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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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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성(性) 관련 사건에는 ‘대상화’(對象化)라는 용어가 자주 따라붙는다. ‘성적’(性的)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성적 대상화’라는 용어가 익숙한 이유다. 이는 대상화 가운데 큰 비중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대상화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다음 두 설명이 나온다. ‘어떠한 사물을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인식의 대상이 되게 함’, 또 ‘자기의 주관 안에 있는 것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구체화하여 밖에 있는 것으로 다룸’이다. 풀이가 모호해 머릿속 개념마저 뭉개지는 느낌이다. 대상화를 설명할 때 많이 인용되는 게 미국 시카고대 교수인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73)이 1995년 계간지 ‘철학과 사회 문제’(Philosophy & Public Affairs) 가을호에 기고한 논문이다.

제목까지 ‘대상화’(Objectification)인 이 논문에서 누스바움은 대상화의 7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이 부분 소제목이 ‘사람을 사물로 대하는 7가지 방식’(Seven ways to treat a person as a thing)이다. 요컨대 대상화는 사람을 사물처럼 대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다. ▶도구성(목적을 위한 도구처럼 대함) ▶자율성 부정(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이 없는 것처럼 대함) ▶비활동성(자주성과 활동성이 없는 것처럼 대함) ▶대체 가능성(다른 대상과 교환 가능한 것처럼 대함) ▶침해 가능성(해체하고, 부수고,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대함) ▶소유권(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매매할 수 있는 것처럼 대함) ▶주관성 부정(경험이나 느낌을 고려할 필요 없는 것처럼 대함)이다.

많은 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대상화한다. 상대를 자신과 같은 인격체가 아니라, 사물처럼 대한 게 잘못의 근원이다. 최근 공분을 사고 있는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의 안타까운 죽음을 예로 들어보자. 공개된 가해자 발언 녹취와 주변 인물 진술 등을 종합하면, 감독과 팀 닥터, 선배 등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철저히 대상화했다. 자신들 불만을 해소하는 대상으로, 경제적인 잇속을 챙기는 대상으로 말이다. 유사한 상황을 무수히 접한다. 여행용 가방 속에서 숨져간 아이, 아파트 주민 갑질에 스스로 목숨을 접은 경비원,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 등등. 곰곰이 따져보면 이들 모두 대상화의 7가지 방식 중 어딘가에 속한다. 우리 역시 그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