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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유난스럽게 깔끔 떨자, 가족 지킨다는 마음으로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45)

전 세계가 코로나 사태로 휘청대고 있다. 장기전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의 치료 약이 없는 지금 '최대의 방어는 걸리지 않는 것'이고,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쯤이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진 Pixabay]

전 세계가 코로나 사태로 휘청대고 있다. 장기전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의 치료 약이 없는 지금 '최대의 방어는 걸리지 않는 것'이고,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쯤이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진 Pixabay]

 

일본에서 살면서 거부감을 느끼던 일이 있었다.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질 정도로 청결에 신경을 쓰는 점이다. 아이를 키울 때 특히 그랬다. 나는 "애들을 무균실에서 키우려 드는 거 같다"라고 비판했었다. 위생관리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 깨끗하면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식당에서 아이가 접시 밖으로 음식을 떨어뜨려 주워 먹으려 하면 엄마가 재빠르게 차단한다. "더러우니까 먹지 마!" 물론 자기 집이 아닌 식당이니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 긴박감은 좀 지나치게 느껴졌다. 오죽하면 '3초 룰'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식탁에 떨어진 음식을 3초 안에 집어 먹으면 괜찮다는 뜻이다.

큰 접시에 나온 요리를 덜어 먹을 때는 꼭 다른 젓가락이나 주걱을 쓴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자기가 먹던 젓가락으로 음식을 뜨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만약 큰 접시에 젓가락이나 주걱이 없을 때는 자기가 쓰던 젓가락을 뒤집어서 입에 닿지 않았던 부분으로 음식을 던다. 이에 대해서는 손이 닿았던 곳이 더 더럽다는 의견도 있으나 습관인지라 다들 젓가락을 뒤집어서 음식을 덜어간다. 간혹 '아주 아주 많이' 친한 사이에서는 자기 젓가락으로 그냥 뜨자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전용 젓가락이나 주걱을 쓴다. 나는 이 문화에 익숙해질 때까지 여러 번 '미안하다'라고 말해왔다. 몸에 배어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그리고 외출을 줄이는 등의 코로나 예방법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꽃가루 알레르기와 독감으로 마스크에 익숙한 나라이니 괜찮겠네.‘
'결벽증처럼 소독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니 가볍게 지나가겠네.‘
'일본은 개인주의 덕을 좀 보겠네.'라고.

물론 일본도 코로나 사태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정부의 미숙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큰 혼란 없이 견디고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자발적인 노력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월 3일 요코하마 항에 정박한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Diamond Princess) 호'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위기감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외국에서 걸려서 취항한 환자들이었다. '남의 일'이었다. 사스도 메르스도 경험하지 않은 일본 정부의 판단은 안이하고 미숙했다. 경험 많은 자연재해와 달리 바이러스 관계는 약했다. 지진이나 태풍 피해에 대해서는 신속한 정부인데 "이번에는 왜 저러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대응이 늦었다.

홋카이도 스즈키 나오미치 지사. 만 39세. 일본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사태에 대책을 발표한 지사. 유바리 시장을 거쳐, 2019년 홋카이도 지사에 당선 취임했다. [사진 연합뉴스]

홋카이도 스즈키 나오미치 지사. 만 39세. 일본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사태에 대책을 발표한 지사. 유바리 시장을 거쳐, 2019년 홋카이도 지사에 당선 취임했다. [사진 연합뉴스]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수장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홋카이도의 스즈키 나오미치(鈴木直道. 1981년생) 지사는 만 39세. 오사카의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1975년생) 지사는 만 45세. 젊다. 2019년 4월에 취임한 이들은 취임 후 1년도 되기 전에 코로나 사태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들은 빠르게 대처해 나갔다. 홋카이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책을 발표했다. 2월 28일 '긴급사태 선언' '공립 초중학교 휴교 요청'. 그리고 잠잠해질 즈음 '제2파'에 대비해 나갔다.

오사카도 '오사카 모델'이라는 대책을 발표하고 빠르게 대처해 나갔다. '주민의 생명과 생활'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기울이고 있다. 오사카 지사는 뉴스에서 안 보는 날이 없을 정도이다.

오사카 요시무라 히로후미 지사. 만 45세. 코로나 사태에 ‘오사카 모델’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 2019년 오사카 지사 취임. [사진 지지통신]

오사카 요시무라 히로후미 지사. 만 45세. 코로나 사태에 ‘오사카 모델’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 2019년 오사카 지사 취임. [사진 지지통신]

개인적으로, 위기 상황에서는 경험 많은 노련한 정치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선입관은 통쾌하게 부서졌다. 그래서 안심이 되고 기쁘다. 처음으로 당선된 젊은 지사들이 최선의 노력과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세습 정치가가 많은 일본의 정치계, 긴 경력을 자랑하는 정치가들이 거들먹거리는 정치계에, 젊고 유능한 정치가가 등장했다. 나는 슬쩍 한일관계도 젊은이들에게 맡기는 것이 잘 풀릴 거라는 희망을 걸어 본다. 아무런 선입관 없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에 집중하고 행동하는 젊은 이성과 추진력을 믿어도 된다는 확신이 섰다.

도쿄의 긴급사태 선언이 해제되고 오래간만에 친구가 경영하는 가게에 몇 명이 모였다. 워낙 화통한 친구들이어서 우리는 자기 젓가락으로 그냥 떠서 먹는 사이였다. 그런데 일본인의 습관을 극성스럽다고 여기던 내가 식사 전에 큰 접시에 쓸 젓가락을 찾고 있었다. 친구들이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나는 집에 고령의 시아버지도 계시니 극성떠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 사태로 휘청대고 있다. 장기전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의 치료 약이 없는 지금 '최대의 방어는 걸리지 않는 것'이고,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쯤이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가 걸릴 것을 우려하는 자세를 넘어 '증상은 없지만 내가 걸렸을지도 모른다'라는 각오로 생활해야 한다. 공공기관이나 병원에 의존하기 전에 나와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각오. 만에 하나 내가 남에게 전염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각오. '우리끼리 왜 그래?'가 아니다. 그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코로나 치료 약이 나올 때까지는 깔끔 좀 떨자.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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