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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정규직 된 직원 "졸지에 서울대급 됐네ㅋ 소리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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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공사. 연합뉴스

평균 연봉 9000만원 이상인 금융권 회사에 다니는 30대 초반 직장인 A씨는 입사 후에도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취업 문을 꾸준히 두드려왔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나온 A씨는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도 할 줄 안다. A씨는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취업준비생(취준생)에게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이라며 “스펙을 쌓으며 늦깎이 입사를 꿈꿔왔는데 여객보안검색 직원 1900명 고용 소식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공사 1900명 정규직 전환…취준생 반발 

23일 인천국제공항공사 관련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하루도 안 돼 5만 명이 넘게 동의했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23일 인천국제공항공사 관련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하루도 안 돼 5만 명이 넘게 동의했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공항 보안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1900여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한 것을 놓고 대학생·취준생 사이에서 역차별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2일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3년 연속 대학생이 꼽은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1위에 오르는 등 인기 직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날 서울 지역 한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개인 노력을 무시하고 동등한 일자리를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공산주의” “첫사랑이 유린당하는 기분” “이게 나라냐. 공부 왜 하냐” “더는 국가가 개인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등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40건 이상 올라왔다.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공기업의 정규직화를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23일 올라온 청원은 이날 하루도 안 돼 5만 명 넘게 동의했다. 청원인은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 전환은 충격적”이라며 “여기 들어가려고 공부하는 취준생과 현직자는 무슨 죄냐.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게 평등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니 캡처]

[사진 온라인 커뮤니니 캡처]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들이 모여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방도 온라인에서 퍼지며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는 분위기다.

2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이 방에 있는 한 이용자는 “22세에 알바천국 통해 보안요원으로 들어와서 이번에 정규직 전환이 된다”며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 나와서 뭐하냐. 너희 5년 이상 버릴 때 나는 돈 벌면서 정규직”이라고 했다. 지난해 1월 개설됐다는 이 방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들어갈 수 있다. 이를 본 취준생 김모(29)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업이 더 힘들어진 상황에서 이런 걸 보면 허탈하다”며 “그동안 공부해왔던 게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울 유명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1년 가까이 공기업 입사를 준비해왔다.

다시 고개 든 채용 역차별 논란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해당화실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해당화실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채용 역차별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공기관·공기업의 ‘지역인재전형’, 국가직 공무원의 ‘지역인재 9급 채용 전형’도 논란 대상이다. 공공기관 지역인재전형은 해당 기관이 있는 지방대학 출신 지원자를 우대하는 전형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약 130개 공기업·공공기관에서 전체 채용 인원 중 30%를 지역인재로 뽑도록 했다. 지역인재 9급 채용 전형은 국가직 공무원 채용에서 직업계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와 전문대 졸업생을 별도로 뽑는 전형으로, 지난해 전체 선발 인원 7.1%에 해당하는 180명이 이 전형으로 채용됐다.

이런 논란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누구든 선호하는 귀한 일자리에 엄격한 채용절차를 거치지 않고 들어가는 비정규직을 보며 취업준비생은 박탈감을 느끼고, 고시 뚫듯 입사한 정규직 사원이 반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런 정책이 나온 뒤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며 “인천공항은 국민 생명과 직결된 보안요원을 직고용하는 것이다. 2018년부터 오랜 논의 끝에 나온 결정이라는 걸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책에 따라 특정 그룹에만 혜택이 돌아가면 시장원리가 무너져 특혜시비가 붙을 수밖에 없다”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곧 노동시장에 진입할 미래세대가 갈 곳을 잃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채혜선·김지아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인천공항공사, 보안검색 직원 1900명 '청원경찰'로 직접 고용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보안검색 요원 1902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청원경찰은 국가 중요시설과 사업장 경비를 담당하기 위해 배치하는 경찰로, 필요할 때 무기를 소지할 수 있다.
다만 2017년 5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선언 이후 입사한 보안요원은 서류전형과 인성검사, 필기시험, 면접 등 공개경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전체 보안검색 요원 중 30∼40%는 경쟁 채용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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