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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화폐로 일기 면제권 사요” 초등학교 교실속 작은 국가

중앙일보

입력

“일단 예금에 가입해서 이자를 받고 있기 때문에 돈 관리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생이나 직장인의 말이 아닙니다. 등교 개학한 지 얼마 안 돼 친구들과 아직 서먹하다는 부산 송수초등학교 6학년 조윤슬 양의 말입니다.

조 양이 속한 6학년 1반은 ‘미소’라는 가상의 화폐 단위로 움직이는 하나의 작은 국가입니다. ‘햇반’(햇살처럼 따사로운 반)이라는 이름의 국가 안에서 학생들은 숙제를 얼마나 성실히 했는지에 따라 신용등급을 부여받습니다.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은행원, 경찰, 우체부 등 학급 활동에 필요한 직업 중 하나를 갖습니다. '미소' 화폐로 2주에 한 번씩 봉급을 받는데, 이때 현실과 똑같이 소득세, 건강보험료 등이 원천징수되지요.

아이들은 이렇게 번 돈으로 ‘일기 면제권’이나 앉고 싶은 자리 등을 살 수 있습니다. 예금에 가입하거나 주식 투자를 할 수도 있습니다. 교실에서 생활하면서 실물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자연스레 습득하는 겁니다. 얼마나 ‘리얼’한지, 최근엔 실제와 똑같이 국채 발행을 통해 재난지원금도 받았다고 해요. 조 양은 “지금까지 교과서로만 배웠던 것을 직접 실천해보니 이해가 잘 되고 정치, 경제에 관심이 더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22살 할머니"도 참여하고 싶은 초등 교실

부산 송수초등학교 옥효진(31) 선생님 반은 '미소'라는 가상의 화폐 단위를 활용해 '학급화폐 활동'을 한다. [유튜브 '세금내는아이들' 캡처]

부산 송수초등학교 옥효진(31) 선생님 반은 '미소'라는 가상의 화폐 단위를 활용해 '학급화폐 활동'을 한다. [유튜브 '세금내는아이들' 캡처]

부산 송수초등학교 옥효진(31) 선생님 반 학생들은 교실에서 직업을 갖고 '미소'라는 가상의 화폐 단위로 봉급도 받는다. [유튜브 '세금내는아이들' 캡처]

부산 송수초등학교 옥효진(31) 선생님 반 학생들은 교실에서 직업을 갖고 '미소'라는 가상의 화폐 단위로 봉급도 받는다. [유튜브 '세금내는아이들' 캡처]

학교 안 금융경제 교육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송수초 옥효진(31) 선생님이 설계한 초등학교의 한 교실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옥 선생님은 지난 2월 ‘세금 내는 아이들’이란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이곳에 지난해 담임을 맡은 반에서 처음 시작한 ‘학급화폐 활동’을 영상에 담아 올렸습니다. 지금까지 38개 영상이 올라왔는데 많게는 40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큰 화제가 됐습니다. 스스로 금융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어른들은 “22살 할머니도 이거 하고 싶다”, “난 20살인데도 경제 개념이 하나도 없는데, 저 반 친구들 진짜 부럽다”, “이런 선생님한테 배웠으면 나도 경제 만점 받았겠다”와 같은 댓글을 쏟아냈습니다.

부산에서 만난 옥 선생님은 학급화폐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자신이 돈 관리법을 몰라 막막했던 경험을 꼽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경제를 선택 과목으로 공부했지만, 사회에 나왔을 때 예금과 적금 차이도 모를 정도로 돈에 관한 지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제야 생각해보니 경제활동을 가르쳐주는 곳이 아무 데도 없더라”며 “그렇다면 내가 우리 반 아이들한테 한 번 가르쳐보자 싶어서 이런 교육방법을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실시한 ‘금융교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 중 금융에 대해 가르치는 시간은 1년에 평균 8.9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국민 10명 중 9명(조사대상 1002명 가운데 92.4%)은 금융교육 수강 경험이 없었습니다. 옥 선생님은 “교과서에는 이론만 있고, 금융단체에서 나와서 해주는 교육은 일부 학교에서만, 일회성으로 진행된다”며 “이런 교육으로는 아이들이 경제를 경험으로 알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삶의 위기를 초래하는 금융지식 부족

문제는 이런 부실한 금융교육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도 못 미치는 금융이해력 점수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한국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2018년 기준 62.2점으로 OECD 평균(2015년, 64.9점)보다 낮았습니다.

금융이해도가 낮은 개인들은 금융위기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카드 사태, 그리고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우리나라 자살자 수가 급증했다”며 “최근의 동학개미운동도 아직은 괜찮아 보이지만, 위기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위험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옥 선생님의 유튜브 영상에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금융지식을 모르면 생존을 위협받는데, 이 친구들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 행운이다”와 같은 댓글이 달리는 이유입니다.

너무 돈만 밝히게 하는 교육?

물론 옥 선생님의 교육방식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돈만 밝히게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입니다. 이에 대해 옥 선생님은 “돈을 우선시하게 되는 부작용을 줄이고자 최대한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교육방법을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담임으로서 기본 교육과정을 소화하기도 바쁜 하루하루. 옥 선생님은 어떻게 아이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실제 경제와 비슷하게 작동하는 학급 활동을 개발했을까요? 또 이런 교육을 직접 받고 있는 아이들은 과연 어른들이 보내는 '부러운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화제의 금융 교육 사례를 영상에서 만나보세요.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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