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전반기 원(院) 구성 협상에서 벌어진 법제사법위원장 쟁탈전의 승자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다. 미래통합당의 집요한 요구에도 법사위원장을 여당 몫으로 가져왔다. “야당이 법사위 기능을 법안 발목잡기에 악용하니 이번엔 여당이 맡아서 이 관행을 끊어버리겠다”고 ‘판단’한 그는 일관되게 ‘여당 법사위원장’을 전제로 협상을 ‘추진’했고, 결국 “집권여당으로서 책임국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킬 시간이 왔다”며 단독 개원을 ‘결단’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단의 한 의원은 “이 같은 판단력·추진력·결단력이 김 원내대표의 특장점”이라고 말했다. “가야 할 길을 정했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 어떻게든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김 원내대표 자신도 취임 이튿날인 지난달 8일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전 화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야당도 화끈했으면 좋겠다”면서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 초기 당 정책위의장과 국정기획자문위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쌓은 정책 추진력을 원내대표 임기 초반에 보여주려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원내대표 취임 후 공식 석상에서 그가 많이 쓴 단어는 ‘일’(175회)이다.
그렇다고 속전속결을 택하진 않았다. 여당 입장에선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신속 처리가 급선무였지만, 그는 명분부터 찾았다. 지난 15일 단독으로 법사위를 포함한 6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기 전 수차례 심야 회동을 한 것도, 주 원내대표가 사찰을 떠돌며 잠행 중일 때 강원도 고성까지 달려간 것도 그래서다. 당내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한 4선 의원은 “사실 지난주 원 구성을 마칠 수 있었는데 주말 동안 시간을 갖고 잠정 합의안까지 마련하려 한 건 김 원내대표가 굉장히 잘한 것”이라며 “한 주 참으면서 '통합당이 스스로 합의를 포기했다'는 명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이런 ‘김태년 리더십’에 대해 “판단에 미스(miss)가 있어도 한번 결정한 건 끝까지 추진하고, 생각을 바꾸는 일도 거의 없다”(민주당 소속 보좌진)고 비판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초반에 법사위를 놓고 워낙 세게 드라이브를 건 것부터가 문제였다. 시작부터 퇴로를 닫아버려 야당에 법사위를 양보하면 원내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와 ‘사찰 회동’ 때도 그의 손에는 법사위 관련 양보안은 없었다. 당시 주 원내대표는 김 원내대표 일행이 떠나자마자 통합당 핵심관계자에게 “새로운 제안은 없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민주당이 정보위를 제외한 국회 상임위원장 17석을 독식한 지난 29일 한 민주당 당직자는 “김 원내대표도 지금 찝찝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7일(5월 24일~6월 29일)간의 원 구성 협상이 깨지고 상임위원장 전석(全席)을 가져가게 된 현 상황을 김 원내대표도 바람직하게 보진 않는다는 의미다. 제1야당을 원 구성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전례를 만든 건 그로서도 부담이다. 제1야당은 좋으나 싫으나 향후 국회 운영의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이 당직자는 “이번에는 코로나19라는 비상시국이 우리 편이었을 뿐, 앞으로의 국회 운영을 계속 이런 식으로 가져가다가는 어디선가 탈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의 한 3선 의원도 “우리가 야당일 때 원 구성이 80일 이상 지연되면서도 결국엔 합의하지 않았느냐”며 “김 원내대표 몸에 사리가 쌓일지언정 끝까지 야당의 도장을 받아내는 게 더 나았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