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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가 읽어주는 명작소설, 귀에 쏙~ 재미 두 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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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끄는 오디오북 

미국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 케이트 쇼팽의 단편 ‘데지레의 아기’를 녹음 중인 이영애. [사진 커뮤니케이션북스]

미국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 케이트 쇼팽의 단편 ‘데지레의 아기’를 녹음 중인 이영애. [사진 커뮤니케이션북스]

“그가 누릴 창창하고 밝은 낙원을 부숴버릴 수 없어.”

올해 오디오북 판매량 크게 늘어 #언택트시대 뉴미디어 콘텐트로 떠 #배우 여럿이 드라마처럼 낭독도 #“읽기 힘든 작품 전달력 높아져”

태국 작가 멈짜오 아깟담끙 라피팟의 소설 ‘사춘기’의 일부다. 연하남의 구애를 에둘러 거절하는 배우 전미도의 절제된 낭독에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송화가 겹쳐져 짠해진다. 그뿐만 아니다. 이영애·정우성·황정민·정경호 등 인기 배우들이 개성 가득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세계적 작가들의 명문장에 귀가 호사롭다. 7월 마무리되는 『100인의 배우, 세계 문학을 읽다』 얘기다. 커뮤니케이션북스와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협업한 오디오북이다.

책을 듣는 시대다. 소설이나 인문서의 전문을 읽어주는 오디오북이 스트리밍 시대의 뉴미디어 콘텐트로 뜨고 있다. 최근의 언택트 문화 확대도 불을 붙였다. 올해 들어 72.4% 판매량 신장을 기록 중인 교보문고 오디오북의 다운로드 1위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다. 해리포터 콘텐트 허브 ‘위자딩 월드’의 ‘해리포터 앳 홈’도 화제다. 주연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를 비롯해 다코타 패닝, 데이비드 베컴 등 셀럽들이 릴레이로 낭독하는 해리포터 오디오북을 코로나 극복을 모토로 무료 서비스 중이다.

전미도

전미도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딜로이트에 따르면 세계 오디오북 시장은 35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20%의 가파른 성장세다. 지난해 에디슨 리서치의 조사 결과 12세 이상 미국인의 50%가 오디오북을 들어본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책 분석 전문 사이트 굿이리더닷컴은 미국의 서점·도서관이 문을 닫은 3월 오디오북 판매가 지난해 동기 대비 15.1%, 아동물은 46.6% 점프했다고 분석했다.

현재 300억원 규모인 국내 시장도 빠르게 커지는 중이다. 네이버가 디지털 콘텐트 이용자 확보를 위해 월평균 200권의 신규 오디오북을 내놓으며 시장을 공격적으로 견인하고 있고, 5월 매출은 전년 대비 174% 성장했다. 김태리가 낭독한 이상의 ‘날개’, 정해인이 읽은 ‘오 헨리 단편선’, 갓세븐 진영이 읊은 ‘어린 왕자’ 등은 20만 건 가까이 재생됐다.

정우성

정우성

구독경제 흐름을 탄 ‘듣는 연재’도 나왔다. 김연수 작가의 ‘일곱 해의 마지막’ 등 유명 작가들의 최신작을 웹소설 연재하듯 15분씩 낭독한 뒤 책으로 발간한다. 그 밖에 밀리의서재의 ‘리딩북’, 인플루엔셜의 ‘윌라’, 지난 연말 국내 상륙한 북유럽권 서비스 ‘스토리텔’ 등 다양한 플랫폼이 경쟁 중이다.

해외에서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 아미 해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 주연 배우들이 직접 낭독에 나서며 시장을 견인하고 나섰다. ‘보이스오버 아티스트’라는 신종 직업도 생겨나 연극 배우들이 진출하고 있다. ‘오디오북의 오스카’라 불리는 미국 오디오출판협회의 ‘오디 어워즈’는 최우수 남여 낭독자도 뽑아 수상한다.

