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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서 외모 평가’ 학폭위는 "학교폭력" 징계…법원은 "학폭 아냐", 왜?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3월 16일 인천 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A군은 친구 2명과 함께 페이스북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 중 같은 학교 여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들은 여학생의 외모를 평가해 순위를 매겼다. 당시 A가 “C양에게 진지하게 고백할까”라고 말하자 A군의 친구는 “너는 차이고 돌아올 테니 고백 장면을 생중계해달라”는 취지로 답하는 등의 대화도 주고받았다. “그런(성적이 표현이 기재된 사진) 취향을 여학생이 받아주면 결혼하라”는 대화도 오갔다.

A군 등의 대화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B양이 우연히 A군의 페이스북 계정에 로그인하면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17일 선배의 태블릿 PC를 빌려 사용하던 B양은 태블릿 PC 내 A군의 페이스북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저장된 것을 발견했다. A군은 한 달 전 이 태블릿 PC를 이용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로그인한 적이 있었다. A군의 아이디로 접속한 B양은 하루 전 A군 등이 나눈 대화를 보게 됐다. B양은 친구와 공유한 뒤 학교 측에 신고했다.

학폭위 “A군 행위는 학교 폭력”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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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측은 A군의 행위를 두고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었다. A군은 자필로 사건 경위 등을 적어서 제출했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장난 고백’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명하기도 했다. 학폭위는 A군이 나눈 대화가 사이버 폭력에 해당한다는 전제하에 학교폭력이라고 판단하고 A군에게 출석정지 등의 조치를 내리기로 의결했다. 학교 측은 이를 받아들여 A군에게 출석정지 5일, 학급교체, 특별교육 이수 5시간 처분을 내렸다. 접촉 및 협박, 보복행위 금지 처분도 추가했다.

그러나 A군은 이에 불복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징계 조치처분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군 측은 “해당 대화가 학교 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설령 학교 폭력에 해당하더라도 징계 조치는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기에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法 “징계 조치는 재량권 한계 이탈한 것”

인천지방법원 전경. 중앙포토

인천지방법원 전경. 중앙포토

법원은 고심 끝에 학교가 아닌 A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군의 행위가 구 학교폭력예방법 2조에서 규정한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은 학교 내에서 상해, 폭행, 성폭력,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폭력 정보 등에 의해 신체 정신,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재판부는 ▶3명만 있는 단체 방에서 대화가 이뤄지고 당사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점 ▶장난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표현이 나온 것으로 보이는 점 ▶3인 대화방이라 심각성의 정도를 달리 볼 여지가 있는 점 ▶B양이 제 3자의 태블릿 PC에서 A군 계정으로 임의 로그인했기에 예측할 수 있는 대화 내용 전달 범위를 벗어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A군의 행위가 심각성이 높은 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인천지법 민사14부(고연금 부장판사)는 A군이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징계 조치 처분 무효 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높음’, 학교 폭력의 고의성이 ‘높음’ 등에 해당한다는 전제하에 내려진 징계 조치가 재량권의 한계를 일탈했다”며 “징계 조치는 위법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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