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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파멸 시작…美 에너지 독립 안긴 '셰일 선구자' 파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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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 캘리포니아의 셰일 채굴 장면. 코로나19에다 셰일 업계의 고질적 문제로 인해 셰일 혁명도 해가 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FP]

미국 캘리포니아의 셰일 채굴 장면. 코로나19에다 셰일 업계의 고질적 문제로 인해 셰일 혁명도 해가 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FP]

팬데믹에 미국 셰일산업이 본격적으로 휘청이고 있다. 미국 셰일업계 대표기업 체사피크 에너지(Chesapeake Energy)가 28일(현지시간) 텍사스 지방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미국 언론들은 체사피크의 파산신청을 셰일산업 쇠락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셰일 업계의 선구자가 쓰러졌다” (월스트리트저널)부터 “미국의 에너지업계 판도를 바꾼 회사의 종말”(뉴욕타임스) “셰일의 파멸이 주요 분기점을 지났다”(블룸버그)라는 분석이 나왔다.

체사피크의 쇠락은 줄도산의 시작일뿐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원유 컨설팅업체인 리스타드 에너지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에 머물 경우, 연내 73개가 넘는 업체가 파산할 것이며 내년엔 170개 이상의 업체가 추가로 파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유가 중 미국 서부텍사스유(WTI)는 지난 1월 배럴당 60달러대에서 추락해 마지막 거래일인 26일 현재 배럴당 38.49달러로 떨어진 상태다.

미국 오클라호마의 체사피크 에너지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오클라호마의 체사피크 에너지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시중은행은 이미 지난달 셰일 관련 기업들에 투자한 자산을 회수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업체들은 이에 따라 38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 상각을 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이동 제한 등으로 수요가 떨어진 것 등이 결정타였다.

셰일(shale) 가스와 오일은 미국이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텍사스ㆍ오클라호마 등 미국 전역의 셰일가스 매장량은 개발 초기인 2004년께 파악된 것만 24조㎥로, 중국과 세계 1~2위를 다툰다. 시추하는 게 어려워 개발 채산성이 낮은 게 셰일의 문제였다. 퇴적암층인 셰일이 넓고 얇게 분포돼있기 때문에 기존의 시추법으로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사로 나선 게 체사피크 에너지였다. 체사피크는 물ㆍ모래 등을 혼합한 물질을 고압으로 분사해 바위를 뚫는 프랙킹(frackingㆍ수압파쇄) 공법을 도입해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미국 캘리포니아 셰일 원전의 프랙킹 공법 장비 중 일부. [AP=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셰일 원전의 프랙킹 공법 장비 중 일부. [AP=연합뉴스]

그렇게 시작된 셰일 에너지 개발 붐은 미국에 에너지 독립을 가져다줬고, 국제지정학의 판도까지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동에서 원유를 안정적으로 수입해야 하기에 국제질서 관리에 민감했던 미국이 더 이상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를 쓴 국제지정학 전문가 피터 자이한은 지난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셰일 덕에 에너지 자급 꿈을 이룬 미국은 이제 세계 질서 유지에 관심이 없으며, 한국 등 미국의 동맹은 각자도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사피크는 이런 흐름에 힘입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도 했다. 2008년 7월11일 1만2704달러의 고점을 찍은 체사피크 주식은 마지막 거래일인 26일 11.85달러로 폭락한 상태다.

체사피크 에너지의 전 CEO 오브리 맥클렌던(왼쪽). 가격 담합 혐의로 기소된 다음날 차사고(오른쪽)로 사망했다. [데일리메일 캡처]

체사피크 에너지의 전 CEO 오브리 맥클렌던(왼쪽). 가격 담합 혐의로 기소된 다음날 차사고(오른쪽)로 사망했다. [데일리메일 캡처]

셰일혁명은 그러나 지난 수년간 내부에서부터 흔들렸다. 체사피크의 과욕이 자승자박을 불렀다. 체사피크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오브리 맥클렌던은 사업 확장을 위해 토지와 장비를 공격적으로 임대 및 구매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부채가 쌓였고,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미 막대한 채무에 시달렸다. 맥클렌던은 채무에 대한 책임으로 2013년 축출됐고, 2016년엔 가격 담합 혐의로 기소됐다. 기소 바로 다음 날 교통사고로 5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체사피크엔 90억 달러 이상의 부채가 있으며 이달 15일 만기였던 이자를 갚지 못할 정도로 현금도 메말랐다. 1분기 말 기준 보유 현금이 82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여기에 다음 달 1일 또 도래하는 부채 이자 상환 압박도 받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치명타를 날렸다. 체사피크의 올해 1분기 순손실 규모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100만 달러에서 급증한 83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에 체사피크는 파산 법원에 경영권은 유지하는 대신 구조조정과 함께 9억 달러 규모의 기업회생(DIPㆍDebtor-in-Posession) 대출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채권단만 10만명이 넘는데, 일단 적은 금액부터 단계적으로 상환하는 롤업(roll up) 방안을 희망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파산 법원은 채권단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해 결론을 내리게 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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