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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규직화한다고 청년의 공정한 기회 박탈해선 안 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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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검색요원 정규직화를 철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이틀 사이 6개나 올라왔다. 그중 ‘공사에 들어오려고 스펙 쌓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무슨 죄냐,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는 게 평등이냐’는 내용의 글에는 10만 명 가까운 이들이 동의했다. 앞서 21일 공항공사는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청원경찰 형태로 정규직화한다고 발표했다. 1400여 명인 현재의 정직원보다 많은 숫자다. 그러자 SNS에는 “개꿀이다” “알바하다 정규직됐다”처럼 자축하는 글과 “열심히 준비한 사람은 뭐가 되냐”는 성토의 목소리가 혼재했다.

공항공사는 ‘비정규직 제로(zero)’ 정책의 상징과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사흘 만에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정일영 당시 공항공사 사장은 즉석에서 “금년 내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윗분들의 호언만큼 정규직 전환은 쉽지 않았다. 공항공사는 3년의 긴 논의 끝에 지난 4월 자회사 소속의 고용 방침을 정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5월 청와대 회의 후 기류가 바뀌었다고 한다. 대통령까지 직접 챙긴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용두사미로 끝나선 안 됐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은 고용의 질과 안정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회를 뺏는 형태여선 안 된다. 특히 청년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무리한 정규직 전환은 신규 진입을 막을 수 있다. 가뜩이나 공항공사는 팬데믹 상황으로 사상 첫 적자가 예상된다. 대규모 정규직 전환이 인건비 부담을 늘려 신규 채용을 힘들게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정의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다. 국민청원에 올라온 수많은 목소리처럼 청년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정규직화가 실력이 아닌 운에 따른 로또처럼 여겨진다면 어느 누가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겠는가. 특히 정권의 치적을 앞세우기 위해 합리적인 절차까지 무시한다면, 이제 누구도 대통령의 정의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정규직 전환을 시도한 다른 공기업들도 잡음이 많았다. 서울교통공사는 정규직 전환자의 14.9%가 기존 재직자의 4촌 이내 친·인척으로 드러나 ‘고용세습’ 논란을 빚었다. 부채만 28조원인 한국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6500여 명을 정규직화하면서 연간 600억원의 인건비가 더 들게 됐다.

공항공사 구본환 사장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정규직 전환을 진행하되, 대상과 범위 선정에 있어서는 역차별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긴밀히 신경써야 한다. 대통령 앞에서 ‘금년 내 1만 명 정규직 전환’과 같은 무책임한 발언을 해놓고 여당 국회의원이 된 전임 사장과 같은 전철은 밟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