지지자들이 느끼는 실업 현실이 더 심각했음을 보여준다.(미국 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했던 5월 실업률은 13.3%였다.)

같은 조사에서 ‘당신은 경제에 대해 주로 부정적 뉴스를 듣는가, 아니면 긍정적 뉴스를 듣는가’라는 질문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주로 부정적 뉴스’가 70%로 압도적이고, ‘주로 긍정적 뉴스’는 4%에 불과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주로 부정적 뉴스’ 48%로,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부정적 뉴스를 덜 접하고 있었다. ‘주로 긍정적 뉴스’는 13%로 민주당 지지자들 응답의 세 배가량이었다. 미국 역시 정치적 지향에 따라 정보를 선택하는 ‘확증편향’이 퍼져있음을 보여준다.

서소문 포럼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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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치기를 가장 ‘모범적’으로, 가장 일관되게, 가장 극한으로 구사하는 정권이 북한이다. 나라 안에서 ‘종파 세력’ ‘미제 간첩’ ‘자본주의 날라리풍’ 등 이른바 반동 세력을 끊임없이 숙청해 온 것도 있지만 나라 바깥에 ‘절대 악’과 ‘추종 세력’을 상정해 내부를 긴장시키고 리더십 누수를 막는 데서 거의 정치학 교과서에 나올 법하다. 주한미군 주둔을 부른 건 북한의 6·25 남침인데, 주한미군을 위협으로 삼아 내부를 결속한다. 이번엔 북·미 정상회담에 나섰다가 ‘하노이 빈손 귀국’으로 끝나자 ‘대조선 적대시 정책 미국’과의 대화를 주선했던 한국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물론 한국이 북한과 미국의 엇갈린 속내를 간파해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았던 게 문제였지만,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없다면 누가 중재하건 미국과의 핵 협상은 진도를 나갈 수 없다. 어쨌든 북한은 분이 안 풀렸는지 개성공단에 만들었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했다.

특히 이번엔 ‘남조선’ 대통령이 평양에서 군중 연설까지 해 주민들에게 뭔가 큰 변화가 올 가능성을 알렸던 만큼 다시 뒤로 돌아가려면 그에 상응하는 충격적 대남 조치나 긴장 고조 행위가 준비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라 안에서 적을 만들 건, 나라 바깥에서 적을 만들 건 대적(對敵) 통치는 쪼개진 나라를 더욱 쪼개고 고립된 나라를 더욱 고립시킨다. 악의 제국과 정의로운 반란군이 대결하는 스타워즈의 세계관은 영화로 즐기면 그만일 뿐 21세기 현실 정치 속으로 치환할 수 없다. 스타워즈를 보고 우리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건 현실이 아니어서다.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사회는 처벌 대상을 찾아내 경기장에 세워 분노를 집중시켜 민심을 달래려는 ‘콜로세움 정치’에 익숙해졌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적에게서 찾는 건 지지층 결집에 효과적일지는 몰라도 지속가능한 해법은 결코 되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역시 작용은 반작용을 부르는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된다. 대적 마케팅은 그 어딘가에서 반작용의 저항력을 블랙홀처럼 뭉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여권이 압승했던 지난 4월 총선 직후가 여권으로선 지지층 결집이 아닌 지지층 확장에 나설 절호의 기회였다. 경제·외교·사회 정책 중 먹히지 않거나 역효과를 불렀던 정책의 방향을 수정해 스펙트럼을 넓혀 산토끼를 흡수할 기회였다. 이제 그런 시간은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내려 가고 있다.

채병건 정치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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