커뮤니케이션북스가 주목한 것도 바로 ‘배우’다. 낭독 스튜디오를 완비한 사옥에는 참여 배우들의 사인과 사진이 빼곡하다. 세계환상문학걸작선,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등 배우 여럿이 라디오 드라마처럼 함께 읽는 포맷도 있다. 엄진섭 상무는 “읽기 힘든 문학작품도 배우가 소화해서 들려주면 전달력이 높아져 더 흥미를 느끼게 된다. ‘오발탄’의 최민식, ‘젊은 이상주의자의 사’의 정진영 등은 배우와 작품의 시너지가 컸던 사례”라고 전했다.

라디오를 듣는 듯한 아날로그 감성도 강점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듣기 좋은 이유다. 지난해 미국 오디오출판협회 소비자 조사에서도 오디오북을 차에서 듣는 경우가 74%에 달하고, 81%가 운전 등 다른 일을 하면서 듣는다고 답했다. 엄 상무는 “독서는 부자들의 습관”이라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계속 책을 읽고, 사고력을 길러 리더가 된다. 깊이 있는 사고를 위해 독서가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여건이 안 될 때 오디오북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귀로 듣는 것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견해도 있다. 오디오북으로 영어공부를 했다는 영어강사 선현우씨는 “정보를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소리로 들을 때 머리에 두 배로 남는다”면서 “낭독자의 목소리가 멋지면 그가 읽은 다른 책까지 듣게 돼 동기유발도 된다”고 전했다.

혹시 오디오북이 종이책과 멀어지게 하지는 않을까. 전문가들은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미국 버지니아대 다니엘 윌링엄 교수(심리학 전공)는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오디오북과 종이책을 다르게 사용하고 서로 다른 것을 얻는다”면서 "종이와 오디오를 대체재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디오 포맷이 대중화되면 작가들도 ‘들려지기 위한’ 책을 더 많이 쓰게 될 것”이라고 썼다. 엄 상무도 “책에 담긴 사고력을 가장 비슷하게 전달하는 게 영상보다 오디오다. 오디오북을 듣다 보면 종이책을 읽고 싶어지기도 한다. 출판사로서 책의 콘텐트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할 뿐”이라고 말했다.

윤석화 “김상중→박성웅→정경호 릴레이 재능 기부”

윤석화

윤석화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은 2014년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부터 박정자·정동환·최민식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낭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인세 전액을 낭독 배우의 명의로 재단에 기부해 생활이 어려운 연극인을 지원한다. 윤석화 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은 "인세 10%였던 우리 문학 편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세계 문학편은 15%로 인상됐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낭독하는 오디오북이 새로운 장르의 예술처럼 느껴진다.
“배우는 텍스트에 충만한 감성을 실어 비주얼로 확장하는 훈련을 해온 사람들이다. 글의 행간에 본인의 생각을 더하니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부피가 생긴다. 배우들의 목소리에 고유한 매력이 있으니 골라 듣는 재미도 있다. 연기보다 리딩이 더 좋다는 평을 듣는 배우도 있다.”
재능기부를 해줄 배우 섭외에 어려움도 있었겠다.
“김혜자·이영애·황정민 등 빅스타는 이미 마음을 내준 사람들이기에 흔쾌히 응했고, 이런 식으로 팬들과 만나는 게 좋은 경험이라며 릴레이로 이어졌다. 김상중이 박성웅을, 박성웅이 정경호를 섭외하는 식이다.”
배우들은 모노드라마를 경험하는 듯한 만족감이 있겠다.
“무대보다 부담이 덜하니 감정에 더 충실하게 되더라. 이제 소설을 읽으면 마치 내가 낭독하는 듯 말이 살아있는 작품이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소설을 엄선한 작품집을 녹음하고 싶다.”
공연장에 잘 못 가게 되니 대리만족도 되는 것 같다.
“공연 대신 동영상을 많이 본다지만, 오디오북을 통해 문학을 연극적으로 마주한다면 상상력과 자기 생각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보지 않고 들으면서 비주얼라이즈한다는 것은 고요한 가운데 성장하는 자기를 보는 일이다. 나도 차에서 자주 듣는데, 정말 그렇다. 미지의 문학 작품을 편안하게 섭렵하면서 내 우주가 넓어지고, 꽤 괜찮은 나로 성장하는 느낌을 받는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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