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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규제 10년…효과 없고 시장만 교란” 상의포럼서 나온 비판

중앙일보

입력

이마트(왼쪽)와 롯데마트. 사진 각 업체

이마트(왼쪽)와 롯데마트. 사진 각 업체

유통업 규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무용론’ 쪽으로 기울고 있다. 달라진 산업과 소비행태에 더 이상 맞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키고 있다는 게 경험과 수치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비대면 유통’ 시대 이미 도래  

대한상공회의소는 24일 오후 ‘유통 법·제도 혁신 포럼’을 개최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소비 트렌드 변화와 유통산업 전망을 논의했다.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소비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기업 컨설팅업체인 AT커니코리아 대표를 지낸 심태호 LPK로보틱스 대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소비하는 홈 이코노미 등 비대면(언택트) 소비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는 한편, 안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소비 패러다임이 변화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하면서 가상현실, 실시간 동영상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 키오스크, 드라이브 스루 등 언택트 리테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트 규제했지만 전통시장 안 살아나

특히 이날 포럼에선 국내 유통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적인 비판들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유통 규제는 2012년부터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이다. 대형마트가 월 2회 의무적으로 휴업하게 하고, 영업시간도 제한했다. 특히 대형 오프라인 업체들은 자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사업에도 의무휴업일 규제를 적용받는다. 앞서 2010년엔 전통시장 인근에 대형마트를 낼 수 없는 출점 제한 규제도 도입됐다.

하지만 규제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상의가 대형마트 영업일 규제가 시행된 2012년과 8년이 지난 2019년의 업태별 소매업 매출액 변화를 분석해보니 전체 매출액은 43.3% 늘어났다. 하지만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도입된 규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 등을 포함한 전문소매점’의 매출액은 28%만 증가해 전체 매출액 증가율보다 낮았다. 반면 대형마트는 8년간 매출 증가율이 –14%로 소매업태 중 유일하게 역성장했다.

“마트 온라인몰 영업규제라도 풀어야” 

안승호 숭실대 교수는 “현행 유통규제는 정량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목표가 없이 도입됐다는 문제점이 있고 그간의 효과도 전혀 실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 19 위기 속에서 지방 소도시의 거주민이 인근 대형마트를 통해 지역의 먹거리를 안심하고 배송받을 수 있도록 대형마트의 온라인 영업규제만이라도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통 법 제도 혁신 포럼'에서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의

'유통 법 제도 혁신 포럼'에서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의

21대 국회, 규제 5년 연장 등 법안 발의  

업계와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통 규제는 더욱 강화할 조짐을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유통업계는 폐점 등 구조조정이 진행될 만큼 위기를 맞고 있지만, 21대 국회는 규제 연장 등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속속 발의하고 있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발의한 개정안에는 대규모 점포 출점제한 강화 방안이 담겼다. 같은 당 이장섭 의원은 올해로 효력이 만료되는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관련 규제를 앞으로 5년간 더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놓았다. 임영균 광운대 교수는 “유통규제 일몰기한 연장 문제도 유통규제의 효과성 사후평가가 전제돼야 하고, 연장 기간도 최소화돼야 하는데 최소한의 평가도 없이 5년 연장으로 입법이 추진된 것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유통산업 규제의 배경은 경제 민주화라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발생한 것”이라며 “급변하고 있는 유통산업 환경에서 대형마트를 규제하니 ‘식자재 마트’라는 또 다른 포식자가 나타나 시장경쟁 질서만 어지럽히고, 동시에 전통시장 상인들과 골목상권의 영세 소상공인들을 또 한 번 울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상공인 세액공제, 임대차보호 강화 제안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도 다뤄졌다. 소상공인의 경우 가장 큰 애로사항이 임차료·인건비·수수료 등 각종 비용부담 증가와 상권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점에서 ▶상점가 육성에 따른 세액공제 확대와 ▶영세 상공인들을 위한 맞춤형 임대차보호법 강화 방안이 제시됐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코로나19 위기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있는 가운데 유통산업이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과거 유통질서의 유산인 유통규제를 혁신하고,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전환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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