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인한 신체장애 판정 고무줄

중앙일보

입력

회사원 K씨(36.서울 상계동) 는 최근 신호대기 중 잠깐 부주의로 앞차를 살짝 추돌했다.

워낙 경미한 사고인데다 종합보험에 가입했으므로 큰 문제가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피해자는 '목뼈 염좌(삠) 로 인한 한시장애 1년' 이란 의사의 진단서를 보내면서 50만원의 물리치료비를 요구했다.

현행 보상체계는 목뼈가 삐었을 때 한시장애 판정을 받게 되면 14%의 노동력 상실을 인정한다. 따라서 피해자의 월수입이 1백만원이라면 치료비 외에 1년간 1백68만원의 요양비를 내야한다.

피해자는 꾀병일 수 있다며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합의를 제시했다.

보험회사 직원도 다음 보험가입 때 보험료가 올라가므로 피해자와 합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해 K씨는 결국 30만원을 물어야했다.

무엇보다 K씨가 궁금해 하는 것은 1년 한시장애란 과중한 진단이었다.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발생하는 장애에 대해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보상체계가 마련돼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대한척추외과학회에서 충북대병원 정형외과 김용민 교수는 "현행 장애판정기준이 낡고 모호해 목소리 큰 사람이 유리한 상황" 이라고 밝혔다.

교통사고시 보상 기준이 되는 맥브라이드식 등급표가 63년 제정된 것이어서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 예컨대 대퇴골 골절의 경우 과거 다리를 걸어 매달아 올리고 핀을 박아 견인하는 구식치료를 받는데 4~6개월이 걸렸지만 최근 금속정 고정수술을 받게 되면 1주 이내 관절운동이 가능해진다.

척추질환의 경우 천편일률적으로 각도를 재는 방식을 인정하는 것도 문제다.

피해자가 통증을 호소하며 앞이나 옆으로 허리를 구부리는 동작을 거부할 경우 실제 손상보다 과대포장될 개연성이 있는 것. 10도만 덜 굽혀도 수백만원의 보상금이 추가된다.

가장 큰 문제는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염좌. 추돌사고시 흔히 발생하는 염좌는 근육과 인대가 늘어나 통증이 생기는 경우로 엑스선이나 MRI 등 검사를 동원해도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다.

보상금을 목적으로 통증을 가장하면 이를 가려내기 쉽지 않다.

삼성화재 보상담당 이수재씨는 "증상의 과대포장 등 보험사기건수가 97년 1천9백여건에서 99년 3천8백여건으로 늘어나 보상액이 2백53억원에서 4백42억원으로 2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가 의심되는 증거는 염좌를 당하는 부위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의 경우 교통사고시 목뼈염좌가 89%, 허리염좌 11%로 목뼈염좌가 훨씬 많은 반면 우리는 목뼈염좌가 65%, 허리염좌가 35%로 일본에 비해 허리염좌 비율이 4배나 많다.

이는 목뼈염좌의 경우 14%밖에 노동력 손실을 인정받지 못하는 반면 허리염좌는 24%의 노동력 손실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디스크도 문제다. 김용민 교수는 "30대 이상이면 대부분 디스크에서 퇴행성 변화가 일어나 증상은 없지만 MRI 등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나타나게 마련" 이라며 "이 경우 튀어나온 디스크가 반드시 사고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고 말했다.

의사마다 기준이 들쭉날쭉한 것도 문제. 염좌라도 의사에 따라 한시장애 판정이 6개월에서 7년까지 다양하게 나온다는 것.

이 때문에 가급적 자신에게 유리한 판정을 받기 위해 병원을 옮겨다니는 피해자가 많다.

가천의대 중앙길병원 정신과 함봉진 교수는 "보상성 신경증이란 질환이 따로 있을 정도로 피해자 중 상당수가 증상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선의의 피해자도 있을 수 있다. 낮은합동법률사무소 전현희 변호사는 "실제 통증을 호소하지만 염좌나 디스크의 경우 보험회사에서 보상을 해주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고 밝혔다.

결론은 사고시 객관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 현재 장애진단은 의사면 누구나 내릴 수 있게 되어 있어 전문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전변호사는 "보상금을 노린 꾀병을 가려낼 수 있도록 낡은 판정기준을 개선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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