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홍콩사태 반사이익? “사실상 불가능”…헛도는 ‘금융허브’ 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운열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전 의원은 이들에게 ‘홍콩 시위가 격화돼 홍콩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으니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홍콩에 있는 외국계 금융사를 서울에 유치하자’는 제안을 했다. 최 전 의원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외국 금융기관 유치에 나서도 모자란 형국인데, 1년이 넘도록 아직 정부나 서울시 등으로부터 별다른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콩 중심지에 있는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오른쪽) 아시아 본사 건물과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중심지에 있는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오른쪽) 아시아 본사 건물과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국가보안법 등으로 흔들리고 있는 금융허브 홍콩의 지위를 노린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은 정부가 나서 홍콩에 소재한 헤지펀드 경영진과 물밑 접촉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도 홍콩에서 이탈한 자금을 흡수하며 수혜를 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같은 각축전에서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52시간 등 규제에 외국 기관 ‘절레절레’

기획재정부는 최근 홍콩 사태 장기화를 동북아 금융허브 재추진 기회로 보고 한국에 진출한 금융사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했다 계획을 접기로 했다. 수요 조사에 응한 외국계 금융사 모두 부정적인 회신을 하면서다. 정부 관계자는 “외국계 금융사들이 주52시간을 지키며 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했다”고 말했다.

세계 도시 금융경쟁력 순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세계 도시 금융경쟁력 순위.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주52시간제 외에 세제나 규제 등 걸림돌이 많다. 법인세만 보더라도 한국은 최고세율이 25%로 싱가포르(17%), 홍콩(16.5%)보다 높다. 그나마 위안은 일본 법인세율(최고 30.62%)은 우리보다 더 높다는 점이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외국 금융사들에게 한국은 금융당국이 금융에 대해 너무 많은 규제와 간섭을 하는 국가로 인식돼 있다”며 “금융 상품을 출시하려해도 일일이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혁신적인 규제 완화 없이는 금융중심지는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 주저하는 데는 중국과의 관계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나 서울시도 헥시트(HK-exit, 홍콩에서 해외로 자본과 인력이 이탈하는 현상) 대응을 위해 물밑에서 움직이지만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공격적으로는 나서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공공 금융기관 갈라먹기 논쟁만    

규제 개혁 등을 논의를 이끌어야 할 정치권은 금융기관 갈라먹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전북 전주에서 공약한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전주 출신 의원들은 지정 필요성을, 부산 출신 의원들은 지정 반대를 외치며 시간을 보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조배숙 원내대표, 박주현 최고위원 등 전북 지역 의원들이 지난해 11월 '금융중심지 재지정 촉구 결의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조배숙 원내대표, 박주현 최고위원 등 전북 지역 의원들이 지난해 11월 '금융중심지 재지정 촉구 결의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현재도 정치권에서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지방이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20대 국회 때 정무위에서 활동했던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금융중심지 전략을 생각하다보니, 지역구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에 도로를 놓는 수준으로 금융기관을 끌어올 생각만 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에도 뒷걸음치는 금융경쟁력

국내 진출 외국계 금융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내 진출 외국계 금융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며 한국의 금융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국내 진입한 외국계 금융회사는 2016년 168개에서 2020년 162개로 줄어들었다. 남은 외국계 자산운용사 등도 운용인력을 줄이는 추세다.

영국의 글로벌 금융컨설팅그룹 지옌(Z/Yen)이 세계 108개 도시의 금융 경쟁력을 산정해 낸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서울의 순위는 2015년 6위에서 2020년 3월 33위로 떨어졌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해 10월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금융중심지 정책 추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성과를 도출하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떨어지는 서울 경쟁력.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떨어지는 서울 경쟁력.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출신인 최운열 전 의원은 “전통 제조업이 경쟁력이 떨어지고 새로운 산업이 없어 먹거리가 없다는 생각에 이미 들어온 금융기관들도 떠나는 것”이라며 “금융 뿐 아니라 산업 전반적인 규제 혁파를 통해 기업 투자를 활발히 이뤄지게 하는 것이 금융중심지로 나가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장범식 숭실대 경영학 교수는 “한국이 헥시트의 수혜를 보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외국계 금융기관이 호소하는 규제 완화나 세제 인하 등의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조현숙 기자 hyoza@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