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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코로나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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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정책부디렉터

염태정 정책부디렉터

올해 대학에 들어간 둘째 아들은 명실상부 집돌이다. 온종일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게임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가지고 논다. 캠퍼스는 컴퓨터 속 화면으로 경험한다. 가끔 강아지 산책시키는 게 그나마 외출이다. 공부는 그렇다 쳐도 대학 신입생인데 노는 즐거움도 미팅의 설렘도 모르는 듯하다. 2020 코로나 학번은 불운한 세대다.

코로나19 직격탄 맞은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역대 최고 수준 #미래 꿈 꿀 수 있도록 지원해야

세대명은 시대상의 반영이다. IMF 세대, 88만원 세대, N포 세대처럼 젊은층을 중심으로 시대의 아픔과 고단함을 담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단연 ‘코로나 세대’다. 엄밀한 정의가 있는 건 아니나, 대체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취업난을 겪는 1990년대생을 가르킨다. 많은 걸 포기했다는 N포 세대에 코로나가 더해진 슬픈 명칭이다.

세대명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다. ‘잃어버린 세대’ ‘상실의 세대’ 등으로 번역되는 로스트 제네레이션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삶의 방향 감각을 상실한 젊은 세대를 일컫는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F.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는 길 잃은 세대의 절망과 허무를 문학에 반영한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파리 사교계의 거물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이 ‘로스트 제네레이션’이라 명칭을 처음 쓴 거로 알려지고 있는데, 보다 정확히는 자동차정비소 주인이 한 말이었다고 한다. 스타인의 자동차 수리를 맡은 정비공의 불성실한 태도에 화가 난 주인이 내뱉은 말을 스타인이 듣고, 괜찮은 표현이다 싶어 쓰기 시작했다는 거다(김욱동 『헤밍웨이를 위하여』).

서소문 포럼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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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길 잃은 세대는 절망과 허무, 사회에 대한 불평과 불만 속에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세대라 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의 코로나 세대는 길 잃은 세대와도 처지가 비슷해 보인다. 무엇보다 그 바탕에는 아르바이트조차 잡기 힘든 취업난이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회원 8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열 명 가운데 아홉은 자신을 ‘코로나 세대’라고 인식한다. 걱정거리 1위는 취업(21.6%), 2위는 실업·실직(12.9%), 3위는 감염·전염(12.2%)이다. 10일 발표된 통계청의 고용 동향에 따르면 청년 체감실업률은 26.3%로 5년 내 최고 수준이다.

일자리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나 청년층의 일자리는 어느 연령층보다 중요하다. 청년층 자신의 생활을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 갈 세대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도 청년 일자리를 강조한다. 정부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청년 일자리와 인력 양성, 주거 지원 등에 2조원을 투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해서 청년층 일자리 22만1000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움직인다. 서울시·부산시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지자체가 코로나 추경에 청년 일자리 대책을 담고 있다. 2조 2390억원 규모의 서울시 3차 추경안에는 청년 실업 해결을 위해 6000개의 문화예술·디지털 기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청년 일자리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내놓은 것만도 수십 가지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하고 실효성엔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 주도 일자리는 이른바 ‘티슈 인턴’을 양산하는 단기 일자리 중심이다. 일자리 미스 매치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부 대책도 산발적이다. 그러니 청년청을 설립하자는 법안까지 나온다. 홍문표 의원(미래통합당)은 최근 정부 각 부처에 산재한 청년 정책을 총괄할 청년청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코로나 시대의 청년 일자리 문제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청년 고용의 현황 및 정책 제언)를 보면 노동시장 진입단계에 있는 청년들의 경우 코로나 위기로 인한 영향이 어느 연령대보다 오래가고 임금 손실, 경력 상실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한다.

청년들이 원하는 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제대로 된 일자리와 이를 위한 교육이다. 이를 위해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청년 일자리 대책은 다른 면에서 보면 경쟁력 있는 기업 육성책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정부가 기업 육성과 경쟁력 강화에 얼마나 열심인지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위원장이기도 하다. 문 위원장은 “일자리가 성장이며 복지이고 행복한 삶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청년들은 지금 행복한 삶을 시작도 못하고 자신을 IMF 세대보다 더 불행한 코로나 세대라 자조한다. 청년층을 위한 세심하고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게 해서는 안 된다.

염태정 정책 부디렉터