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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댓] 공수처가 검찰총장 잡아들인다? 조선 태종때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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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 판 ‘공수처와 검찰’, 의금부와 사헌부

조선시대 대표적인 사법 기관으론 의금부와 사헌부가 있었습니다. 의금부는 왕명에 따라 움직이는 왕의 친위 수사기관이었습니다. 주로 반역·왕실 관련 사건처럼 접근이 어려운 사건이나 중범죄를 다뤘지요. 왕은 의금부를 통해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관료들을 견제하기도 했습니다.

사헌부는 주로 관료들의 범죄와 부정부패를 다루던 곳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검찰과 감사원 기능을 더한 곳입니다. 의금부와 역할이 일부 겹쳤지만 사헌부는 관료들에 의해 운영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조선은 왕권과 신권이 경쟁하며 엎치락뒤치락했습니다. 왕의 친위기관인 의금부와 관료들이 맡았던 사헌부도 비슷한 운명이었지요. 조직의 충돌도 불가피했습니다. 의금부를 설치한 태종 때부터 갈등이 불거집니다. 태종 15년 5월 4일, 태종은 의금부에 지시해 사헌부 대사헌과 집의를 잡아들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공수처가 검찰총장과 대검차장을 잡아들인 것이지요. 처가 세력을 견제하려는 태종의 구상과 달리 사헌부가 외척 세력을 처리하지 않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밖에도 태종은 의금부에 신문고를 설치해 사헌부의 부실수사나 사건 은폐를 견제했습니다. 의금부의 힘이 가장 셌던 연산군 시기에는 의금부를 동원해 왕이 사헌부 수장을 감옥에 보내거나 일부 관직을 없애기도 했습니다.

#2 조선의 검찰, 사헌부의 반격  

그렇다고 사헌부도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사헌부는 관리를 감찰하거나 왕에게 직언할 수 있던 곳이기 때문에 사대부들이 가장 선망하는 부서였습니다. 구성원들 자부심도 상당했습니다. 사헌부 역시 수사권을 동원해 의금부를 압박했습니다. 6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 초기는 왕권이 일시 약화된 시기입니다. 특히 김종서, 황보인 등 세종 시대부터 신임을 받은 권신들이 정치를 좌우했는데요, 의금부의 힘을 빼기엔 더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사헌부는 당시 의금부가 바른 정치를 막는다며 의금부 공격에 나섰습니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3 사헌부 VS 의금부, 승자는? 

이렇게 상호 견제와 갈등 속에 자리를 잡아온 사헌부와 의금부는 차츰 역할의 변질을 겪게 됩니다. 조선 후기 당쟁이 본격화되면서 사헌부는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됩니다. 세도정치 시대 때는 아예 특정 가문의 눈치를 보며 그들 입맛에 맞는 권력기관으로 탈바꿈하지요. 의금부도 정조 이후 왕권이 약해지면서 유명무실한 기관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두 조직은 사라집니다.

사헌부·의금부 설치목적과 의도는 좋았지만 운영 주체의 철학과 의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졌습니다. 오는 7월 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예정대로 설치됩니다. 공수처와 검찰의 관계가 조선시대 의금부와 사헌부의 관계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갈등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조선의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성운·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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