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울려퍼진 BTS ‘대취타’…국악 르네상스 열리나

중앙선데이

입력 2020.06.13 00:02

업데이트 2020.06.20 09:29

영화 ‘광해’ 콘셉트로 촬영한 BTS 멤버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영화 ‘광해’ 콘셉트로 촬영한 BTS 멤버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취타! 대취타! 자 울려라 대취타!”

슈가 신곡으로 전통음악 관심 폭증
사극 세트 고집하고 뿌리에 천착
뮤비 유튜브 조회수 8000만 뷰
국악·대중문화, 글로벌서 윈윈 해야

퓨전 사극 영화 한 편인 듯, 조선 궁궐과 저잣거리에서 폭군과 천민이 1인 2역으로 교차하는 흥미로운 대립 구도 속에 도전적인 랩 가사가 중독적으로 되풀이된다. 유려한 한국적 영상미와 함께 뮤직비디오 영상을 가득 채우는 건 시원하게 울리는 전통음악 대취타 연주다.

BTS 멤버 슈가가 ‘어거스트 디(Agust D)’란 이름으로 지난달 22일 발표한 신곡 ‘대취타’가 세계적으로 화제다. 이번 주 빌보드 차트 톱 커런트 앨범 세일즈 76위,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5위와 영국 오피셜 차트에도 올라 세계 팝 음악 시장 양대 차트에 진입한 한국 최초의 솔로 가수가 됐다.

전 세계 아미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뮤직비디오는 단숨에 유튜브 조회 수 8000만 뷰에 육박했고, 아미의 리액션 동영상도 70만 뷰를 넘어섰다. 아미들은 고유의 한국미에 “오 마이 갓”을 연발하고, “울려라 대취타” 후렴구를 따라 하며 함께 리듬을 탄다.

전통음악 ‘대취타’에 대한 관심도 폭증했다. 음원을 제공한 국립국악원은 4년 전 영상이 2주 만에 몇백 뷰에서 14만 뷰로 폭증하자 제목을 영어로 바꾸고 영어자막까지 넣으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샛노란 철릭(天翼)에 남색 허리띠를 두르고 꿩 깃 초립을 쓴 취타대의 위용에 “드디어 찾았다. 오리지널 사운드가 이런 거구나. 한국 문화는 정말 흥미롭다” “BTS 덕에 한국 문화를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K팝과 국악의 만남은 간혹 있었다.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 속에 태평소 능게가락을 샘플링했고, 싸이가 독일 월드컵 및 런던 올림픽 응원가를 국악과 콜라보해 만들었다. GD도 ‘늴리리야’(2013) ‘맙소사’(2015) 등에 국악의 추임새를 더했다. 이들이 국악을 하나의 모티브로 사용하는 데 그쳤다면, 이번 ‘대취타’의 차별점은 곡 전체의 메인 테마로 국악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는 K팝의 정체성과 한국적 자긍심을 견인하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철학으로 풀이된다. BTS는 2018년에도 ‘IDOL’에 ‘덩기덕 쿵더러러러’ 굿거리장단과 ‘지화자 좋다, 얼쑤’ 같은 추임새를 듬뿍 넣었다. 그해 말 멜론 뮤직어워드에서는 제이홉의 삼고무·지민의 부채춤·정국의 봉산탈춤 등 전통춤 메들리로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대취타’는 그 철학을 전면에 내걸었다. 1984년 음원을 요구한 것부터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천착을 드러낸다. 슈가가 직접 대취타 소재를 선택했고, 사극 세트를 고집했다. 검무 장면에도 명인이 제작한 환도를 사용했다. 슈가는 “대취타를 학교에서 배웠다. 왕의 행차를 위한 군대 음악이 아미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여러 음원 중 국립국악원의 1984년 버전이 가장 멋있었다”고 전했다.

