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8일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가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 윤 총장이 다소 긴장한 얼굴로 입장하자 몇몇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번졌고,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표정은 급격히 굳었다. 선서를 한 윤 총장은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강자 앞에 엎드리지 않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윤 총장은 박근혜, 이명박 정권 등을 수사하며 적폐 청산의 아이콘이었다. 아직 조국 전 법무부장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현 정권을 향해 칼을 꺼내기 전이었다. 윤 총장에 대한 여야의 태도는 지금과는 180도 달랐다. 12시간 동안 이어진 청문회 내내 민주당은 ‘윤석열 지키기’에 나섰고, 한국당은 공세를 펼쳤다.
가장 먼저 질의를 시작한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라더니 야당은 국민도 아니냐”고 했다. 이어 이은재 의원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더니, 결국 권력에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고, 장제원 의원은 “정치 보복 수사의 중심에 선 윤석열”이라고 질타했다.
반면 민주당은 엄호에 나섰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윤 후보자 지명은 정권에 따라 유불리를 가리지 않고 검사의 소신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해왔던 것들이 가장 큰 동력”이라고 했다. 이철희 당시 민주당 의원도 “우리 윤석열 후보자가 된 건, 될만한 사람이 지명됐다고 생각한다”며 “윤 후보자의 얘기도 저는 상당히 공감됐다”고 거들었다. 박지원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도 “윤 후보의 정의로운 발언이 촛불혁명을 가져왔고,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고 윤 총장을 극찬했다.
김종민 의원은 아예 ‘윤석열 명언록’을 화면에 띄우고 윤 총장을 추켜세웠다. 김 의원은 “‘법에 어긋나는 지시를 어떻게 수용하느냐’는 윤 후보자의 말이 인상에 남는다”며 “사람이나 조직에 충성하는 게 아니고 법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감정 섞인 발언도 오갔다.
장제원 “민주당 위원님들 오늘 작정하신 것 같아요. 윤석열 감싸기, 윤석열 짝사랑이 정말 눈물겨워서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너도 나도 윤 후보자에게 충성 경쟁을 벌이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김종민 (장 의원을 향해) “뭐하는 거야 지금!”
청문회 중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겨냥한 검찰의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 얘기가 나오자 언성은 한층 높아졌다. 가운데에 앉은 윤 총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김진태 의원이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변창훈 검사,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을 언급하자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종민 “사죄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해야지! 그 사람들 다 이명박 정권이 죽인 거고 박근혜 정권이 죽인 거라고. 그게 무슨 윤석열이 죽인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장제원“김종민 위원! 가만히 있어 그냥!”
청문회에선 윤 총장의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 개입 의혹을 놓고도 공방이 벌어졌다. 이날 윤 총장은 관련 의혹을 6차례나 부인했는데, 김진태 의원이 ‘뉴스타파’에 보도된 윤 총장의 육성을 틀자 청문회장이 술렁였다.
오신환 “오늘 말하신 모든 게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소개가 아니면 뭡니까”
백혜련 “직무상 관련된 게 아니지….”
오신환 “가만히들좀 계세요. 너무들 하십니다 진짜.”
김종민 “우리끼리 얘기도 못해요?”
청문회 백미는 막바지 표창원 의원의 질의였다. 표 의원은 “민주당 의원이건 또는 청와대 수석이건 장·차관이건 누구든…”이라며 “총장으로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임명권자 눈치 보지 않고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 거지요?”라고 물었다. 윤 총장은 이 질문에 “네”라고 짧게 답했다.
청문회가 끝난 뒤 여당은 “일부 문제제기에도 검찰 수장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로 거듭날 적임자임을 보여줬다”(이인영 원내대표)고 극찬했다. 반면 야당은 “청문회는 온종일 국민이 우롱당한 거짓말 잔치였고, 윤 총장이 책임져야한다”(나경원 원내대표)라고 했다.
결국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의 임명 재가를 거쳐 그해 7월 25일 임기를 시작했다. 조국 전 장관 수사 등을 기점으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권 인사들로부터 ‘결단’ 압박을 받는 윤 총장은 22일 뒤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