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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원대 아파트가 투기수요? 갭투자 차단에 사활 건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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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자녀 교육 때문이든, 직장 때문이든 집을 사서 전세로 주고, 또 다른 전세를 얻어 이사를 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서울이나 수도권에선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3억원이 넘는 주택을 산 경우 전세대출 보증을 제한하기로 했다. 기존 기준 ‘9억원 초과’에서 한층 강화된 조치다. 전세 대출이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입)’에 이용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지만 실수요층에도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 스카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 스카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 아파트 97%가 3억원 초과 

17일 정부가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전세대출 조이기다. 시가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에게 전세대출 보증을 제한하고, 전세 대출을 받은 후 9억원이 넘는 주택을 사면 대출을 즉시 회수하는 게 현재 규제다. 이걸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새로 사는 경우 대출을 제한하는 거로 더욱 강화했다. 전세대출이 있는 상태에서 산다면 대출을 즉시 회수한다. 금융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아파트 중 97%가 시세 3억원을 초과한다. 사실상 전세대출을 끼고는 서울 안에서는 아파트를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 추가 지정.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 추가 지정.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강화된 규제는 보증기관의 내규 개정 및 은행 전산 개발 등의 과정을 거쳐 약 한 달 뒤쯤 시행될 예정이다. 일단 이번 규제는 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적 보증기관에 한해 적용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민간 보증기관(SGI서울보증)에도 협조 요청을 해 둔 상황”이라고 말했다. 머지않아 민간으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파장이 작지 않을 거로 보인다.

기존 갭투자는 영향 없고 앞으로만 막아

강도가 높은 데다 예외조차 거의 없다. 지난 1월 대책에 담긴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정부는 극히 일부의 ‘실거주’ 목적 ‘실수요’에만 예외를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실수요 사유는 직장 이동, 자녀 교육, 요양‧치료, 부모 봉양, 학교 폭력 등이다. 또 보유한 주택과 전셋집 양쪽 모두에서 세대원이 직접 거주해야 한다. 경기도 광명에 사는 김원일(39) 씨는 사는 “집은 노후나 투자 목적으로 사고, 실제로는 직장이나 교육 문제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살 수도 있지 않는데 이런 선택권을 제약하는 조치”라며 “수도권 3억~5억원대 아파트까지 갭투자 수요로 보는 건 너무 과하다”고 말했다.

강화된 전세대출 규제는 시행일 이후 새롭게 3억원 초과 아파트를 사는 경우가 대상이다. 시행일 이전 현재시점에 3억~9억원짜리 아파트를 이미 보유 중인 전세대출자는 아무 영향이 없다. 기존에 전세대출을 끼고 9억원 이하 아파트에 갭투자를 한 경우엔 전세대출 만기 연장도 가능하다(연장 시점에 시세가 9억원을 넘지 않으면). 결국 이미 벌어진 전세대출 낀 갭투자는 인정하되, 앞으로는 못하게 하겠다는 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존에 9억원 이하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들까지 전세대출을 끊어버리면 큰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기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전세대출을 이용해서 본인이 거주하지 않는 집을 갭투자하는 것은 막겠다는 것이 대책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세 만기 뒤 직접 들어가서 살 집은 사도 되는데, 전세를 몇 바퀴 돌릴 생각이면 사지 말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과 함께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과 함께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책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대출 보증 한도를 축소하는 방안도 담겼다. 현재 수도권 4억원, 지방 3억2000만원인 HUG의 1주택자 대상 전세대출보증 한도를 2억원으로 내린다. 또 무주택자가 주택 구매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주택가격과 관계없이 6개월 안에 전입해야 한다.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모두 일률적으로 적용한다. 1주택자의 경우 규제지역 내 주택을 사고, 대출을 받으려면 6개월 내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신규 주택에 전입해야 한다. 기준 기간이 1년에서 6개월로 줄었다.

주택 매매·임대 사업자에 대한 규제도 강화한다. 기존에는 규제지역 내에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20∼50%를 적용했고, 비규제지역에선 LTV 규제가 없었다. 앞으로는 모든 지역에서 주택 매매·임대 사업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다. 또 법인이 보유한 주택에 대해선 개인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해 나가기로 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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