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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전야의 뉴욕증시…증시 하락에 베팅하는 월스트리트 큰손들

중앙일보

입력

뉴욕 선물시장에서 큰손들의 포지션은 종종 증시 방향을 정확히 적중시켰다. 2009년 3월 롱 포지션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후 뉴욕증시는 10년 이상 장기 강세장을 연출했다. 최근 숏 베팅에 시장의 관심이 모인 것도 이 때문이다. [AP=연합뉴스]

뉴욕 선물시장에서 큰손들의 포지션은 종종 증시 방향을 정확히 적중시켰다. 2009년 3월 롱 포지션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후 뉴욕증시는 10년 이상 장기 강세장을 연출했다. 최근 숏 베팅에 시장의 관심이 모인 것도 이 때문이다. [AP=연합뉴스]

뉴욕 증시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급증했다. 특히 ‘큰 손’ 기관 투자자를 중심으로 증시 비관론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반면, 미국판 ‘동학 개미’로 불리는 ‘로빈 후드’의 투자 열기는 여전히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어 시장의 우려가 나온다.

월가 헤지펀드 "이제 공매도로 갈아탈 시점" #3월 말 저점 이후 다우지수 40% 넘게 폭등 #달리오 "뉴욕 증시 잃어버린 10년 맞을 것" #미국판 동학 개미 '로빈 후드' 매수세 지속 #"시장에 밀레니얼 세대의 투기가 판을 친다"

23일(현지 시간)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S&P500 선물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계약 건수)은 30만3000건을 기록, 2011년 이후로 가장 많다. 공매도는 말 그대로 ‘없는 것을 판다’는 뜻으로,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더 싼값에 매도 주문을 내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하는 투자 전략이다.

최근 공매도 매수는 기관 투자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뉴욕 증시가 3월 23일 저점 이후로 3개월간 약 40% 폭등하자 강한 경계감을 드러내고 있다. 뉴욕 증시가 1999년 닷컴 버블, 2008년 금융위기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S&P500지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S&P500지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투자자문사 블리클리의 피터 부크바 최고투자전략가는 CNBC와 인터뷰에서 “4월 이후 누적된 공매도 매수세는 역발상 투자 전략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며 “증시 상황은 2007년 10월 정점을 찍고 하락 반전하기 전인 9월과 흡사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특히 헤지펀드 업계에서 증시에 대한 경고음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릿지워터 레이 달리오 최고경영자(CEO) 증시가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그는 이달 고객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 세계적인 전염병 유행 여파 때문에 글로벌 기업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공급망을 이중으로 만드는 등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많은 다국적 기업이 파산하거나 주가 하락에 시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소액 투자 애플리케이션 ‘로빈 후드’를 활용해 증시에 뛰어든 미국 개인 투자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급락한 항공·여행주 위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골드만 삭스는 보고서에서 "경제 펀더멘털이 강한 회복을 보일 경우 주가 상승에 버팀목이 될 수 있겠지만 한계 수위까지 치솟은 밸류에이션이 추가 상승을 제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AP=연합뉴스]

골드만 삭스는 보고서에서 "경제 펀더멘털이 강한 회복을 보일 경우 주가 상승에 버팀목이 될 수 있겠지만 한계 수위까지 치솟은 밸류에이션이 추가 상승을 제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AP=연합뉴스]

이에 대해 미국 헤지펀드 크레스캣캐피털의 수석 투자책임자(CIO) 케빈 스미스는 “시장에 투기가 판을 친다”며 “이를 부추기는 건 밀레니얼 세대(1980~90년대 출생) 단타 투자자들”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터무니없는 희망이 가득한 증시는 늘 끝이 좋지 않았다”며 “경기 하강 주기가 머지않았다”고 전했다. 억만장자 투자자 레온 쿠퍼맨도 “개인 투자자들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월가 펀드매니저 가운데 80%는 뉴욕증시가 고평가돼 있다고 진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BoA가 설문을 시작한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그만큼 월가에서는 실물경제를 앞지르는 증시 랠리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미국 경제가 조금씩 회복의 신호를 보내는 점은 긍정적이다. 23일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미국의 제조업과 서비스업 경기를 동시에 보여주는 복합 PMI(구매관리자지수)는 이달 46.8로 지난달(37.0) 대비 9.8포인트 급등했다. 미국의 신규 주택 거래도 예상 밖으로 급증했다. 미 상무부는 이날 지난 5월 미국의 신규주택 판매 건수는 전월 대비 16.6% 늘어난 연율 67만6000채(계절조정치)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당초 마켓워치가 집계한 시장 예상치인 65만채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지난해 5월과 비교하면 12.7% 증가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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