BTS가 자기 뿌리를 표상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는 음악계 전체에 화두를 던진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BTS는 우리 것 그대로 전 세계에 흘려보내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 이번에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낸 건 그만한 자신감의 표현”이라며 “해외에서는 재즈나 타악 분야에서 국악이 독보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기에 경쟁력 있는 시도다. 오히려 전통의 틀 안에 갇혀있던 한국인들이 국악의 소통력에 대해 깨달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국악계도 환영 일색이다. 순혈주의는 전승 보전에 매달리던 구세대의 패러다임일 뿐이다. 이미 90년대부터 국악계 내부에서도 대중화·현대화·세계화를 외쳐왔다.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은 “국악계가 큰 성과를 못 내던 것을 BTS가 단숨에 글로벌 마켓으로 끌고 갔다. 국악이 좁은 관객층을 넘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사건으로 인식한다. 대중문화의 힘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해석했다.

JTBC ‘팬텀싱어3’에 참가한 소리꾼 고영열. [사진 JTBC]

JTBC ‘팬텀싱어3’에 참가한 소리꾼 고영열. [사진 JTBC]

거꾸로 국악인의 대중문화계 진출도 눈에 띄는 추세다. 지금 JTBC ‘팬텀싱어3’에서 가장 주목받는 출연자는 소리꾼 고영열이다. 피아노 병창 ‘사랑가’부터 쿠바, 그리스 가요를 넘나들며 소리꾼 특유의 천변만화하는 다채로운 창법을 매회 선보인다. 특히 지난주 첫 4중창 경연에서 존 노·김바울·정민성 등 3명의 정통 성악가와 함께 선보인 가곡 ‘무서운 시간’은 “세계 최초, 유일무이한 남성 4중창 무대”라는 극찬을 받으며 5일 만에 유튜브 17만 뷰를 기록했다.

고영열로 인해 ‘팬텀싱어’가 한걸음 발전했다는 시각도 있다. ‘K크로스오버’라는 명칭에 걸맞게 국악까지 확장된 새로운 영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그간 클래식과 대중음악 연결에 머물던 크로스오버가 아우르는 장르가 넓어졌다. 고영열은 국악만 잘하는 걸 넘어 크로스오버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간 국악을 베이스로 다른 장르와 연결하는 실험을 해왔던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국악인들은 원래 연예인이었다. 60~70년대만 해도 김세레나·김영임 등 민요 가수들의 LP판이 불티나게 팔렸고, 토요일 황금시간대에 국악 방송이 편성되어 조상현 명창 같은 TV 스타가 나왔다. 80년대 들어 국악계가 대중스타를 천박하게 인식하고 엘리트 제도권 내의 극장 예술을 지향하면서 대중문화 씬에서 사라지게 된다. 정 평론가는 “한때 국악의 고집을 지키는 어르신들로 인해 국악계 전반이 어려움을 겪게 됐고, 그 위기감이 오히려 다시 설 자리를 만들고 있다. 선배들도 이러다 국악 다 죽는다며 ‘퓨전하라’고 내려놓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선지 지금 대중문화계는 국악인 르네상스다. ‘미스(터)트롯’의 송가인·강태관을 비롯해, 7월 개봉예정인 영화 ‘소리꾼’의 주연 이봉근도 소리꾼이다. KBS ‘불후의 명곡’이 꾸준히 국악인들을 소환한 공이 컸다. 지난해 왕중왕전에서는 김준수·유태평양·고영열 등 3명의 ‘국악계 아이돌’이 BTS의 ‘IDOL’을 커버해 객석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 드라마 ‘킹덤’, BTS 등 지극히 한국적인 색깔의 K콘텐트가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서 국악인들의 대중문화 진출은 고무적이다. 이제 는 국악계 콘텐트 크리에이터 양성을 도모할 차례다. 김희선 실장은 “이미 중국·일본·인도·인도네시아 음악까지 세계인들에게 익숙한데, 국악은 월드뮤직의 작은 영역에 머물러 왔다. 대중음악이 전통과 시너지를 내는 순간 글로벌 시장으로 함께 들어가는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평론가도 “해외에서 충격적인 반응을 얻었던 ‘씽씽’의 이희문처럼 전통을 제대로 전수받고 그 경지를 넘어 퓨전을 시도할 때 뭔가 나온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악의 고유한 톤을 글로벌한 장르로 펼쳐 보여줄 때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